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pecial Issue Intro 전통 소재, 미래를 향한 화려한 변신
전통 소재는 인류 문명의 토대
소재(素材, Materials)는 인류 문명의 진화와 발전을 견인해 온 디딤돌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철강은 산업혁명 이후 본격적인 철기시대를 선도하며 물질문명을 크게 개화시켰고, 시멘트는 각종 고층 건물로 상징되는 도시화를 촉진했다. 그 훨씬 이전에 종이는 지식의 확산과 축적을 가능하게 했고, 유리는 망원경과 현미경이 상징하는 것처럼 인류의 시공간 지평을 비약적으로 확장했다. 땅속 석유에서 만들어진 화학소재(플라스틱)는 개개인의 일상 편의를 크게 신장시키며 누구나 싼 가격에 소재의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했다.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철강을 필두로 한 시멘트, 종이, 유리, 화학소재 등 전통 소재는 지금 이 순간에도 현대 사회를 지탱하는 필수 불가결한 요소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기후 위기는 전통 소재의 생존을 위협
그런데 최근 기후 위기가 부각되면서 전통 소재의 태생적 특성이 큰 약점으로 작용하며 이들의 생존 기반을 위협하고 있다. 이를 크게 원재료, 제조 기술, 생산공정, 밸류체인 측면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우선 원재료 측면에서는 자연 유래된 재료의 특성상 탄소배출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즉, 철강은 철광석/유연탄, 시멘트는 석회석, 유리는 모래, 플라스틱은 석유, 종이는 나무로부터 만들어지기 때문에 애초부터 탄소 이슈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다음으로, 제조 기술은 100년 이상 성숙·완성된 기술이기 때문에 신속한 기술 전환이 여의찮다.
예를 들어 철강의 베세머 제강법은 1856년에 처음 등장하였고, 시멘트 포틀랜드 공법은 18C에 완성되었다. 유리의 기계 성형 기술과 종이의 화학펄프법도 19C로 거슬러 올라간다. 역사가 깊다는 것은 그만큼 기술적 완성도가 높다는 의미지만, 반대로 해석하면 그만큼 획기적인 기술 전환이 어렵다는 말이기도 하다. 생산공정 측면에서도 이들 전통 소재는 자본 집약적 장치산업이기에 에너지 다(多)소비업이라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철강의 제선 공정은 섭씨 1,538도, 시멘트 클링커 소성로는 1,450도, 유리 용융로는 1,300~1,500도, 플라스틱 NCC 공정은 800도에서 이루어진다. 이 때문에 전기, 가스 등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게 되고 결국 환경 부담으로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이들 전통 소재는 산업 밸류체인에서 상대적으로 업스트림에 위치하기 때문에 경제 전체의 환경 부담이 고스란히 집중된다는 고민을 안고 있다. 예를 들어 철강은 비록 생산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하지만, 이후에는 자동차, 조선, 기계, 가전, 건설 등 많은 제조업의 기초소재가 된다. 플라스틱도 비록 화석연료에서 출발하지만, 공장 문을 나선 후에는 수십만 종의 생활용품과 각종 산업용품의 기초 재료가 된다. 상류의 계곡이 맑아야 하류의 강 전체가 맑아지는 것처럼, 전통 소재 산업이 친환경적이어야 이들 전통 소재를 사용하는 각종 수요산업도 친환경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전통 소재는 사회 전체를 맑고 깨끗하게 만들어야 하는 부담, 더 나아가 친환경의 숙명을 안고 있다고 하겠다.
탈탄소 친환경을 향한 전통 소재의 변신
최근 전통 소재는 새로운 시대 환경에 맞추어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그 폭과 속도는 기존에 익숙했던 상식을 뒤집을 정도로 가히 놀라운 경지다. 이러한 전통 소재의 변신으로는 먼저 탈(脫)탄소 친환경 노력을 들 수 있다. 전통 소재는 탄소중립 사회를 구현하는 데 막중한 책임과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전통 소재 업계 입장에서도 탈탄소를 포함한 전반적인 ESG 대응 노력은 기업의 존속 자격(License-to-operate)이자 본원 경쟁력을 좌우하는 필수 요소다. 그만큼 탄소와 결별하기 위한 전통 소재의 변신이 다각도로 진행 중이다. 유럽은 글로벌 탄소중립 트렌드를 선도해 왔고 구체적인 규제와 지원 정책이 잘 갖춰져 있어, 독일의 바스프(BASF) 등 유럽의 몇몇 전통 소재 기업들은 이미 친환경 트렌드를 선도하며 ESG 우수 기업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탈탄소 측면에서 보면, 철강은 철광석에 포함된 철(Fe) 성분의 환원 과정에서 유연탄을 사용하기 때문에 다량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는 문제가 있다. 핵심 ESG 이슈로는 당연히 고로 환원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량의 이산화탄소 배출, 슬래그 등 부산물 처리 문제, 전기로의 전기 에너지 다량 사용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유연탄 대신 수소를 환원제로 사용하는 수소환원제철 공법을 개발하고 슬래그를 시멘트 원료로 재활용하며, 무한 재생 가능한 철의 강점을 살린 순환 경제를 구현하는 등의 노력을 진행하고 있다.
시멘트는 주원료 자체에 포함된 탄소와 함께 소성 공정에서의 많은 에너지 사용이 취약점이다. 따라서 핵심 ESG 이슈로 원료 채광의 환경문제와 그로 인한 지역사회 갈등, 원료의 소성 반응 자체에서 배출되는 CO2(Scope1), 고열 에너지 사용으로 배출되는 CO2(Scope2)를 꼽을 수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단기적으로 탄소를 저감하고 중장기적으로 신기술 개발·도입을 병행 중이다. 유리는 용융 공정의 탈탄소화가 숙제인데, 다행히 사용 단계에서 저탄소·스마트 사회에 대한 기여도가 높다는 강점이 있다. 핵심 ESG 이슈로는 용융 과정에서의 에너지 집중 사용과 탄소배출 문제를 꼽을 수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사용처의 에너지 효율을 제고하고, 성능이 고도화된 제품을 개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플라스틱 등 화학소재는 밸류체인 전·후방(주원료와 사용 후 폐기물)의 환경 이슈 발생이 가장 큰 고민이다. 핵심 ESG 이슈로는 주원료(나프타)가 화석 원료에서 유래된다는 점, 분해 설비(크래커)에 많은 에너지가 사용된다는 점, 사용 후 분해되지 않는 폐기물(미세 플라스틱 등)이 발생한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탄화수소 사업 전반의 친환경성 강화를 위한 데이터 기반의 탄소 관리에 매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종이는 삼림을 훼손한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하는데 유력한 대안이 된다는 강점이 있다. 핵심 ESG 이슈로는 탄소 흡수원인 삼림을 파괴한다는 비난과 아울러 생물다양성이 훼손된다는 점, 벌채 이후의 프로세스에서 화학소재를 사용한다는 점 등을 꼽을 수 있다. 최근에 종이 업계에서는 플라스틱 대체용 신제품을 개발하는 동시에 장기적으로 업종 전환을 모색하는 경우도 있다.
최종 제품의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소재로 자리매김
지금까지 소재 산업은 최종 수요산업을 뒷받침하는 조력자 정도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았다. 사람들은 TV나 휴대폰을 구매할 때 최종 브랜드는 중요하게 고려하지만, 이에 사용되는 핵심 소재의 메이커 회사는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종 수요 업체에서도 소재업체를 자신들에게 필요한 소재를 공급해 주는 협력업체 중의 하나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들어 소재 산업의 위상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 소재 산업체가 단순한 공급사가 아니라 최종제품의 품질을 좌우하는 핵심 파트너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스티브 잡스의 “코닝(corning)이 없었다면 우리는 해낼 수 없었다.”라는 말에서도 잘 드러난다.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 개발 당시, 전면에 플라스틱이 아닌 유리를 사용해 우아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 그는 각고의 노력 끝에 미국의 유리 명가 코닝을 찾을 수 있었고, 코닝은 최단기간에 두께 1.5mm의 투명하고 강한 Gorilla Glass를 탄생시켜 잡스의 꿈을 완성해 주었다. 유리라는 전통 소재가 있었기에 현재 스마트 세상의 총아로 자리 잡은 아이폰이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소재 산업의 중요도가 높아지면서, 소재 기업 간 영역의 경계가 옅어지고 이종 소재 간 복합·접합된 소재들도 부상하고 있다. 특히 자동차 시장에서는 최근 경량화, 친환경화 등이 대두되면서 기존의 철강 중심으로부터 알루미늄 등의 비철금속, 플라스틱, 탄소섬유강화플라스틱, 태양광 소재 등까지 다양한 소재로 변화·확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독일의 바스프나 일본의 도레이(TORAY) 같은 다양한 소재 업체들이 자동차 시장으로의 소재 공급 확대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근래에는 기술 범위 확장을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는 전통 소재 기업들도 증가하고 있다. 금속계 기업이 플라스틱 기술을 접목하고, 플라스틱 기업이 바이오 기술을 연구하는 현상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 산업에서는 충격에 대비해 고강도를 구현할 수 있는 철강 소재가 주로 사용되었지만, 이제는 경량화와 고강도 특성을 동시에 갖춘 탄소섬유·플라스틱의 복합재료 등이 주목받고 있다. 또한 지금까지 자동차 내장재에는 가볍고 싼 플라스틱이 주로 사용되었으나, 현재는 각국의 규제 및 소비자들의 친환경성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가볍고 싸면서 친환경적인 소재가 적용되고 있다. 따라서 기존에 플라스틱을 공급하던 업체들은 자사의 기술 기반에 바이오 소재 기술을 더해 바이오플라스틱을 개발하여 선보이고 있다.
전통 소재가 펼쳐보일 친환경 미래 세상
전통 소재 기업은 오랜 역사에 걸맞은 긴 호흡으로 원대한 미래를 향한 변신에 나서고 있다. 즉, 산업별 특성과 업체별 강점에 맞는 차별화된 혁신 영역에 도전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연·원료 개선이나 에너지 효율화 같은 단기 개선 과제와 더불어, 중장기 기술혁신/사업변신 노력을 병행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번 Special Issue에서는 여러 전통 소재 기업의 화려한 변신 노력을 넷제로 달성을 위한 기술개발, 저탄소 프리미엄 신제품 출시 전략, 대체 원재료 활용전략, 스타트업 투자 등 Open Innovation, 그리고 타 소재와의 협업 전략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했다.
이들 주요 전통 소재 업체의 최근 변신 노력을 짚어봄으로써 우리 사회는 물론 전통 소재 산업과 직·간접적으로 연계되는 여타 산업들의 탄소중립 실현과 미래 발전을 위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교훈이 쌓이고 확산되면서, 궁극적으로 이들 전통 소재가 인류가 꿈꾸는 친환경 미래 세상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리라 기대한다.
- Vol.466
24년 07/0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