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D 나침반 농사짓고 자율 차 달리고 우주 터미널 세우고… ‘신석기~산업혁명~SF 미래’ 공존하게 될 ‘달’
앞으로 수년에서 수십 년 안에 인류가 가장 놀라운 도전을 하는 공간은 어디일까. 바로 달이다. 흥미로운 것은, 지구에서 인류가 신석기부터 21세기까지 쌓아온 모든 경험과 지식을 달에서 압축적으로 풀어낼 것이란 점이다. 물을 찾고 식량을 자급자족하기 위해 농사를 지으며, 에너지를 얻기 위해 자원을 발굴하고 안전한 거주 공간과 산업시설 마련하는 것부터, 로켓을 날리고 우주 터미널을 가동하고 더 먼 행성으로 탐사를 떠나는 등 최소 수십 세기에 걸쳐 일어날 법한 일들이 달에선 불과 수십 년 안에 벌어질 전망이다.
수십 세기 이어온 문명 변화, 수십 년 내 개척에 도전한다
2030년, 황량한 달 표면을 마치 영화에 등장할 것만 같은 탐사 차량이 달린다. 그에 앞서 2026년에는 달에서 농사를 짓는다. 1972년 아폴로 17호 이후 50년 만에 다시 달을 밟은 사람들은, 최초의 ‘달 농사꾼’이 될 예정이다. ‘지구 밖에서의 삶’을 준비하는 인류는 첫 실전 테스트의 장이 될 달에서의 생활을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 이는 달에서 시작해 심우주로 인류의 정착지를 넓히는 것을 목표로 하는, 미 항공우주국(NASA, National Aeronautics and Space Administration) 주도의 국제 공동 프로젝트 ‘아르테미스’ 의 일환이다.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진행되면 2030년대에는 달을 중간 기지로 해서 화성으로 향하는 도전을 시작한다. 갈수록 황폐해질 것으로 보이는 지구를 대신할 또 하나의 문명 거점을 개척하는 ‘21세기의 신대륙 찾기’다.
최초의 ‘달 농사꾼’ 2년 후 등장한다
지난 3월, NASA는 2026년 아르테미스 3호 미션에서 우주비행사들이 달 남극 지역에 설치할 과학실험 장치 3개를 발표했다. 화성까지 내다보고, 달에서 사람이 상주하는 기지를 건설하기 위한 준비 작업의 일환이었다. 그중 눈길을 끄는 것은 ‘농작물에 대한 달 영향 측정기(LEAF, Lunar Effects on Agricultural Flora)’다. 이는 달 환경에서 어떻게 작물이 자라는지를 연구하기 위한 장치다. 이를 활용해 우주 방사선에 노출되고 중력이 지구의 6분의 1에 불과한 달에서, 어떻게 식물이 광합성하고 성장하는지, 스트레스 반응은 어떠한지를 관찰하는 최초의 실험이 이뤄진다.
LEAF 기기의 중요성은 달에서의 식량 자급자족 가능성을 확인해 준다는 데 있다. 지구에서 일일이 식량을 보내지 않아도 된다면 우주탐사의 부담이 훨씬 적어진다. NASA뿐 아니라 유럽우주국(ESA, European Space Agency)도 달에서 수경재배 등을 통해 작물을 키우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중국사회과학원도 지구보다 중력이 훨씬 약한 우주정거장에서 벼를 키우는 실험을 했다. 2019년에는 달 뒷면에 착륙한 탐사선인 ‘창어(嫦娥) 4호’ 에서 목화씨를 발아시키기도 했다.
‘달에 숨겨진 물을 찾아라’
2년 후 NASA가 달로 보낼 나머지 두 가지 실험 장치는, 달 환경 모니터링 스테이션(LEMS, Lunar Environment Monitoring Station)과 달 유전체 분석기(LDA, Lunar Dielectric Analyser)다. 달 유전체 분석기는 전기장을 이용해, 달 표면에 존재할 것으로 보이는 얼음을 찾는 기기다. 얼음을 찾으면 물을 얻을 수 있다. 이는 식수와 농사용 물, 그리고 로켓의 산화제 등으로 이용된다. 과학자들은 아르테미스 3호가 착륙할 달 남극에, 지형 특징 때문에 365일 해가 들지 않는 ‘영구음역 지역’이 있을 것으로 본다. 여기에 물이 얼음 상태로 보존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LEMS는 달의 지진파를 추적하는 일종의 지진계다. 이 장치를 통해 달의 지각과 맨틀의 구조를 분석하게 된다.
이 세 가지 장치는 달에 이어 향후 화성 탐사에 나설 때도 유용하게 쓰일 가능성이 높다. 이 장치들을 달에 가져가는 것 외에도, 2026년의 아르테미스 3호 미션은 여러모로 역사적인 도전이 될 전망이다. 아르테미스 3호는 1972년 12월 아폴로 17호 이후 5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인류를 달 표면에 내려놓게 된다. 달에 내리는 4명의 우주비행사 중에는 사상 처음으로 여성과 유색인종이 포함되어 있다. 아르테미스 3호 우주비행사들은 달 궤도를 도는 우주정거장 ‘루나 게이트웨이’와 ‘스타십 HLS’를 만난다. 루나 게이트웨이는 우주선이 달에 가기 전 머무는 정거장 역할을 한다. 달과 화성 탐사 임무를 위한 집결지인 동시에 출발지인 것이다. 우주 승무원을 위한 거주지로 필요한 장비와 자원도 제공한다.
여기에는 전력, 통신, 궤도 유지를 위한 추력을 제공하는 전력·추진 모듈, 보급품·장비 보관 공간, 주거 모듈(HALO, Habitation and Logistics Outpost), 승무원 추가 생활공간, 과학연구 국제협력이 이루어지는 국제 주거 모듈(I-HAB, International Habitation) 등이 갖춰진다. 아르테미스 3호를 타고 달로 날아간 우주비행사들은 오리온 우주선을 타고 루나 게이트웨이에 가서, 먼저 와 있는 스타십 HLS와 도킹할 예정이다. 지구에서 로켓에 실려 날아온 오리온 우주선이 도킹하면, 우주인들은 달 착륙선인 스타십 HLS로 옮겨 타는 것이다.
스타십 HLS로 갈아탄 뒤에는 달의 남극에 내린다. 이후 여기에서 미세중력 환경을 실험하고, 달 환경에 관해 연구하는 등 많은 일이 이루어진다. 임무를 마치고 나서는 다시 스타십 HLS로 루나 게이트웨이로 돌아온 후, 오리온 우주선으로 옮겨 타 지구로 귀환하게 된다. 루나 게이트웨이의 주거 모듈인 HALO는 작년 10월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용접을 끝내고 언론에 공개됐다. 이 모듈은 루나 게이트웨이를 형성하는 첫 번째 구성 요소다.
달에서 달리고, 달에서 살고
2028년 예정된 아르테미스 4차 임무에서는 통신, 발전, 방사선 차폐 등을 갖추는 달 기지 건설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이후 2030년에는 달 기지 주변에서 차가 달릴 예정이다. 아르테미스 5차 임무와 맞물려서는 달에 달 탐사 차(LTV, Lunar Terrane Vehicle)가 투입된다. 최근 NASA는 달 표면을 돌아다니며 탐사에 쓰일 LTV의 제작사 후보 기업 3곳을 선정해 발표했다. 후보 기업은 인튜이티브 머신스, 루나 아웃포스트, 아스트로랩이다. 이들은 앞으로 1년 동안 NASA의 요구 사항을 충족하는 시스템을 개발하게 된다. 이후 NASA는 성능과 안전성을 검증해 한 곳을 선정하고, 계약을 맺을 계획이다. 계약기간은 2039년까지다.
이들이 개발하는 차량은 극한의 우주 환경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달은 중력이 지구의 6분의 1 정도이고, 온도가 영하 170도에서 영상 120도를 오간다. 여기에다 강력한 방사선을 견디며 모래땅 위를 주행해야 한다. 최고 시속 15㎞로 달리고, 한 번에 8시간 정도는 주행할 수 있어야 한다. 차량에는 전력 관리를 비롯해 자율주행, 통신, 내비게이션 등 첨단기술이 적용된다. 우주비행사가 달에 없을 때는 원격으로 작동된다. 바네사 와이치 NASA 존슨우주센터 소장은 “이 차량은 달 표면을 탐사하고 과학 임무를 수행하는 우주비행사의 능력을 크게 향상하는 동시에, 임무를 위한 과학 플랫폼의 역할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선정된 기업은 차량 공급이 아닌 모빌리티 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로 계약을 맺는다. NASA에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시간에는 자체적인 상업적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 누구도 해보지 못한 ‘문 모빌리티 서비스’ 가 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 가능성을 보고 3개 기업 외에도 보잉, 미쉐린, 록히드마틴, 제너럴모터스(GM), 굿이어, 액시엄 스페이스, 오디세이 스페이스 리서치 등 우주부터 항공기, 자동차, 타이어, 방산 기업들이 총집결했다.
달 다음은 화성으로 간다
물과 식량, 탈것을 확보하고 우주기지를 지어 우주 건축까지 정복하면, 다음 목표는 일반인도 달에 사는 ‘달 정착'이다. NASA는 일반인도 살 수 있는 주거단지를 2040년까지 달에 건설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후에는 달을 거점으로 해서 화성으로 가는 ‘문투마스(Moon to Mars)’ 미션에 도전한다.
- Vol.465
24년 05/0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