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술혁신 성공사례 10⁻⁹분의 1 기술 진입장벽을 뚫은 열차의 두뇌 ‘KTCS-2 열차 제어시스템’ 개발
김경식 현대로템(주) 레일솔루션연구소 신호제어연구팀 팀장 광운대학교에서 전기공학을 연구하였고, 서울과학기술대학교에서 철도전기신호공학 석사(2021년)를 취득했다. 1996년 현대로템(당시 현대공정)에 입사하여 27년 이상 철도신호(열차제어시스템) 연구, 개발을 수행하고 있는 철도신호의 최고 전문가다. 현대로템의 열차제어시스템 개발을 총괄하고 있으며, 한국형 열차제어시스템인 KTCS 개발을 완료하여 국내 및 해외 철도시장 진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
KTX 선로 변 도로에서 운전하다 보면, 몇 배나 빠른 속도로 멀어져가는 고속열차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멋진 외관의 열차가 참 빨리도 달린다는 생각은 해봤지만, 열차가 어떠한 방식으로 움직이는지까지는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다. 열차의 운행은 생각보다 매우 복잡하다. 열차 자체의 운행을 제어해야 할 뿐만 아니라, 같은 선로를 공유하는 다른 열차와의 간격도 제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안전 문제 및 수송 효율과도 직결된다. 지난 수십 년간 국내 기술은 전 분야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철도 차량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국내 수요를 위한 차량 생산은 물론이고, 해외에도 수출하는 세계적인 기술력을 갖춘 분야다.
그러나 아직 한 가지는 국산화하지 못했는데, 이것이 바로 열차의 두뇌에 해당하는 ‘열차 제어시스템’이다. 철도 관련 기술이 오래전부터 발전한 유럽의 표준이 매우 높은 기술 진입장벽을 이루어, 국내에서는 개발을 엄두조차 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현대로템㈜은 수십 년간 수입에 의존해 오던 열차 제어시스템을 6년에 걸쳐 국내 기술로 개발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다시 오랜 시험 기간을 거쳐 상용화를 목전에 두고 있다. 현대로템의 기술 개발은 규모가 크고 소요 기간이 길며, 여러 기관과 협력사가 관여된 대형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사례로써 그 의미가 크다.기술 개발에 성공한 ‘KTCS-2 열차 제어시스템’은 2023년 52주 차 장영실상을 수상하였다. 현대로템의 열차 제어시스템 개발 성공이 지니는 의미와 그 과정을 함께 살펴본다.
글. 이장욱 컨설턴트(씨앤아이컨설팅)
프로젝트 규모와 3가지 장벽
현대로템의 ‘열차 제어시스템’ 기술혁신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단순하게 제어시스템이 무슨 역할을 하고 어떠한 가치를 가지는지만 이해하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해를 위해서 먼저 이를 멀리서 바라보고, 다시 좁혀서 개발 과정과 기술의 가치를 이해할 수 있도록 접근하겠다. 먼저, 프로젝트 규모를 참여 기관과 기업, 투입 인원, 개발 기간의 관점으로 요약해 보자. 과제의 주관은 국토교통부 산하기관인 국가철도공단이고 개발 책임의 주체는 현대로템이다. 개발된 열차 제어시스템의 시험을 주관하는 기관은 우리에게 친숙한 한국철도공사 코레일이다.
철도는 국가의 매우 중요한 기반 시설로, 엄격한 통제와 보안 그리고 안전이 요구된다. 따라서 열차 제어시스템의 개발과 시험의 난이도는 상상으로만 이해할 수 있을 정도다. 개발 책임의 주체인 현대로템은 개발을 다시 4개의 핵심 협력사와 분담하여 진행하였다. 현대로템에서 프로젝트에 참여한 인원은 과제 책임자인 김경식 팀장을 비롯하여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개발 담당 인원을 포함해 6년 동안 20여 명이다. 협력사를 포함하면 개발에 참여한 인원이 100명에 가깝다. 시험을 주관했던 코레일이나 과제 전체의 주관기관인 국가철도공단의 관계자까지 포함하면 그 인원이 얼마나 될지, 프로젝트의 전체 규모를 단면에서라도 이해할 수 있다.
현대로템은 2012년 열차 제어시스템의 개발에 착수했고, 2018년에 개발을 완료했다. 개발에만 6년이 소요된 것이다. 다시 2020년 12월 한국철도공사 시범사업을 통해 운행 시험에 착수했고, 2022년 4월에 이르러서야 국토교통부의 영업 운행 사용 승인을 획득했다. 승인 이후 실제로 상용화하기 위해서는 고객으로부터 열차 차량에 대한 구매 발주를 받아야 하고, 차량을 제작하고 난 이후에야 비로소 열차 제어시스템을 탑재할 수 있다. 2024년 현재 상용화가 진행 중이므로 빠르면 올해 연말부터 국산 KTCS-2 열차 제어시스템이 탑재된 열차를 타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무려 12년의 기간이 필요했다.
‘KTCS-2 열차 제어시스템’이라는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 위해 6년의 개발 과정이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의 대형 프로젝트는 부품, 모듈, 단위 시스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 위해 크고 작은 프로젝트로 다시 구분된다. 또한 100명이 넘는 개발 인원이 함께 일하기 위해서는 프로젝트가 업무 단위로 잘게 쪼개져야만 실제 업무 진행이 가능하다. 여기에 긴 개발 기간 중 부분별 진척 여부, 목표 수준 도달 여부에 따라 어느 하나라도 지연되거나 미달 되면, 전체 과정을 변경해야 한다. 대형 프로젝트는 생명체와 같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를 더 덧붙이자면, 기술혁신 과정은 우리가 늘 해왔던 일을 쪼개서 업무를 분배하는 것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기술혁신 과정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일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원하는 결과가 나올지 아닌지도 모른 채, 가르침 받을 사람 없이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창조의 과정이다.
이제 이 프로젝트가 넘어야 할 3가지 장벽에 대해 알아보겠다. 첫 번째 장벽은 유럽 표준사양이다. ETCS(European Train Control System)는 철도 역사가 가장 오래된 유럽에서, 철도망의 통합을 목적으로 유럽 철도 열차 제어시스템을 표준화한 신호 규격이다. 이를 전 세계 49개국에서 채택하여 운영 중이기에 ETCS는 사실상의 세계 기준이다. 이 표준을 만족시켜야만 세계시장 진출을 꿈꾸어 볼 수 있다. 유럽 표준이란 장벽 위에는 국내 정책 및 표준의 준수와 고객사들의 요구사양이라는 추가적인 높이가 더 얹어져 있다.
이러한 개념적인 설명만으로는 장벽의 높이가 잘 상상되지 않을 것이다. 일례를 들자면, 유럽 표준사양을 A4 용지로 인쇄하면 수 천장 분량이 나온다. 이 중 개발에 필요한 핵심 내용만 추려내도 1천여 페이지에 달한다. 두 번째 장벽은 시험과 인증의 장벽이다. 개발 과정에서 수없이 이루어지는 내부적인 시험은 논외로 하더라도, 상용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시험과 인증이 있다. 운행 호환성 성능 검증 시험은 유럽 공인 시험소에서 진행되며, 선로 변 신호를 수신하는 BTM(Balise Transmission Module) 서브 장치에 대해 속도 500km/h 조건에서 1,000여 개의 평가 항목을 9개월간 한 번에 통과해야 하는 도전이다.
또한 개발한 열차 제어시스템은 국제 안전성 최고 등급인 SIL4(Safety Integrated Level 4) 인증을 받았다. 이는 시스템으로 인한 사망사고가 일어날 확률이 10-9인 수준으로, 쉽게 생각해서 백만 년에 1번 사고가 일어날까 말까 하는 확률이다. 유럽 표준사양의 충족을 성벽을 넘는 것에 비유한다면, 시험과 인증의 통과는 성벽을 넘어 해자를 건너는 것에 비유할 수 있겠다. 세 번째 장벽은 경쟁사와 경쟁제품이다. 전술한 성벽과 해자를 넘을 수 있는 기업은 세계적으로 몇 되지 않는다. 경쟁사는 이미 성벽과 해자를 넘어 숲을 이루고 있기에, 시장의 새로운 진입자인 현대로템은 경쟁사와 경쟁제품이라는 또 다른 장벽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경쟁자들을 뛰어넘는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후발 주자로서 무기 없이 맨몸으로 성벽을 넘은 것과 마찬가지다. 현대로템의 열차 제어시스템은 4세대 이동통신 방식 철도 전용 무선망(LTE-R)을 적용하여, 기존 제품과 비교해 2배 빠른 속도로 데이터 전송이 가능하다. 또한 자체 개발한 속도/거리 연산 로직을 적용하여, 경쟁제품 대비 속도 및 거리 연산 오차를 50%가량 감소시켰다.
이는 현재 국내에서 사용하는 제어시스템에 비해 열차 운행 간격을 최대 23%까지 좁힐 수 있는 성능 향상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10대의 열차만 운행이 가능하던 시간에 현대로템의 열차 제어시스템을 적용하면, 최대 12대의 열차를 안전하게 운행해 수송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의미다. 현대로템은 여기에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를 국산화하여 수입 경쟁제품 대비 25%의 가격 경쟁력까지 갖추었다.
열차 제어시스템 개발의 의의
열차 제어시스템은 열차 차량에 장착된 제어시스템과 지상에서 운영되는 제어시스템의 2가지로 구분된다. 현대로템에서 개발한 제어시스템은 차량에 장착되는 시스템으로 주제어 컴퓨터, 속도 거리 연산장치, 차지상 통신장치, 지상 발리스 수신장치, 화면 현시장치, 정보 기록장치 및 센서와 안테나 등 다수의 모듈이 조합되어 있다. 각각의 장치들이 모두 개발의 대상이며, 조합했을 때 제 기능을 수행해야 전체 기능을 수행하는 하나의 제어시스템이 완성된다.
열차 제어시스템은 중요한 기능을 중심으로 단순화하더라도 △차량 자체의 위치나 속도 파악 △추진 및 제동 △ 선로에 설치된 발리스로부터의 신호 수신 △지상의 제어시스템과 신호 송 · 수신 △운전자에게 필요한 정보의 화면 현시 △정보의 기록과 같은 다양한 기능으로 구분된다. 사람에게 비유하자면, 외부 상황이나 지시를 인지하고 내 몸의 상태와 위치 등을 파악하며 운동을 제어하는 ‘두뇌-감각기관’과 같은 역할이다.
여러 장치의 조합인 제어시스템은 기능적 관점에서도 그 난이도를 짐작할 수 있다. 조합된 시스템은 유럽 표준에 정의된 1,841개의 시험 케이스와 93개의 시험 시나리오를 통해 시스템 사양과 성능 및 호환성을 검증받아야 한다.
이 성능은 시속 500km로 달리는 상황에서도 유지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제어시스템은 여러 기능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작동하는 시스템이므로, 어느 한 부분에 오류가 발생하면 ‘분석→설계 수정→ 전체 시험’의 케이스를 무한 반복하여야 한다. 시스템을 만드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검증에 검증을 거쳐야만, 표준과 인증이라는 장벽을 넘어설 수 있는 것이다. 현대로템은 2년 이상 수만 번의 시험을 거치며 모든 검증을 완료하였고, 드디어 품질에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이렇게 해외의 기술 이전도 없고 국내에 참고할 만한 선례도 없는 상황에서, 현대로템이 기술혁신을 이룰 수 있었던 중요 포인트는 다음의 2가지와 같다. 첫째 포인트는, 수천 페이지의 유럽 표준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그 과정에 있었다. 이 방대한 내용은 한 사람의 머릿속에 담기 힘든 분량이며, 설사 담았다고 하더라도 혼자서 모든 개발을 완료하기는 어렵다. 이에 여러 엔지니어가 분량을 나누어 담당 분야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 나갔고, 이는 다시 끊임없는 공유의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유럽 표준과 같이 글로 작성된 내용은 사람에 따라 다르게 이해될 수 있으며, 넓은 분야의 내용은 서로 연결하여 이해하기도 어렵다. 회사 내부와 협력사의 엔지니어, 그리고 관계 기관의 많은 사람이 개발에 참여했다는 점을 상기해 보면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과정이었을지 짐작할 수 있다.
두 번째 포인트는, 표준 만족을 넘어선 차별화까지 고민하는 과정에 있었다. 개발한 제어시스템이 국내외 표준을 만족하는 것은 시장에 뛰어들 수 있는 자격증을 획득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는 글로벌 후발 주자가 이제 겨우 시장의 문을 열었다는 의미다. 따라서 현대로템은 경쟁제품을 넘어선 무언가가 있어야만 고객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다. 이에 신호제어연구팀 김경식 팀장을 비롯한 모든 개발진은 치열하게 차별화를 고민했고, 다음과 같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었다.
철도 전용 4세대 이동통신 무선망(LTE-R)을 세계 최초로 적용하여 경쟁제품의 통신방식에 비해 2배 빠른 데이터 전송, 자체 개발한 연산 로직을 활용하여 경쟁제품 대비 속도 및 거리 연산 오차 50% 감소, 경쟁제품 대비 가혹한 환경조건인 –40℃부터 85℃까지 운용 가능한 부품의 개발 및 적용, 기술 국산화로 25% 우수한 가격 경쟁력 등이다. 즉, 고속열차가 더 안전하면서도 촘촘하게 운행될 수 있도록 데이터 전송 속도를 높이고 연산 오차를 줄여 효율성을 끌어올렸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열차 제어시스템을 전량 해외 수입에 의존해 왔다. 열차 차량의 제조 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이지만, 열차의 두뇌를 만들 기술은 없었기 때문이다. 현대로템의 제어시스템 기술 개발은 국토교통부의 국가연구개발 과제에 참여하며 시작되었고, 기술 개발 이후에는 한국철도공사의 시범사업으로 시험 운행을 통한 검증을 진행했다. 2023년부터는 한국철도공사가 발주한 고속차량에 제어시스템의 적용을 진행하고 있다. 2024년에는 디젤 전기 기관차와 GTX 전동차량에까지 적용할 예정이며 뉴질랜드, 모로코 등 해외 진출도 목표로 하고 있다.
기술혁신 성공의 요인
현대로템 프로젝트의 규모는 크고, 표준의 벽은 높고, 기간은 길다. 그런데도 기술혁신에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요인은 프로젝트가 중단되지 않고 끝까지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즉 국가가 주도하고 민간기업이 투자 및 개발하며 공기업이 시험을 책임지는, 3인 4각 경기와 같이 어려운 일을 이렇게 오랜 기간 중단없이 일관되게 추진했다는 점이 하나의 기술혁신 성공 요인이었다. 많은 돈과 인력이 투입되지만 기술 확보 및 사업성은 불투명한 상태에서, 민간기업이 12년이라는 세월을 기술 개발에 투자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다. 덕분에 국내 철도 역사 120여 년 만에 우리 기술로 열차의 차량부터 이에 탑재할 두뇌까지 모두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두 번째 성공 요인으로는 기본에 충실했던 것을 꼽을 수 있다. 김경식 팀장의 말을 빌리면, 현대로템은 소프트웨어 개발의 V 모델에 따라 각 단계를 충실히 수행하였다고 한다. 모델이 있다는 것은 최적이자 최선인 길이 이미 지도처럼 존재한다는 뜻이다. 그림 3은 V 모델을 간략하게 표현한 것이다. 개발을 아는 사람이라면 각 단계의 의미를 모두 알고 있겠지만, 아는 것과 이를 실천하는 것, 그리고 기본을 착실하게 지키는 것은 다른 문제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야 한다는 속담이 있듯이, 복잡하고 어려운 실타래를 풀어야 하는 개발 업무는 지루하더라도 기본을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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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ol.465
24년 05/0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