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비로운 기술생활 때로는 장난스럽게, 때로는 진지하게, 과학자들의 값비싼 기행
흔히 말하는 ‘공대 개그’중에 과학자들의 무모함을 꼬집는 농담이 있다. 집의 어떤 물건을 잡았을 때 감전된다면 보통 사람들은 그 물건에 손을 대지 않겠지만, 과학자는 매번 손을 댈 때마다 ‘그런가? 다른 곳을 붙잡고 손대면 괜찮을까?’라며 온갖 가설을 세우고는 기어코 여러 번 시도해 본다는 것이다. 농담이긴 하지만 이 이야기만큼 과학의 정신을 잘 표현한 말도 드물다.
과학자들이 가끔은 괴짜처럼 보이는 이유도 호기심이 앞서 남들은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기상천외한 일을 저지르기 때문이다. 물론 과학자들도 사람이니 기행의 동기나 계기는 제각각이다. 그냥 순전히 재미로, ‘내가 이렇게 대단한 일을 했다.’라는 과시할 목적으로, 또는 나름의 메시지를 전달할 요량으로 일을 저지르곤 한다. 물론 평범한 아이디어가 평범하지 않은 곳에서 튀어나오다 보니 상상도 못할 기행처럼 되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천문학적 스케일의 라운딩
2022년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이 본격적인 관측을 시작하던 시절, 프랑스의 물리학자인 에티엔느 클렝이 자신의 트위터(현재 X)에 사진 한 장을 올렸다. 제임스웹 망원경으로 태양계에서 가장 가까운 천체인 ‘프록시마센터우리’를 촬영한 사진이었다. 마치 태양을 촬영한 듯 요동치는 별의 표면이 생생하게 묘사된 이 사진은 제임스웹 망원경의 놀라운 성능을 보여준다며 큰 화제가 됐다. 그러나 제임스웹 망원경은 프록시마 센타우리를 촬영한 적이 없었다.
어처구니없게도 클렝이 올린 사진의 정체는 스페인식 소시지, ‘초리조’였다. 비계가 중간중간 박힌 붉은 소시지가 마치 별의 표면처럼 보였던 것이다. 클렝은 이 트윗을 올린 후 1시간 뒤 진실을 밝히면서 ‘이미지가 설득력 있어 보인다고 무작정 믿으면 안 된다.’라는 취지였다고 변명했는데, 클렝이 철학을 함께 전공한 과학 윤리 전문가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리 궁색한 변명은 아닌 듯하다. 그렇다고는 해도 굳이 이런 ‘어그로’가 필요했을지는 의문이다.
에티엔느 클렝이 제임스웹 망원경의 성과라며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사진. 얼핏 보면 정말로 별의 망원경 사진처럼 보인다.
디테일 좀 보라고 너스레 떠는 호들갑이 인상적이다. ©X
사실 클렝의 장난은 딱히 획기적인 것은 아니다. 이런 식으로 모호한 사진을 올려서 사람들을 낚는 장난이야 누구나 하니까. 최신 과학의 정수인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의 성과를 과학자가 올리니 진짜라고 생각해서 엄청난 화제가 됐을 뿐이다. 그런데 천문학계가 워낙 스케일이 커서 그런지, 다른 사람이라면 상상하지 못할 장난을 치기도 한다. 달 표면을 밟은 세 번째 인류인 앨런 셰퍼드가 그 주인공이다.
1971년 2월 6일, 미국은 사상 세 번째로 사람을 달에 보냈다. 아폴로 14호는 우여곡절이 많은 임무였다. 바로 직전 비행이 하마터면 우주비행사 셋을 잃을 뻔했던 아폴로 13호였던데다, 순번상 원래 14호 승무원으로 내정되어 있던 월터 커닝햄과 돈 아이즐리가 관제팀과 욕지거리를 동반하며 치고받은 끝에 지상 업무로 밀려나 완전히 새로 팀을 짜야 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머큐리 계획부터 참여한 올드비(old bee)였지만 건강상의 문제로 우주비행 자격을 잃었던 앨런 셰퍼드가 절치부심한 끝에 14호 사령관으로 낙점됐다.
달 표면에 내린 미첼(왼쪽)과 셰퍼드(오른쪽)가 실험장비를 이용하는 모습. 아폴로 14호에는 다양한 실험장비를 탑재하여
선외활동 시간에 할 일이 한층 많았다. ©NASA
전 과정이 생생하게 생중계된 ‘성공적 실패’였던 아폴로 13호 이후 처음인 데다 우주 계획의 최고참 중 한 명인 셰퍼드가 참여한 임무였기에, 14호에는 많은 이목이 집중됐다. 셰퍼드는 오랜만의 우주비행이었는데도 아폴로 계획의 전통이 된 수많은 잔고장과 위기를 노련하게 극복하며 아폴로 13호가 착륙하기로 한 프라마우로 크레이터에 안착했다. 총 6번의 유인 달 착륙 중 목표지점에 가장 가까운, 성공적인 착륙이었다. 달 표면에서의 임무도 성공적이었다. 셰퍼드와 에드거 미첼은 아폴로 계획 최초로 손수레를 사용해서 실험장비와 샘플을 날랐고, 두 번째 선외활동에서는 당초 계획인 300m를 20m나 초과해서 활동하기도 했다.
순조롭게 진행되던 임무는 9시간의 선외활동을 마치고 달 착륙선으로 돌아가던 셰퍼드가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 사전에 승인되지 않은 물건을 사령관이 직접 몰래 챙겼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자 휴스턴의 관제센터가 술렁였다. 6번 아이언 골프채였다. 골프광이던 셰퍼드가 14호의 임무 책임자인 밥 길루스에게 사정사정해서 간신히 챙긴 비장의 무기였다. “휴스턴, 손에 들고 있는 것이 비상용 샘플 반환용 손잡이고 그 밑에 6번 아이언이 매달려 있습니다. 왼손에는 흰색 골프공이 있고요. 안타깝게도 슈트가 너무 뻣뻣해서 어렵긴 하지만 여기서 벙커샷을 날려볼게요.”
아폴로 14호 임무 영상에서 발췌한 셰퍼드의 골프 장면(오른쪽)과 영상에서 포착한 골프공(오른쪽).©NASA
의기양양한 셰퍼드의 교신과는 달리 두 번의 실패 끝에 간신히 클럽에 맞은 공은 근처 분화구에 처박혔다. 하지만 셰퍼드가 챙겨간 공은 두 개. 두 번째 샷은 제대로 맞아서 달의 새까만 하늘로 사라져 버렸다. ‘월면 골프’라는 소소한 일탈로 귀환 후 잔소리를 피할 수는 없었지만, 셰퍼드의 샷은 지금까지도 전무후무한 월면 골프 기록으로 남아있다. 드라이버가 아닌 6번 아이언으로 친 것이긴 하지만 아마 비거리도 인류 최고 기록일 것이다. 동시에 역사상 가장 값비싼 라운딩이라는 기록도. 휴스턴의 관제사들이 실시간으로 이 모습을 보면서 즐거워한 것은 물론이다. 어쨌든 14호 임무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고 셰퍼드의 골프로 누구도 다치지 않았으니까.
미국골프협회를 방문했을 때의 앨런 셰퍼드. 들고 있는 금속 덩어리가 아폴로 14호에 숨겨 갔던 조립식 6번 아이언이다.
셰퍼드에게는 달에서의 이 장난이 평생의 안줏거리였던 모양이다.
골프광이라면 안 그럴 사람이 있겠냐마는. ©Robert Walker/USGA
물리학자의 애니메이션 기술은 세계 제일!
클렝과 셰퍼드의 기행이 딱히 목적이 없는 장난이었다면, 대놓고 으스대는 듯한 느낌의 장난도 있다. 정확히는 장난이라기보다는 ‘과시’라고 해야 맞겠지만. 이 장난의 주역은 세계적인 컴퓨터 회사인 IBM의 연구원들이다. 현재 사용되는 현미경 중 ‘주사 터널링 현미경(STM, Scanning Tunneling Microscopy)’이라는 것이 있다. 1982년 개발된 STM은 정밀함의 대명사처럼 통하는 전자현미경보다도 훨씬 작은 물체까지 볼 수 있다.
이 복잡한 기계장치가 바로 원자를 보는 기계, STM이다. 사진은 IBM 연구진이 사용한 커스텀 모델이다. ©IBM
위 기계에서 관찰한 시료를 확대한 이미지가 모니터에 표시된다. 화면에 보이는 동그라미가 모두 금속 표면의 원자 배열이다. ©IBM
STM은 수평 방향으로는 0.1nm, 수직 방향으로는 0.01nm의 분해능을 지닌다. 달리 말하면 0.1nm 크기의 물체를 식별할 수 있다는 뜻이다. 원자의 크기가 0.1~0.5nm 정도이니 STM을 이용하면 원자를 직접 볼 수 있다. 원자 크기를 볼 수 있다는 데서 짐작할 수 있듯, STM은 양자역학의 원리를 이용한다. ‘양자 터널링’이라는 현상이다.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로 이루어진다. 원자핵 주위에는 전자가 일정한 범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에너지 벽’이 있어서 전자를 원자 속에 잡아두는데, 양자적 수준에서는 전자가 이 벽을 마치 유령처럼 뚫고 지나가기도 한다. 이를 에너지 벽에 터널을 뚫고 가는 것 같다고 하여 양자 터널링 현상이라고 한다.
STM의 작동 방식을 보여주는 그림. 동그라미가 도체의 원자, 위쪽에 매달린 덩어리가 STM의 탐침,
아래쪽의 넓은 그물망이 시료의 표면이다. 끝을 원자 하나의 크기가 되도록 날카롭게 다듬은 탐침으로
시료의 표면을 훑어내며 미세구조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양자 터널링을 우리 일상에서 직접 관찰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나 원자 수준으로 작은 공간에서는 양자 터널링이 쉽게 일어난다. 전기가 잘 통하는 도체에 다른 도체를 원자 하나 간격 정도로 아주 가까이 가져가면, 양쪽의 도체가 서로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도 양자 터널링에 의해 전자 일부가 반대편 도체 원자로 이동할 수 있다. 이때 한쪽 도체에 전압을 걸어 전자를 공급해 주면 이 전자가 반대편 원자에 지속적으로 넘어가서 ‘터널링전류’가 생성된다. 양자 터널링은 원자 사이의 거리와 밀도에 영향을 받으므로, 이 전류를 정교하게 측정하면 원자의 경계면을 훑어낼 수 있다. STM은 끝부분에 원자 하나만 위치할 정도로 아주 뾰족하게 만든 탐침을 시료에 가까이 대고 전압을 걸어 시료의 표면을 영상화하는 장치다.
IBM 연구진이 STM으로 원자를 하나하나 옮겨 만든 손 그림.
누가 ‘너드’ 아니랄까 봐 스타트렉의 잘 알려진 손 인사인 ‘Long live and prosper’를 그려놨다.©IBM
원래는 물체를 정밀하게 보라고 만든 STM이지만 이를 ‘집게’로 이용할 수도 있다. 원리에서 보듯 STM은 탐침에 전압을 걸어서 작동시킨다. 이에 따라 탐침 끝에 전기장이 생성되는데, 이로 인한 전자기력을 이용하면 자성을 지닌 원자를 탐침에 붙여서 옮길 수 있다. 전자석을 이용해서 철처럼 자성이 있는 물체를 옮기는 것과 비슷하다. 왜 컴퓨터 기업이 원자를 움직이는 연구를 하나 싶을 텐데, 저장장치 때문이다. 지금은 SSD로 많이 대체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안정적으로 대용량 데이터를 저장하려면 하드디스크가 필요하다. 현재 사용되는 하드디스크는 전자석을 이용하여 금속 원반을 자화(磁化)시켜서 작동한다.
컴퓨터의 이진 데이터를 1은 N극이 위로 가게, 0은아래로 가게 자화시키는 식이다. 이 방법은 신뢰성이 높고 데이터를 비교적 안정적으로 보존할 수 있지만 자화되는 크기가 원자의 관점에서는 제법 커서 밀도를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 지금처럼 대용량의 데이터를 수시로 덮어써야 하는 환경에서는 하드디스크의 낮은 데이터 밀도가 컴퓨팅 성능에 병목현상을 유발한다. 그런데 원자 하나가 이진 데이터(비트) 하나를 표현하게 해서 밀도를 극한까지 높인다면? 저장장치의 크기를 줄이고 에너지 효율을 높일 수 있을 뿐 아니라 데이터를 찾아내는 탐침의 이동 거리를 최소화함으로써 성능도 비약적으로 높일 수 있다.
<소년과 원자>의 포스터. 연구용으로 만든 작품치고는 본격적이다.
가운데 노란색으로 쓴 ‘세계에서 가장 작은 영화’가 눈에 띈다. ©IBM
IBM의 연구진은 2012년 초 STM의 탐침으로 원자를 하나하나 옮기는 데 성공하여 차세대 저장장치의 원천기술을 확보했다. 이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원자로 ‘그림’을 그려서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이유는 간단했다. 단순히 원자를 옮기는 것을 시연하는 것보다, 원자를 움직여서 무언가 그럴듯한 것을 만드는 것이 인상적이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한국으로 무대를 옮겨 연구를 이어나가고 있는 IBM의 당시수석연구원, 안드레아스 하인리히는 조금 재미있는 시도였다고 순순히 시인했다.
그러나 이 재미있는 시도에 나선 연구원들은 꽤나 진심이었나보다. IBM의 연구진 4명이 하루 18시간씩 2주 동안이나 이 ‘작품’을 만드는 데 매달렸으니까. 그야말로 점묘화로 애니메이션을 만들듯, 한땀 한땀 원자로 그림을 빚어낸 셈이다. 이렇게 제작된 ‘소년과 원자’는 정식 작품으로 인정받았다. 영화 정보 사이트인 IMDb에서도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분류된 이 ‘작품’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신기하기만 했지 줄거리가 공대 개그마냥 썰렁해서 평점은 6.8에 그쳤지만, 역사상 재료가 가장 작은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에서 한동안 독보적인 지위를 유지할 듯하다. 물론 장비를 고려하면 시간당 가장 비싸게 만든 애니메이션이기도 하다.
명왕(冥王)에게가는 길, 우주를 향한 운구행렬
다시 우주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과학자들의 장난은 단순한 익살일 수도, ‘쩌는’ 능력을 과시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간혹 기막히게 낭만적인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것도 우주적 스케일로. 2006년 1월 19일, 미국 플로리다 케이프커내버럴에서는 아주 먼 길을 떠날 로켓이 발사됐다. NASA의 태양계 천체 탐사 프로젝트인 ‘뉴 프런티어’ 계획의 첫 번째 타자, ‘뉴허라이즌스(New Horizons)’호를 실은 아틀라스V 로켓이었다. 뉴허라이즌스의 임무는 당시까지만 해도 ‘미국인이 발견한 유일한 태양계 행성’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천체, 명왕성 탐사였다. 미국인으로서는 나름 자존심이 걸린 일이었다.
명왕성을 발견한 미국의 천문학자 클라이드 톰보.
명왕성은 2006년까지만 해도 태양계 행성 중 유일하게 미국인이 이름 붙인 행성이었다.
뉴허라이즌스에 거는 기대는 컸다. 뉴허라이즌스가 근접촬영에 성공한 2015년까지도 인류는 명왕성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너무 먼 데다가 크기도 작아서 유의미한 관측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외우주탐사선인 보이저(Voyager)가 명왕성 궤도를 지나갈 때 관측하자는 아이디어도 있었지만, 보이저의 비행경로와 맞지 않아 탐사를 포기했다. 게다가 명왕성은 미국인이 꽤나 아끼는 천체인 데다 장장 30년 넘게 준비해 온 탐사였으니 앨런 스턴을 비롯한 탐사팀은 뉴허라이즌스에 엄청난 정성을 쏟았다. 탐사팀이 정성을 들인 부수적인 이유도 있었다. 뉴허라이즌스에 아주 특별한 손님을 태워 보내기로 했기 때문이다.
뉴허라이즌스에는 명왕성을 발견한 천문학자, 클라이드 톰보(Clyde Tombaugh)의 유골 일부가 실렸다. 1997년 90세를 일기로 타계한 톰보는 생전에 “내 유해를 우주로 보내달라.”는 유언을 남겼는데 이에 응한 것이다. 톰보가 명왕성을 발견했을 때는 24살인 1930년, 학사학위도 따지 않은 채 퍼시벌 로웰 천문대에서 일하고 있을 때다. 당시 천문대를 세운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은 해왕성 관측 결과를 바탕으로 아홉 번째 행성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톰보의 역할은 망원경으로 촬영한 수많은 밤하늘 사진을 대조하며 가설에 맞는 천체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지독하게 지루한 일이었지만 성실하게 작업에 매달린 톰보는 마침내 명왕성을 찾는 데 성공했다. 그야말로 미국식 근면함의 전형이었다. 미국인의 명왕성에 대한 애착이 이해될 만하다.
뉴허라이즌스가 최근접점에서 촬영한 명왕성. 색상을 보정한 사진이다. 뉴허라이즌스의 활약으로 명왕성의
표면 구조가 밝혀졌으며, 예상과는 달리 지각 활동이 약하지만 지속되는, ‘살아 있는’ 천체인 것으로 드러났다. ©NASA
뉴허라이즌스는 톰보를 태우고 10년을 비행해 미국 동부표준시로 2015년 7월14일, 명왕성에 가장 가까운 지점에 도달했다. 뉴허라이즌스는 역사상 가장 선명하며 자세한 명왕성 사진을 남기고 톰보와 함께 명왕성 궤도 너머 카이퍼 벨트를 향해 비행하고 있다. 카이퍼 벨트를 지나면 파이어니어와 보이저가 지난 길을 따라, 뉴허라이즌스에 탄 톰보도 저승을 넘어 심우주로 머나먼 여정을 떠날 것이다. 탐사팀은 대선배인 톰보를 빈손으로 보내지는 않았다.
뉴허라이즌스에는 로켓이 발사된 플로리다의 상징이 새겨진 25센트 동전이 함께 실렸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죽은 사람은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강인 스틱스강을 건널 때 뱃사공 카론에게 뱃삯을 내야 한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인은 동전을 망자와 함께 매장했다. 마침 톰보가 향한 곳이 명왕성이고 명왕성의 가장 큰 위성 이름이 카론이니, 25센트는 톰보를 위한 뱃삯인 셈이다. 뭔가 월급 마냥 물가 상승이 반영 안 된 금액 같지만, 카론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성의 표시’니 그러려니 하자.
뉴허라이즌스에 부착된 톰보의 유골함. 그의 유골 중 1온스(약 28그램)가 담겼다.
유골함에는 비문이 새겨졌다. “미국인 클라이드 톰보 여기에 눕다.
그는 명왕성과 태양계의 세 번째 영역을 발견했다. 아델과 무론의 자식, 패트리샤의 남편,
아네트와 앨든의 아버지였다. 천문학자이자 선생님이자 익살꾼이자 우리의 친구,
클라이드 W. 톰보(1906~1997)”©NASA
애석하게도 톰보가 명왕성을 향해 기나긴 여정을 떠난 지 7개월후, 국제천문연맹은 명왕성을 행성에서 퇴출했다. 명왕성이 워낙 작아서 행성 지위가 적절한지는 이전부터 논란이 있었다. 다만 톰보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그가 살아있는 동안은 논의를 미뤄두기로 하다가, 1997년 톰보의 사후 재논의하기 시작해 2006년에야 확정한 것이다. 명왕성은 ‘플루토이드’라는 새로운 분류의 왜행성으로 재분류됐다. 명왕성과 함께 하우메아, 마케마케, 에리스의 네 개 행성이 이 분류에 속한다.
사실 명왕성의 지위에 대해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논의가 오갔기에 이는 충분히 예견된 결과였다. 그러나 뉴허라이즌스를 준비한 NASA의 탐사팀은 국제천문연맹의 결정에 완강하게 반발했다. 그도 그럴 것이 뉴허라이즌스는 예산 부족으로 날아갈 뻔한 사업을 일단의 엔지니어들이 완강하게 버티면서 끌고 온 사업이었다. 당연히 명왕성과 프로젝트에 대한 애착이 대단했다. 프로젝트를 이끈 앨런 스턴을 비롯한 일부 엔지니어들은 지금도 국제천문연맹의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행성과학과 천문학은 다르다.’라는 것이 표면상의 이유기는 하지만, 누가 봐도 상실감이 가장 큰 이유로 보인다.
목성을 배경으로 비행하는 뉴허라이즌스의 상상도.
2015년 명왕성을 지나친 뉴허라이즌스는 톰보의 유골과 함께 카이퍼벨트를 향하고 있다. ©NASA
정작 자신이 발견한 행성으로 길을 떠난 톰보가 명왕성의 지위가 변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면 어땠을지 궁금하다. 자신의 발견이 격하되는 것 같다는 생각에 불편했을까, 아니면 과학자 사회의 토의 결과를 받아들였을까. 톰보의 아내인 패트리샤 톰보는 “남편은 과학자였다. 만약 살아 있었다면 천문학계의 결정에 동의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어쩌면 톰보에게 명왕성의 지위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지구에서 태어난 생명 중 누구도 해보지 못한 ‘진짜’ 저승 너머를 여행하는데 그깟 명왕성의 지위가 대수였을까.
- Vol.466
24년 07/0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