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기고 AI 시대, 연구를 다시 정의해야 한다
연구자, 나는 누구인가?
“앞으로 연구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는 이런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는 다음 두 가지 이야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이스라엘에서 나온 AI 논문이고, 다른 하나는 그동안 높아만 보이던 이른바 ‘전문직’의 문턱이 AI로 인해 낮아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1) ‘데이터에서 논문으로’ AI
‘Autonomous LLM-driven research from data to human-verifiable research papers, Tal Ifargan, Lukas Hafner, Maor Kern, Ori Alcalay, Roy Kishony(https://arxiv.org/abs/2404.17605). submitted on 24 Apr 2024.’
이 논문의 초록 내용을 그대로 옮기면(DeepL) 다음과 같다.
“AI가 과학적 발견을 가속화할 것으로 기대되지만, 완전한 AI 기반 연구가 가능한지, 투명성, 추적성, 검증 가능성과 같은 주요 과학적 가치를 준수할 수 있는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인간의 과학적 관행을 모방하여 상호 작용하는 LLM(초거대 AI 언어모델) 에이전트를 완전한 단계별 연구 프로세스로 안내하는 동시에, 프로그래밍 방식으로 정보 흐름을 역추적하고, 인간의 감독과 상호작용을 허용하는 자동화 플랫폼인 ‘데이터에서 논문으로’를 구축했다. 주석이 달린 데이터만 제공되는 ‘자동 조종 모드’에서는 가설을 제기하고 연구 계획을 설계하며, 분석 코드를 작성 및 디버깅하여 결과를 생성 및 해석하고 정보를 추적할 수 있는 완전한 연구 논문을 작성할 수 있었다. 연구의 참신성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었지만, 이 과정을 통해 데이터에서 새로운 정량적 인사이트를 자율적으로 생성할 수 있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간단한 연구 목표의 경우, 완전 자율 주기로 약 80~90%의 큰 오류 없이 동료 심사를 거친 출판물을 요약하는 원고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목표의 복잡성이 증가하면 정확성을 보장하기 위해 사람의 조종이 중요해진다. 정보 추적을 통해 결과, 방법 및 데이터를 프로그래밍 방식으로 연결할 수 있기에 프로세스 자체뿐만 아니라 작성된 원고 역시 본질적으로 검증이 가능하다. 따라서 이번 연구는 추적성, 투명성, 검증 가능성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향상시키면서 AI가 과학적 발견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잠재력을 보여준다.”
이 논문이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 이유가 무엇인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국내 최대 AI 전문가 단톡방에 이 논문을 소개한 이제현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박사는 “AI가 미술·음악계뿐만 아니라 과학계에 고민을 던지고 있다. AI가 이런 일을 한다면 연구자인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며 질문을 던졌다.
2) ‘연구자’의 문턱이 낮아진다
“AI가 전문직의 진입장벽을 무너뜨린다.” 데이비드 오토 미국 MIT 경제학과 교수의 주장이다. AI가 일자리를 없앤다는 얘기가 많지만, 그보다 모든 전문직의 문턱을 낮추고 있다는 게 진실에 가깝게 느껴진다. 앞의 이스라엘발(發) 논문과 연결하면 이러한 주장이 가능하다. 연구자도 예외가 아니라고. 어쩌면 인류는 AI로 인해 지금과는 차원이 전혀 다른 지식기반경제를 맞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초거대·생성형 AI 모델의 상징처럼 불리는 챗GPT를 제대로 활용하는 사람이 현재 얼마나 될까? 최근 영국 BBC 방송에 따르면 영국 옥스퍼드대가 덴마크·프랑스·일본·영국· 미국·아르헨티나 등 시민 1만 2,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일상적으로 챗GPT를 이용하는가?’라고 물어본 결과, 그렇다고 대답한 응답자는 전체의 2%였다. 중요한 것은 이의 해석이다. 여기서 질문은 “아니, 겨우 그것밖에 안 되나?”가 아니라, “2%가 20%로 늘면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까?”로 옮겨가야 한다. 챗GPT를 접하는 사용자의 학습 곡선 경로는 그림 1과 같이 알려졌다. 사용자는 ‘놀람(Wow) → 잠깐(Wait a minute) → 실망(Damn) → 문해력(Got it) → 활용 역량(Ready now)’ 단계로 이동해 간다.
BBC 뉴스를 보면 실망 단계에서 멈추거나 빠져나가는 사용자가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사용자가 확신과 지식이 비례하는 단계로 넘어가기만 한다면, 일상적인 초거대·생성형 사용자가 2%가 아니라 20%, 50%, 80%로 확 늘어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AI 리터러시와 AI 활용 역량 교육 및 훈련이 중요한 이유다. 중국에는 ‘대중창업(大衆創業), 만중창신(萬衆創新)’이라는 말이 있지만, AI로 ‘대중과학(大衆科學), 만중연구(萬衆硏究)’라는 말이 등장하지 말란 법도 없다. 누구나 과학을 탐구하고 누구나 연구하는 지식기반경제의 대중화 시대 말이다.
AI 시대 연구 수행 장면
아래 그림 2는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전망한 ‘2043년 AI가 변화시킬 미래 연구 수행 모습’ 이다.
KISTEP이 AI의 발전에 따른 미래 연구 수행 모습을 예측한 배경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AI 기술 발달에 따라 향후 연구 수행 시 AI가 보편적으로 활용되고, 결과적으로 미래 연구개발 모습에 큰 변화가 초래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 빅데이터에 기반한 AI의 역할이 확대되면서 대용량 학술·연구 데이터를 보유한 서비스 플랫폼이 중요한 연구 인프라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주목할 것은 인공일반지능(AGI, 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의 출현 vs 인공특화지능의 고도화를 한 축으로 하고, 글로벌 플랫폼의 독과점 vs 다양한 플랫폼의 공존을 또 다른 축으로 설정해 세 가지 시나리오가 유력하게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먼저, 현재 추세가 유지된 ‘인공특화지능 고도화’, ‘글로벌 대기업의 플랫폼 과점 심화’ 시나리오는 AI가 연구 수행을 보조하나 연구자 간 양극화가 심화된 모습을 그린다. 다음으로 비관적 미래인 ‘AGI 실현’, ‘글로벌 대기업의 플랫폼 독점 강화’ 시나리오는 AI가 지배하고 글로벌 플랫폼에 종속되는 연구가 만연한 우울한 모습을 그린다. 마지막으로 낙관적 미래인 ‘AGI 실현’, ‘다양한 공공-민간 플랫폼 공존’ 시나리오는 AI가 협력하고 인류에게 공헌하는 연구가 만개한 희망적 모습을 그린다. 당연히 모두가 마지막 모습을 원하겠지만,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준비하고 대응할지에 달린 일일 것이다.
AI 시대 연구와 연구관리
KISTEP이 제시한 AI 시대 연구 수행 모습에 기반하면, 연구는 다시 정의되어야 한다. 현재의 AI 기술이 AGI(어떻게 정의해야 하는지, 또 언제 실현될지 논란이 벌어지고 있지만) 수준에 도달할수록 연구 프로세스에서 AI의 관찰, 가설설정, 실험, 자료 분석의 업무처리능력은 인간보다 우수해질 것이다. 따라서 연구현장에서 보편적으로 AI가 활용될 전망이다. 동시에 연구자의 재정의도 불가피할 것이다. 영국 국립 튜링연구소는 미국, 일본과 함께 ‘노벨 튜링 챌린지’를 2021년 발족했다. 이는 2050년까지 노벨상에 버금가는 성과를 성취할 수 있는 자율적인 AI 과학자 개발을 목표로 한다.
연구관리도 예외가 아니다. AI는 연구관리 프로세스에서도 일반적으로 활용될 전망이다. 연구의 기획, 예산 배분, 과제공고, 과제선정, 과제관리, 과제평가, 성과 활용 등 업무 처리능력이 인간보다 우수하기 때문이다. 주목할 만한 포인트는 현재 추세가 유지되는 시나리오를 전제하더라도, AI가 순수 연구보다 연구관리에 먼저 적용되고 결국 인간의 일을 대체하리라는 전망이 유력하다는 것이다. 다음은 KISTEP이 예상한, 2043년 AI가 연구관리에 가져올 변화를 과거 시제로 정리한 내용이다.
"인공지능은 순수 연구 활동보다 연구관리 활동에 먼저 적용됐고 인간의 일을 대체하였다. 연구 진행, 회계 관리 등 일상적인 모니터링 외에 선정과 평가, 성과 확산 등에도 활용되었다. 인공지능과 전문가의 협업으로 유망기술 선별 등 연구를 기획하면 그 내용에 따라 분야별 연구비가 배분되었다. 인공지능을 통해 적시 공고, 잡음 없는 선정을 진행하고 연구과제를 지원하였다. 학술적인 연구 성과를 개발과 시제품 생산, 사업화 단계까지 끊어짐 없이 연계해 실현도를 높이는 데에도 인공지능이 기여하였다. 인공지능이 초기 연구관리 업무에 도입되었을 때는 인간을 단순 지원하는 형태였으나, 인공지능 활용이 확대되며 협업 또는 주도하는 형태로 위상이 변하였다. 연구관리 과정에서 축적된 연구자와 연구 정보는 연구의 생산성을 높이는 데 활용되었다. 이에 따라 단순한 정보, 보상이라고 여겨질 수 있는 인센티브를 통해 연구자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인공지능 알고리즘의 통제하에 연구를 수행하게 되었다. 연구자가 연구 주제 추천 서비스에 익숙해지면서, 인공지능이 사전 선별해 추천하는 연구만 수행할 가능성도 커졌다."
최근 부상하고 있는 기술 인텔리전스(Technology Intelligence) 분야는 이러한 맥락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윤병운 동국대 교수는 ‘기술 인텔리전스, 데이터 기반 미래 기술 예측’을 주제로 한국공학한림원 기술경영정책분과 세미나에서 이렇게 말했다. “빠르게 발전하는 AI 기술은 여러 복잡한 작업에서 탁월해, 데이터를 가공하는 능력과 그 적용 가능성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또한 AI를 이용한 서비스가 성공적으로 상용화됨에 따라 AI를 활용한 기술 R&BD를 포함한 기술 인텔리전스 연구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실제로 학습에 이용할 수 있는 데이터의 축적, AI 모델과 하드웨어 기술 수준의 성장 또한 기술 예측 분야에 AI 방법론의 적용 타당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AI 기술이 기업과 산업 전반에 걸쳐 더욱 발전됨에 따라, 단순 작업 처리 분야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운영과 기술경영 활동에 대한 AI의 적용이 더욱 보편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마디로 데이터 분석, 특히 AI 모델 기반의 기술 인텔리전스 연구의 중요성이 증가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윤 교수는 이러한 동향을 전하면서 다음의 이슈를 제기했다. ‘Human-in-the-loop’ 관점에서 AI 시대 전문가의 역할이 어떻게 활용되어야 할 것인가? 미래 기술 예측 결과를 기술 전략과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 것인가? 분명한 것은 이 이슈가 미래 연구관리의 전개 시나리오를 결정할 것이라는 점이다.
AI 시대 연구인프라
“NeurIPS 데드라인이 막 끝났다. 요즘 우리는 'GPU = AI 연구 경쟁력'인 시대에 살고 있다... 연구실에서 구할 수 있는 GPU는 한정되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많은 논문이 해외 기업(구글, 메타, MS, 엔비디아, 아마존, 어도비 등), 해외 단체, 심지어 (컴퓨팅 인프라를 가지고 있는) 다른 해외 학교들과 협력(펀딩 또는 인턴십)을 하면서 나왔다. 심심치 않게 H100 몇백 개를 자유롭게 쓰게 해줄 테니 같이 일하자는 해외 스타트업들의 연락도 주기적으로 들어온다. 생각해 보면 최근 2~3년간 국내 기업, 단체, 심지어는 우리 학교에서조차 유의미한 GPU 자원을 지원받은 적이 손꼽히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 있지만, 연구는 미국 인프라를 쓰면서 하고 있다… 씁쓸한 현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해외에서도 그렇게 찾아주는 것을 보면 그만큼 우리 학생들의 수준이 훌륭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국내에서도 학생들에게 좋은 연구 환경을 마련해줄 수 있는 지원이 있으면 더 좋겠다…(인재 유출을 막기 위해서라도).” 한국에서 AI 연구의 선두를 달리고 있는 최고 연구자 신진우 KAIST 교수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AI 시대 무엇이 연구를 결정하는 핵심 인프라인지, 압축적으로 웅변해 주고 있다. 정부가 여기에 화답하지 못하면 그것은 곧 ‘국가의 실패’일 것이다.
‘속도 실패론’에 주목하라
“화학 분야에서 시뮬레이션을 통해 화합물 데이터를 구축하고, 구조 예측을 학습한 AI는 물질의 화학적 결합을 빠르고 정확하게 예측하며 과학의 자동화를 유인하고 있다.”, “잠재적 패턴 발견에 뛰어난 AI는 물리학 분야에서 새로운 물리 현상의 발견, 단면적이 작은 희귀 과정의 발견, 보이지 않는 암흑물질의발견 등에 적극적인 활용이 가능하다.” 이러한 뉴스는 더 이상 새롭지 않다.
AI가 ‘R&D’를 ‘Fast R&D’로 바꾸고 있다. 국가는 왜 R&D에 투자해야 하는가? ‘시장실패론’에 따르면, 기업의 이윤 동기에만 R&D 투자를 맡기면 과소 투자가 일어나기 때문에 정부의 R&D 투자가 정당성을 부여받았다. 이후 기업, 대학, 정부연구소가 상호 협력해야지 이를 각자 수행하면 손해라는 ‘시스템 실패론’이 등장했다. 최근에는 정부와 민간이 전략적으로 손을 잡지 않으면 국가적 도전과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미션 실패론’이 강조되고 있다. AI 시대에는 개인도, 기업도, 대학도, 정부연구소도, 국가도 R&D 속도에 뒤지면 망한다는 ‘속도 실패론’이 지배할지 모른다.
‘불확실성(uncertainty)’을 넘어 ‘근원적 불확실성(radical uncertainty)’의 대전환 시대. 연구와 연구자, 연구 인프라를 새로 정의하고 R&D 속도를 높이지 않으면 언제 도태당하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경쟁환경이다. 한국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 Vol.466
24년 07/0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