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술혁신 성공사례 빛을 연금하는 Organic Alloy 기술로 빚어낸 OLED용 프리믹스(Premix) 인광 그린 호스트_ 삼성SDI(주)
김봉옥 삼성SDI(주) 부사장 포항공대에서 물리학 석사(1990년) 과정을 마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물리학 박사(1999년)를 취득하였다. 23년 이상 OLED 소재 연구개발을 수행하고 있는 디스플레이 소재 분야의 전문가다. 2013년부터 삼성SDI에 근무하여 QLED와 QD 소재 개발을 이끌고 있으며, 인광 그린 호스트 원천기술 개발로 2023년 IR52 장영실상을 수상하였다. |
우리는 매일 스마트폰과 TV 화면을 본다. 비가 시원하게 내린 후 미세먼지가 없는 맑은 어느 날, 바깥 풍경을 보다가 TV를 보는 것 같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평소 화면 속 색감을 선명하고 아름답게 느껴 현실과 혼동한 것이다. 스마트폰 화면에서 사용되는 유기 발광 다이오드(OLED, Organic Light Emitting Diode) 소자의 두께는 0.3마이크로미터다. 머리카락 두께인 60마이크로미터보다 200배나 얇은 분자의 세계에서 빛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아름다운 빛을 만들어 내기 위해 OLED 패널회사에서는 매년 더 특성이 좋은 OLED 소재를 선정하기 위한 경쟁을 벌인다.
체조선수 양학선의 독창적인 고난도 기술에 ‘양 1’, ‘양 2’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처럼, 때로는 승리한 소재 기술이 원천기술로 인정받아 표준적인 접근 방법으로 통용되기도 한다. 삼성SDI의 ‘Organic alloy 기반의 premix host 기술’은 바로 이러한 경우에 해당한다. 유기(적) 합금(Organic Alloy)이라는 이름은 연금술(Alchemy)을 연상시키는데, 아주 옛날에는 연금술이 마법처럼 보였겠지만 현대의 우리에게 이는 화학의 기초가 되는 기술이 되었다. 삼성SDI는 ‘Organic Alloy 기반의 OLED용 Premix 인광 그린 호스트’ 개발에 성공하여 2023년 35주 차 장영실상을 수상했다. 이 사례를 통해 기술혁신 성공의 연금술을 탐구하고 그 과정에 담긴 비법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글. 이장욱 컨설턴트(씨앤아이컨설팅)
OLED용 premix 인광 그린 호스트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는 유기물을 사용하여 전기를 빛으로 전환하는 전자 소자로,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등에 사용된다. 빛은 적색, 녹색, 청색의 삼원색을 혼합해 다양한 색상을 만들어 낼 수 있으며 ‘인광 그린 호스트’ 는 이중 녹색의 빛을 만드는 유기 발광층의 주재료에 해당한다. 여기에서는 삼성SDI가 개발한 ‘OLED용 프리믹스(Premix) 인광 그린 호스트’의 기술적 혁신성 및 성과에 집중해 살펴본다.
OLED 소자는 전기 에너지를 빛 에너지로 전환하는 전자 소자다. 소자 중앙부에는 발광층이 있는데, 양극에서 들어온 양전하와 음극에서 들어온 음전하가 발광층에서 만나면 특정한 색의 빛을 방출한다. 발광층은 특정한 색의 빛을 내기 위한 도판트(10% 이하)와 도판트에 전하와 에너지를 전달하는 호스트(90% 이상)로 구성되어 있다. 과거에는 발광층에 형광 도판트와 호스트로 이루어진 형광 소자가 사용되었으나, 현재는 인광 소자가 사용된다. 인광 소자는 인광 도판트와 호스트로 이루어져 있으며 녹색과 적색 빛을 낸다. 인광 소자는 형광 소자 대비 전기 에너지를 빛 에너지로 전환하는 효율이 높아 소비 전력이 낮다는 장점이 있으나, 수명이 짧아 수명이 더 긴 소재를 개발하기 위해 치열한 노력이 있어 왔다.
인광 호스트는 형광 호스트와 비교해 더 큰 에너지를 가진 양전하와 음전하를 전달하면서도, 이 과정에서 분자의 변성을 일으키지 않아야 소자 수명이 길어진다. 한 개의 유기 분자가 서로 다른 종류의 전하를 빠르고 안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산화와 환원을 담당하는 각각의 작용기를 한 분자 내에 가지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분자의 크기가 커지게 된다. 그런데 OLED 소자는 유기 분말 재료를 진공 챔버 하층부의 도가니에 넣고 열을 가해 기화시켜(열 증착), 진공 챔버 상층부의 유리 기판에 매우 얇은 막을 형성하는 공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큰 유기 분자를 기화시키기 위해서는 높은 증착 온도가 필요하기에 공정 중 분자의 변성이 일어나기 쉽다. 즉 분자량이 낮은 유기 분자 디자인에는 원하는 특성을 모두 넣기가 어렵고, 분자량이 높은 유기 분자는 양전하와 음전하를 모두 잘 전달할 수 있지만 진공 증착의 공정성이 나빠지는, 전형적인 모순의 기술적 난제가 생기는 것이다. 삼성SDI의 Organic alloy 기반 OLED용 premix 인광 그린 호스트 기술은 이를 해결하고자 고안되었다.
인광 그린 호스트가 처음 상용화된 2012년, 경쟁사 제품은 호스트와 유기 분자의 단순 혼합물이었다. 호스트가 두 가지 전하를 전달하고, 이 호스트가 받는 전기적 스트레스를 줄이고자 단순 공간 점유용 matrix 유기 분자가 섞여 있는 형태였다. 이는 호스트와 유기 분자, 두 재료의 증착 온도에 차이가 있어 공정 중 혼합 비율의 변화가 발생하는 문제가 있었다. 또한 경쟁사의 호스트 조합은 전하 전달에 참여하지 않는 matrix 분자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구동 전압이 높았다. 전하를 전달하는 호스트는 양전하와 음전하의 전달을 모두 맡기 때문에 높은 전기적 스트레스를 받게 되어 소자 수명이 짧다는 단점도 있었다.
이에 삼성SDI 광소재개발팀은 ‘같은 온도에서 기화할 수 있는 양전하 전달 분자와 음전하 전달 분자를 섞어서 호스트를 구성하면, 특성이 훨씬 좋은 호스트를 개발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물론 최초의 아이디어는 실현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양전하와 음전하의 원활한 전달을 위해 서로 다른 두 분자를 사용하면서도 두 분자가 마치 한 분자처럼 동작하여야 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두 분자를 섞어서 혼합하면 분자 수준의 균질한 혼합이 잘 일어나지 않아 원하는 성능이 나오지 않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두 분자를 화학적으로 결합해 완전히 새로운 분자를 만들어 내면 분자량이 커지는 문제가 생겼다. 즉 화학적으로 결합한 것처럼 호스트의 특성을 내면서도 혼합한 것처럼 분자량을 높이지 않으며, 양산 증착 공정에서는 두 가지 재료를 한 가지 재료처럼 다룰 수 있는 공정성을 확보한 호스트의 개발이 필요했다.
삼성SDI는 이러한 난제를 합금과 유사한 Organic Alloy 기술을 통해 해결했다. 합금은 두 금속을 높은 온도에서 섞고 식히면서, 한 금속 내부에 다른 금속이 고른 분포로 박히게 하여 성질이 다른 금속을 만드는 원리다. 삼성SDI는 이에 기반하여 거의 같은 증착 온도를 갖는 유기물을 섞고 열 공정을 거쳐 분자 단위의 혼합을 이루어 내면, 광 발광 파장이 혼합 전 개별 재료의 광 발광 파장과 달라지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이를 organic alloy 기술 이라고 명명했다.
단순히 혼합된 것도 아니고 분자 간 화학 결합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화합물이 된 것도 아니지만, 분자 간 상호 작용이 존재하는 상태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OLED 디스플레이를 제조하는 패널 회사는 이러한 사전 공정을 거친 신소재를 마치 하나의 재료를 증착하는 것처럼 한 개의 도가니에 넣고 공정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장시간 연속 공정 중 혼합 비율의 경시적 변화를 줄이고, 넓은 면적에서 박막의 균질성을 확보하는 데 훨씬 유리했다(그림 2). 이렇듯 organic alloy를 이용한 premix 인광 그린 호스트는 패널회사의 OLED 양산 공정 중 발생하는 많은 문제를 해결하였다. 구동 전압, 소자 수명 등 OLED 소자 특성도 이전 재료보다 훨씬 개선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전자재료, 그중에서도 OLED 소재 시장은 하루가 멀다고 신소재들이 쏟아져 나와 각축전을 벌이는 상황이다. 이러한 경쟁 상황을 삼성SDI 광소재개발팀 김봉옥 부사장은 매년 열리는 올림픽에 비유한다. 진짜 올림픽은 기량을 닦은 선수들끼리 경쟁하지만, 소재 시장의 올림픽은 각 회사에서 전문성을 가진 직원들이 힘을 모아 만들어 낸 결과물끼리 경쟁한다. 또한 경쟁에서 한번 이겼다고 해도 제품의 사이클이 짧기에 안심할 수 없고, 매년 특성이 향상된 신규 재료로 경쟁해야 한다.
과거의 발명과 현대의 R&D는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다른 양상을 보인다. 과거의 발명은 주로 한 사람이 이루어 냈다. 하지만 현대의 R&D는 여러 사람이 분야별로 다른 전문지식을 활용하고 융합하여, 더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한다는 체계성을 갖춘다. 많은 사람이 협업해야 하고 여러 기술 분야의 전문성이 필요하지만, 이들이 단순히 한 조직 안에 함께 있다고 하여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아이디어를 기술혁신으로 이끈 성공의 요인
‘한 사람도 0.5인분처럼 대접하지 말라, 모든 사람이 Brain이 되게 하라.’ 기술개발 성공 요인의 물음에 삼성SDI 광소재개발팀 김봉옥 부사장이 들려준 이야기 중 첫 번째다. 많은 기업에서 신입사원이나 경력이 짧은 직원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말하기가 어렵다. 이를 시도하는 것조차 어려워 주니어 직원은 상사가 시키는 일만 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삼성SDI 김봉옥 부사장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30명이 일하는 부서에서 생각하고 지시하는 직원은 2~3명이고 나머지는 시키는 일만 하는 직원이라면 이 조직은 얼마나 비효율적일까? 이는 나머지 27~28명의 역량을 낭비하는 일이다.’, ‘경험이 많지 않은 주니어가 내는 아이디어는 설익은 아이디어로 무시될 것이 아니다. 이를 다듬고 모양을 잡을 수 있게 조각해 주는 것이 시니어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 ‘일류 회사는 오래 일하지 않는다. 하루 8시간 안에 머리가 아닌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의 총량은 많지 않다.’라고.
기술개발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 상사의 지시에 따라 일단 실험실부터 달려가 익숙한 실험만을 해 봤자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먼저 모든 직원이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동료들과의 ‘토론’을 통해 다듬고 발전시켜 정밀하게 구체화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모든 구성원이 1인분 이상을 하는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는 직급의 상하와 관계없이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되어야 한다.
삼성SDI 김봉옥 부사장이 꼽는 두 번째 성공 요인은 나무통 법칙이다. ‘나무판자들을 둘러 통을 만들었을 때 물을 담을 수 있는 최고 높이는 길이가 가장 짧은 나무판자 조각을 기준으로 결정된다.’라는 것이다. OLED용 소재 개발은 크게 유기 재료를 합성하는 파트, 유기 재료의 특성을 분석하는 파트, 그리고 합성한 재료로 OLED 소자를 만들고 그 특성을 측정 및 분석하는 파트로 나눌 수 있다. 파트별로 각기 다른 전공 지식과 경험이 요구되기에 모든 파트가 협력해야만 OLED 재료 개발이 효율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
여기에서 크게 보면 각 파트의 기능적 역할을 나무판자에 비유할 수 있고, 작게 보면 개개인의 역할을 나무판자에 비유할 수 있다. 각각의 나무판자는 물을 담을 수 없으며 나무판자를 모아 통을 만들어야만 물을 담을 수 있다. 만약 이 나무판자들의 길이가 서로 달라 길이가 짧은 나무판자가 있다면, 물을 담을 수 있는 최대치는 이 짧은 나무판자에 의해 결정된다. 우리가 어떠한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여러 기능적 역할과 전문적 지식, 그리고 이들이 문제 해결을 위한 일관된 방향으로 흐를 수 있게 하는 통합이 필요하다. 마치 나무판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연결되어 견고한 나무통이 되어야만 물을 담을 수 있듯이.
전공도 다르고, 맡은 역할도 각기 다른 여러 전문가들이 모여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통합적 사고를 해야만 한다. 생각이 먼저고 행동은 나중이다. 문제는 지식과 경험이 모두 다른 여러 사람의 생각을 어떻게 통합하여 문제 해결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인가다. 이 통합의 과정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앞서 언급한, 지시하는 10%의 직원과 실행하는 90%의 직원으로 구성된 조직이 대부분의 기업에 자리하고 있다. 각자의 역량을 100% 발휘하기 어려운 환경이 되어 1인분이 아닌 0.5인분의 역할을 하는 직원이 많은 것이다.
다시 나무통 법칙으로 돌아가면, OLED용 소재 개발과 같이 도전적인 과제를 하는 경우 길이가 짧은 나무판자가 생길 수밖에 없다. 솔루션을 모르는 상태로 도전하는 과제이기에 특정 영역에서 부족함이 생기는 것은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서로 간 이해를 바탕으로 맞댄 구성원들의 머리다. 이를 통해 제일 짧았던 나무판자도 길어져 물을 담을 수 있는 최대치가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적색, 녹색 그리고 청색 빛이 모여 우리가 보는 스마트폰, TV 화면의 생생한 색이 된다. OLED 소재 분야에서는 소자의 수명이 짧아 아직 양산 디스플레이 패널에 적용되지 못한 인광 블루 소자의 개발이 큰 도전으로 남아있다. 그렇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인광 블루 소자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삼성SDI에서 빛을 연금하는 연구원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인광 블루 호스트 개발이라는 나무통을 완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 Vol.466
24년 07/0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