- Special Issue 05 건강수명 연장을 위한 항노화 연구의 현재와 미래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늙어가고 있다. 2023년 보건 통계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국민의 기대수명은 83.6세로 OECD 국가 평균을 웃돈다. 더불어 2024년 합계출산율은 0.68을 기록할 전망이다. 65세 이상인 노인 인구의 비율이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로 분류하는데, 우리나라는 이렇듯 급격한 저출산·고령화로 2025년에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 으로 예상된다. 또한 인구 고령화에 따른 노인성 만성 질환의 유병률 증가로 인해, 우리나라의 노인 의료비는 2022년 약 45.8조를 기록하여 전체 의료비의 43% 수준을 차지하고 있다. 노인 의료비는 국가 재정에 부담을 주어 국제 경쟁력을 낮출 것이고, 노년기 삶의 질 저하 문제도 심각하게 대두될 것이다. 고령화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2018년에는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65세 이상 노인 인구의 비율이 5세 미만의 영유아 비율을 초과하였다. 그렇다면 노화란 거스를 수 없는 자연현상으로 우리가 대처할 수 있는 수단이 없는 것일까? 지난 10여 년간 노화 연구의 역사, 아니 인류의 역사를 바꿀 수 있는 항노화 기술 개발이 진행되었다. 선진국에서는 항노화 기업들이 수조의 투자를 받고 있다(표 1). 이제 태동하는 항노화 연구 분야야말로, 우리나라가 fast follower가 아닌 first mover로 변모할 수 있는 분야다. 이에 항노화 연구의 최전선에서 이루어지는 연구를 소개함으로써 국내 항노화 연구의 지원과 발전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
노화는 진단, 치료가 가능한 질병
초기 노화 연구는 생명현상에 관한 호기심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실험실 수준에서 노화를 지연하고, 심지어 역전하는 연구 결과들도 보고되고 있다. 치매, 골다공증, 근감소증과 같은 노인성 질환들은 한때 나이가 들면 당연하다고 생각되어, 질병으로 다루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는 국제보건기구(WHO), 미국, 유럽 등에서 선제적으로 질병 코드를 받게 되었다. 또 이를 진단·치료하는 기술 및 물질들이 개발된 과정을 고려할 때, 머지않아 노화 자체를 다양한 노인성 질환의 선행 질환으로 인식하고 이를 진단·치료하는 것이 가능한 시대가 올 것이다.
모든 노인성 질환의 선행 질환인 노화를 진단, 예방, 치료하는 것은 다가오는 초고령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이에 따라 창출되는 항노화 산업의 경제적 가치도 막대할 것이다. 최근 노화 동물 모델에서 건강수명을 연장할 수 있음이 밝혀졌다. 임상 연구를 수행 중인 항노화 기술은 그림 1의 세 가지에 이른다. 혈액에서 발굴한 역노화물질, 식이 제한 모사 전략, 노화 세포 제거가 바로 그것이다.
Alkahest - 혈액 내 역노화 단백질을 이용한 치매 임상
‘Drink from me and live forever’라는 카피를 들어보았는가? 이는 1994년에 개봉한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라는 영화의 광고문구다. 피를 마시며 영생한다는 드라큘라의 미신처럼, 정말로 젊은 핏속에 노화를 억제하는 인자가 있을 것인가? 흥미롭게도 젊은 마우스와 노화 마우스의 혈관을 연결해 혈액을 공유하는 개체결합(parabiosis) 시, 노화 마우스의 근육과 간, 심장 세포가 회복된다는 결과가 2005년 Nature 지에 보고되었다. 이후 많은 연구를 통해 혈액 내의 노화를 조절하는 단백질과 핵산, 대사물질 등이 밝혀졌다.
관련 분야를 선도해 나가고 있는 Stanford 대학의 Tony Wyss-Coray 교수는 자신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Alkahest 항노화벤처를 설립하였다. 그는 혈장 기반 제약 분야의 세계적 다국적 기업인 Grifols와 함께, 2017년과 2019년에 젊은 혈액의 분획을 이용하여 알츠하이머 치매 임상을 수행하였다. 6개월간 진행된 임상의 결과, 위약군 대비 인지기능의 저하가 억제되는 효과를 보았다. 현재는 다양한 임상 파이프라인으로 노화를 억제하는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Unity Biotechnology, MAYO clinic - 노화 세포 제거
‘Targeting a Root Cause’. Unity Biotechnology를 검색하면 첫 줄에 나오는 문구다. 근본 원인을 타겟팅한다, 참으로 멋진 문구가 아닐 수 없다. 질병의 근본 원인은 노화, 더 구체적으로는 노화 세포라는 믿음이 반영된 문구다. 그렇다면 노화 세포란 무엇인가? 1961년 사람의 세포를 꺼내 dish에서 키우면, 일정 횟수 이상 분열 후 증식을 멈춘다는 사실(Hayflick 제한)이 알려졌다. 이렇듯 다양한 원인으로 분열이 멈추고, 이후 일정 시간이 지난 세포를 노화 세포(senescent cell)라 부른다. 노화가 진행되면 우리의 몸에도 노화 세포가 축적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니 노화 세포의 축적이 개체 수준에서 노화의 원인이지 않을까? 이를 선택적으로 제거하면 노화를 되돌릴 수 있지 않을까?
2011년 노화 세포를 특이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형질전환 마우스를 만들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백내장을 포함한 퇴행성 질환의 발생이 늦춰지거나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형질전환 마우스는 더 늙은 나이까지 운동 능력을 유지할 수 있었고 수명도 늘어났다. Unity Biotechnology에서는 노화 세포를 특이적으로 제거하는 약물을 개발하여, 퇴행성 관절염이나 당뇨성 망막질환을 대상으로 임상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미국의 MAYO Clinic에서는 노화 세포 제거 약물(dasatinib, quercetin)을 이용하여 당뇨성 신장 질환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 적용 가능성 등을 연구하고 있다. 현재는 질환 특이적, 장기 특이적 특정 노화 세포를 타깃으로 하는 기술, 노화 세포 표면 단백질을 인지해 노화 세포를 제거하는 기술, CAR-T 기술을 이용한 노화 세포 제거 면역 치료제 등이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Altos Labs - 역노화 리프로그래밍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라는 영화를 재미있게 보셨는지 모르겠다. 이는 노화된 상태로 태어났지만, 시간이 지나며 오히려 생체나이가 젊어지는 주인공의 일생을 담은 영화다. 개봉한 당시인 2008년에는 영화적 상상력이 지나치고 개연성이 전혀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이는 되돌릴 수는 없지만, 생체나이를 되돌리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오랫동안 생체나이는 되돌릴 수 없다고 생각되었지만, 실제로 가능하다는 일례가 있다. 우리 몸의 줄기세포는 특정 조건에서 근육세포, 피부세포, 간세포 등으로 분화한다. 그리고 이미 분화가 끝난 세포를 줄기세포로 다시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믿어져 왔다. 2006년 일본의 Yamanaka 교수팀이 유도만능줄기세포를 만들기 전까지는 말이다. Yamanaka 연구팀은 세포의 분화를 되돌리는 4개의 전사조절인자(Yamanaka 인자)를 발견해 2012년 노벨상을 받았다.
노화 연구자의 입장에서는 ‘이를 이용하면 개체의 노화를 되돌리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이 떠오를 수 있다. 실제 2016년 Salk 연구소의 Belmonte 연구팀은 Yamanaka 인자를 이용해 개체 수준에서 역노화가 가능하다는 연구 결과를 보고하였다. 아마존 창립자인 제프 베이조스가 투자한 것으로 유명한 항노화 스타트업인 Altos Labs는 Yamanaka, Belmonte박사 등을 리쿠르트하여 세포리프로그래밍을 이용한 역노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생체나이 진단 - Aging Clock
평소에 새로운 기술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유전자 서열 분석을 통해 본인의 조상이나 암 위험도 등 건강 관련 정보 서비스를 하는 23andMe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혹시 본인의 후성 유전체를 기반으로 하여 생체나이를 측정해 주는 Human DNAge Service를 제공하는 회사에 관해서도 들어보았는가? 현재 해외에서는 myDNAge, Elysium Health 등의 회사에서 생체나이를 진단해 주는 분자 진단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본인의 생체나이가 호기심 차원에서 궁금하기는 해도, 이게 실생활에서 중요한지 의문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당뇨병의 경우 혈당 수치에 따라 정상, 위험군, 고위험군 환자 등으로 구분되고, 이에 맞추어 치료가 진행된다. 진단이 모든 질병 관리의 시작인 것이다. 그렇다면 노화의 경우에는 어떨까? 올바른 진단법이 없다면, 내가 care의 대상인지, cure의 대상인지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치료를 받았을 때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이렇듯 노화를 치료하고자 하는 연구와 함께, 노화를 진단하는 기술은 대단히 중요하다. 2013년을 전후로, 후성 유전체를 기반으로 한 생체나이의 진단이 가능하다고 보고된 후 많은 연구자와 기업이 이에관심을 가져 연구·개발을 수행하고 있다.
이처럼 미래에는 과학적 근거를 가진 생체나이를 정기적으로 검사하고, 본인의 노화 속도에 기반하여 건강 노화, 정상 노화, 노화 고위험군, 노화 질병 상태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이후에는 그 정도에 따라 노화 치료법, 노화 예방법, 건강관리 등의 차별적인 항노화 토탈 서비스를 적용하고, 이를 통해 건강하게 노년의 삶을 누릴 수 있으리라 예측해 본다.
- Vol.465
24년 05/0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