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pecial Issue 03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백신·치료제 등 대응 기술 개발 방향
신변종 감염병의 위협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지난 몇 년 동안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위기와 고난을 지나왔다. 2009년 신종플루, 2015년 메르스 등 과거의 팬데믹과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엄청난 사회·경제적 위기를 수반하며, 감염병의 위협이 얼마나 심각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또한 효과적인 대응 시스템을 토대로 하는 강력한 보건 안보의 구축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다시 한번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감염병 팬데믹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한 재난이다. 역사책에 나오는 역병부터 21세기의 코로나19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감염병이 창궐했고, 감염병 팬데믹은 수많은 희생과 세상의 혼란을 초래하는 대재앙이 되곤 했다.
잘 모르던 새로운 바이러스 등 신종 병원체나 인플루엔자와 같은 기존 병원체의 변종이 전파되고 병증의 새로운 양상을 일으키는 바람에, 대유행 전에는 관심도 없던 백신과 치료제가 갑자기 필요해지고, 없으면 난리가 나는 일이 반복되었다. 유전자, 단백질 등을 이용한 분자 진단 기술은 상당히 잘 발달해, 이제는 진단도 못 하고 무엇인지도 모르는 병원체에 감염되는 일은 드물어졌다. 그러나 백신이나 치료제 없이는 여전히, 퍼져가는 감염병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쉽다. 최근의 팬데믹은 수십 년 전에 비해 전혀 다른 양상으로 변화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발생 주기가 급격히 짧아지고 있으며, 전파 속도가 매우 빨라지고 전파 범위도 광활해지고 있다. 개선된 위생이나 의료기술만으로는 대응이 어려운 위험 요인이 수시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지역 간의 인구 이동이 지속해서 증가하고 교통이 발달해 이동 범위가 확장되고 속도가 붙으며, 현대인의 생활상은 오지의 병원체에 부지불식간 노출될 수 있게 되었다. 더불어 도시화한 현대사회와 집약적인 축산환경은 놀랍도록 위태로운 환경을 만들어 왔다. 새롭게 침입한 바이러스 등이 더욱 쉽게 전파될 수 있는 면역력이 낮고 밀집된 전파 대상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조만간 다시 찾아올 팬데믹의 대비는 무엇보다 중요한 미래 전략일 수밖에 없다.
팬데믹 대응을 위한 미충족 의료 요구
기나긴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우리는 현대의 의료기술과 시스템을 발전시켜 왔지만, 이는 여전히 매우 부족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인지하게 되었다. 심지어 백신이나 치료제는 기술적, 산업적으로 심각하게 부족하여 팬데믹의 위협을 안전하게 감당해 낼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것이 드러났다. 예방용 백신은 감염병 대응에 가장 효과적이고 유용한 수단으로 인식되어, 새로운 백신이 꾸준히 개발되었다. 그러나 전통적 개발 방식은 5년 이상의 긴 시간을 필요로 하므로 팬데믹 당시 새로운 병원체에 대한 즉각적 대응은 불가능했다. 이러한 이유로 위험한 병원체들을 예측하고, 쓰지 않을 수도 있는 백신들을 미리미리 개발·비축하는 전략이 유일한 대비책으로 추진되었다.
그런데 코로나19 백신은 mRNA 등 핵산 기반 신기술로 300여 일 만에 개발되어 대유행 도중에 감염병 전파를 막아내는 결과를 보였다. 이로써 앞으로의 백신은 “Just in Time, Just in Case(필요한 시기, 필요한 경우에 즉각 대응)”의 전략으로 개발하고자 하는 수요가 생겨났다. 치료제의 상황은 더욱 복잡하고 어려웠다. 개발되었던 수많은 항바이러스제나 항생제는 팬데믹 상황에서 확실한 효능을 보이지 못하였고, 효과 좋은 신규 치료제의 개발만을 기다리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2009년 신종플루 때 개발되어 사용 중인 치료제나 코로나19에 맞춰 개발된 치료제도 팬데믹의 양상을 명확하게 바꾸기는 어려웠다. 약효 재창출(Drug Repositioning) 기술 등의 가능성이 과거보다 강조되었지만, 여전히 치료제의 개발은 전략 수립도 쉽지 않고 실제 효능을 기대할 수 있는 약제의 확보도 어렵다.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효율적인 대응 시스템 및 기술이 발전하여, 진단 기술은 상대적으로 꽤 구축된 편이다. 그러나 1일 수백만 명 이상의 초대규모 진단 수요가 발생하는 경우, 검사실 정도로 정확히 진단하거나 그 결과를 중앙통제기관에서 취합해 관리할 수 있는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이러한 취약점 등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부분이다. 한편으로, 팬데믹 위협으로부터 상시적 사회 안전을 유지해 주는 조기 감시 차단 기술과 방역생태계 구축 등의 총체적 방역 기술은 여전히 멀기만 한 꿈인 것 같지만, 팬데믹을 지날 때마다 그 관심과 수요는 증대되고 있다.
신규 백신 기술 개발 동향
팬데믹 대응을 위한 도구로써 백신 개발은, 코로나19로 인해 획기적인 패러다임의 변화를 맞았다. 벡터나 mRNA 등 새로운 기술은 1년 미만의 단기간에 신속하게 백신을 생산, 공급하여 팬데믹의 종결에 기여하였다. 또한 심각하게 발생하고 있는 변이주에 대해서도 효과적인 대응 수단으로서 가능성을 보였다. mRNA 백신은 개발의 신속성과 대량 생산능력을 기반으로, ‘장기간 개발과 사전 비축이 필요’했던 백신 공급의 전통적 패러다임을 ‘대유행 기간 중 즉시 사용이 가능한 신속 생산’의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했다. 이러한 변화로 인하여, 최근 WHO나 CEPI 등 국제기구와 미국, 유럽, 일본 등 기술 선진국 정부 기관에서는 ‘100일 이내 백신 개발·생산(100 days Mission)’이나 ‘광속 프로젝트(Operation Warp Speed)’라는 새로운 전략을 백신 연구개발의 새로운 목표로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mRNA 백신 개발의 이러한 양상은 대표적 장점인 신속성 외에도 단순한 생산 공정과 장비, 맞춤형 항암제 등 향후 시장의 무한한 가능성에 기반한다. 이에 더하여 보건·안보적, 경제 산업적 장점이 mRNA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을 뒷받침하고 있다. 새롭게 개발되고 있는 백신 기술은 mRNA 백신 외에도 국내 SK바이오사이언스가 코로나19 백신으로 선보였던 자가조립 합성항원 기술이 있다. 또한 글로벌 기업 Johnson&Johnson, AstraZeneca를 비롯하여 국내기업 셀리드에서 선보였던 벡터 백신 기술 등이 있는데, 대부분 신속성과 즉시 사용성을 목표로 연구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mRNA 백신의 핵심기술 중 하나로 항원 전달체(LNP: Lipid Nano-Particle)의 중요성이 높게 평가되고 있다. 나노물질 등을 이용한 신규 전달체의 개발 수요가 과거에 비해 훨씬 다양하게 발전하고 있다.
미래의 백신 등 팬데믹 대응 기술 방향
백신은 다음 팬데믹을 대비하는 과정에서 더욱더 핵심적이고 실질적인 수단으로서 주목받을 것이다. “100일 이내 백신 생산”이라는 전략이 팬데믹 발생 초기부터 위기 대응의 주된 전략으로 고려될 것이며, 최대한 빠른 백신의 공급을 당연히 고대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백신의 신속한 생산과 공급을 위해서는, 기술과 공정의 특성상 mRNA 백신이 중심이 될 것이다. mRNA 백신은 접종 횟수 이슈와 이로 인한 변이주 대응의 문제가 있지만, 상황에 따라서 신속 생산이 가능한 벡터 백신도 대안이 될 수 있다. 감염병 팬데믹 초기에 성공적인 예방 접종으로 엔데믹 상황에 이르더라도, 지속적인 백신 접종의 수요는 남아있을 것이다. 따라서 신속 대응용 mRNA 백신 접종 이후에 일상적 예방 접종도 담당할 수 있도록, 안전성이 가장 우수한 재조합 단백질 항원 백신(합성항원 백신)의 수요도 장기적 관점에서 고려해야 한다.
mRNA 백신의 또 다른 연구개발 방향은 동시다발적인 개별지역 생산방식이다. 팬데믹 발생 시 다양한 규모의 국가별, 지역별 수요에 개별적으로 대응하여 신속하게 백신을 생산할 수 있도록, WHO 등 국제기구들은 이동형 소규모 생산 유닛을 이용한 현지 생산시스템을 구상하고 있다. 관련 기술을 보유한 Moderna사나 Pfizer사 등 mRNA 백신 관련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이러한 생산방식에 필요한 이동형 캐비닛 모듈을 개발하고 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팬데믹뿐만 아니라 mRNA 백신의 미래 시장이 될 항암백신, 치료제 등의 맞춤형 인하우스 생산을 위해서도 이 기술이 반드시 필요하다.
따라서 소규모 이동형 생산 유닛 기술과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그 외에도 치료제를 신속하게 개발하기 위해 인공지능 기반 초고속 대규모 후보 약물 효능평가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또 현재 사용 중인 신속진단키트의 정밀성을 검사실 수준인 정확도 95% 이상으로 발전시키고, 이를 네트워크화하여 개인이 현장에서 검사하더라도 그 결과를 중앙 통제 부서에서 실시간 모니터링 및 대응에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은 코로나19를 지나면서 우리가 발견한 시급한 수요다. 100일 이내 백신 생산, 인공지능 기반 치료제의 신속 개발, 네트워크 기반 정밀 검사용 신속진단키트의 개발, 이러한 기술들에 더하여 조기 감시·대응이 가능한 방역생태계가 구축되면 더 이상 팬데믹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날이 올 것이다.
- Vol.465
24년 05/0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