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속가능기술 Trend K-택소노미, 녹색금융이 선택한 지속가능한 기후기술의 기준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약 40억 명이 기후 재해의 영향을 받았고, 50만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로 인한 경제적 피해는 무려 3,400조 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렇게 우리나라의 중앙은행도 기후변화가 우리 삶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글로벌 환경규제로 인해 수출이 크게 제약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동시에 기후변화는 우리에게 새로운 성장과 발전의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야말로 지금은 기후 위기의 시대다.
기후변화를 막는 탄소중립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정책, 기술, 자본, 참여’의 네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우선은 기존의 화석연료 중심의 경제·산업 체제를 바꿔낼 수 있는 담대한 정책적 전환이 필요하다. 정책적 방향이 결정됐으면 에너지, 수송, 도시는 물론 산업과 의식주 전반에 걸쳐 이러한 정책을 현실화시켜 줄 수 있는 혁신적인 기후기술이 필요하다. 또한 혁신 기술이 사회 전반에 적용될 수 있도록 대규모 자본 투자가 필요하다. 이 과정에 많은 사람이 함께 참여하고 협력해야만 탄소중립의 목표가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기술 관점에서는 혁신적이고 지속가능한 기후기술을 개발하고 보급해야 하는 절실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거시경제의 악화 속에 정부의 세수가 줄면서 국가 R&D 예산의 마련과 집행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와 전 지구촌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기후변화의 문제는 비단 R&D 예산을 확보해야 하는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기후변화로 인해 1차로 피해를 받는 대상은 가계, 기업 등 실물경제이지만, 이로 인한 경제적 피해는 고스란히 2차로 금융기관에 전가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논리에서 ‘녹색금융’이 등장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3월 19일 금융위원회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금융지원 확대 방안’을 발표하면서, 녹색금융의 전 세계적 흐름에 당당히 동참하게 되었다. 이에 따르면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서는 저탄소 공정 전환, 재생에너지 확대, 기후 신산업 지원의 조치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정부는 (1)2030년까지 녹색자금 420조 원 공급, (2)미래에너지펀드 9조 원 조성,(3)기후기술펀드 3조 원 등 9조 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할 계획이다(그림 1 참조).
특히 정부는 2030년까지 보증기관(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및 정책은행(KDB산업은행, IBK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의 연평균 녹색자금 공급량을 5개년 평균(매년 36조 원) 대비 67% 확대하기로 했다. 또한 2030년으로 갈수록 수요가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어 연도별 공급량도 조절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2024년 48.6조 원에서 2030년 74.4조 원까지 단계별로 공급량을 늘려나갈 계획이다. 또한 정부는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발전 증설에 약 188조 원이 필요하며, 이 중 금융 수요는 약 160조 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러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후순위 대출과 지분투자를 합친 약 54조 원 규모의 모험자본을 공급함으로써, 민간은행들의 선순위 대출(약 106조 원)과 사업주들의 지분투자(약 28조 원)를 끌어낼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정부는 2030년까지 약 8,597만 톤의 온실가스를 줄여,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29,100만 톤 대비 약 29.5% 감축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녹색금융이 적용하고 있는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이 바로 한국형 녹색분류체계, 즉 ‘K-택소노미’다. 택소노미(Taxonomy)란 원래 ‘분류학’ 이란 뜻인데, 녹색금융 지원을 위해 녹색경제활동을 분류해 놓았다고 해서 ‘녹색분류체계’라고 부른다.
‘택소노미’는 유럽연합이 2008년 1월에 ‘지속가능금융 실행계획(SFAP: Sustainable Finance Action Plan)’을 발표하면서 제시되었다. 기존 녹색금융에 적용했던 ‘글로벌 녹색 채권 원칙(Global Green Bond Principles)’은 녹색 경제활동의 ‘목록’을 제시했다. 그러나 녹색에너지라고 할 수 있는 태양광과 관련된 활동일지라도, 과도하게 자연을 훼손하거나 인권침해, 중대재해 발생, 뇌물공여 등 사회적 문제를 야기해서는 안 될 것이었다. 따라서 정부는 물론 기업과 금융기관 입장에서 녹색 경제활동을 ‘목록’이 아닌 ‘원칙 기반’으로 정의할 필요가 생겼다. 그리고 이를 구현한 것이 바로 ‘택소노미’인 것이다.
유럽연합은 2022년 초에 기후변화 완화 및 적응 관련 녹색 경제활동을 발표했다. 이어 2023년 11월, 물과 해양자원, 자원순환, 오염 예방·관리, 생물다양성과 생태계 관련된 녹색 경제활동을 발표했다. 또한 사회적 효익이 있는 경제활동도 개발하고 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러시아, 아세안 국가, 몽골, 브라질 등 20여 개 국가에서 자국 상황에 맞는 택소노미를 개발하고 있다. 국제표준화기구(ISO: International Standardization Organization)와 세계은행과 같은 기구들에서는 국가마다 법·정책 체계와 수준, 기술개발 및 상용화 수준, 환경의 기준에 대한 인지·인식 수준에 차이가 있으므로 자국 상황에 맞는 택소노미를 개발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20년부터 K-택소노미 가이드라인 개발을 시작했으며, 2021년 12월에 1차 가이드라인을 발표하였다. 2022년 12월에는 산업, 에너지, 수송 등 여러 분야에 걸친 74개 녹색 경제활동의 기준을 담은 개정안을 발표했다. K-택소노미는 「환경기술 및 환경산업 지원법」상 환경부 장관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금융위원회 위원장과 협의하여 개발하도록 하고 있다. K-택소노미는 기후변화 완화와 적응, 물, 순환 경제, 오염 방지, 생물다양성의 6대 환경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 중 하나 이상의 목표에 기여해야 하며(활동기준, 인정기준), 그 과정에서 나머지 환경목표에 심각한 환경피해를 입히지 않아야 한다(배제기준). 또한 인권, 안전, 뇌물 등 최소한의 사회적 기준(보호 기준)을 모두 충족할 때, 택소노미에 적합한 녹색 경제활동으로 판단된다. K-택소노미는 녹색부문과 한시적인 녹색으로 간주하는 전환부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녹색부문은 공통 활동과 6대 환경목표로 구성되어 있고, 전환부문은 온실가스 감축 관련 1개의 환경목표로 구성되어 있다.
기후변화나 환경 관련 기술 개발 및 혁신에서도 K-택소노미를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특히 개발된 기술의 상용화나 스케일업을 위해 추가 투자와 파이낸싱 지원을 받는 과정에서, 금융기관들로부터 K-택소노미 기준에 따른 적합성 여부를 검토받게 될 것이기에 기술 개발과 혁신의 단계에서부터 K-택소노미를 고려해야 한다. 특히 K-택소노미의 대상이 되는데,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소위 ‘갈색 경제활동’으로 분류된다. 이 경우 투자자나 금융기관들로부터 외면받을 수 있다. 반면 K-택소노미의 기준을 충족하는 경우, 혁신 기술의 상용화 과정에서 더 많은 투자와 금융지원을 더 유리한 조건에 받을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 Vol.465
24년 05/0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