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술경영 기업의 자기잠식, 생존을 위한 문화
자기잠식의 정의와 필요성
혁신 활동은 이미 시장을 잠식한 중견기업이나 대기업보다, 스타트업이 성공할 확률이 높다. 스타트업은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있는 반면, 시장을 이미 잠식한 기업들은 혁신에 실패하더라도 기존 제품이나 서비스로부터 발생하는 매출이 심리적 안정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절박함에 놓여있지 않으면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거나 원하는 결과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익히 알려져 있다.
‘스타트업으로 힘겹게 시작해서 겨우 시장에 안착했는데, 또 어려운 선택을 하고 자신을 스스로 갈고닦는 힘든 여정을 계속 가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이 나올 수 있겠다. 안타깝게도 자신을 끊임없이 담금질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또한, 우리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수많은 기업의 사례를 통해 잘 알고 있다. 우리 모두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기업의 중·장기적인 생존에 관한 주제이므로 그 중요성을 나름의 메시지로 정리해서 전달하고자 한다.
Cannibalization은 자기잠식을 의미하는데 생물학과 문화인류학과에서는 동족 포식을, 경영학에서는 기업의 수익잠식을 의미한다. 기업은 제품 또는 서비스의 포트폴리오 중 상대적으로 가치가 낮은 대상을 보다 나은 대상으로 대체시킨다. 이러한 과정에서 가치가 낮은 대상의 수요를 의도적으로 감소시킨다.
잠식은 제공 중인 제품이나 서비스를 보다 발전적이고 혁신적인 가치로 대체하는 것을 가리킨다. 잠식의 주체가 외부의 경쟁기업이면 외부에 의한 잠식으로 경쟁에서 밀린 것이며, 기업 스스로 잠식하면 한 단계 발전을 시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기업이 스스로 수익을 감소시키면서도 자기잠식을 시도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기잠식은 시장의 제품 경쟁력과 그에 맞는 시장 전략을 수립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경쟁사에 우위를 선점하기 위한 혁신 활동이다.
치열한 시장 경쟁에서 기업의 생존을 위해 신중한 계획과 전략적 실행으로 고객의 잠재적 요구를 충족시키며 경쟁 우위를 유지함과 동시에 시장에서의 입지를 공고히 다져 브랜드를 강화하는 전략이다. 그래서 이를 기술혁신의 근간으로 보기도 한다. 기업은 상당수의 자사 또는 타사 간 경쟁에서 잠식에 성공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시장 경쟁에 밀려 조용히 사라지기도 한다. 자기잠식은 이러한 리스크에 노출되더라도 보다 많은 기회를 창출하려는 시도라고 해석된다.
Apple이나 Amazon과 같이 잘 알려진 미래 지향적인 기업은 경쟁자나 신생 기업으로부터 잠식당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하여 자사 제품을 잠식해서라도 경쟁력을 끌어 올린다. 이 필요성 때문에 자기잠식은 이미 이들의 기업문화로 자리 잡았다. 기업은 지속적인 혁신과 고객 중심적 사고 및 접근을 통해 자기잠식의 과정을 거쳐 성장할 수 있다. 이러한 노력은 기업의 장기적인 성공을 위한 핵심역량의 발판으로 자리 잡게 된다. 기업의 생존은 기업 간 경쟁에서의 승리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고객 만족을 향해 자가 발전해야 한다는 주장과 맥을 함께 한다.
자기잠식의 시도는 혁신이라는 도전정신으로 포장된 듯싶지만, 분명 어려운 점이 함께 따른다. 자기잠식을 감안하고서라도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부담감과 위험, 여러 부서와 연결된 이해관계의 해소, 성공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중·장기적 모니터링까지 회사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도전적 시도가 따른다. 다양한 어려움과 함께해야 하는 험난한 모험의 여정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자기잠식이 기업 성장에 중요한 이유와 다양한 성공과 실패 사례를 통해, 잠식에 노출된 기업의 입장에서 고민의 방향성을 살펴보겠다.
자기잠식 기업의 사례들
자기잠식에 실패한 기업 사례로 Nokia, Merck, Kodak 그리고 Google을 꼽을 수 있다. 2011년까지 글로벌 휴대전화 1위 기업이었던 Nokia는 활발한 모바일 시장의 변화를 수용하지 못해 시장에서 밀려났다. Nokia는 스마트폰 출시 10년 전 WIFI touch screen을 탑재한 tablet PC를 개발했음에도 시장에 출시하지 않았다. 기존의 모바일 폰 시장에 안주하며 신제품으로 자기잠식을 시도하지 않았기에 후발주자들에게 시장을 고스란히 내주고 말았다. 독일의 제약회사 Merck는 2003년 독일 시장에서 자사의 블록버스터 의약품인 조코(Zocor)의 특허 만료에 대비하기 위해, 복제약이 조코보다 30% 정도 저렴한 가격으로 유통되리라 예상했다. 따라서 가격이 조금 저렴한 조코 MSD(Merck Sharp & Dohme)를 출시했으나, 복제약들은 전략적으로 조코 MSD의 가격보다 90% 낮은 가격으로 경쟁함으로써 결국 모든 마케팅 활동에서 밀려 철수하였다. 이는 신제품의 생산 효율화와 가격전략을 과감하게 추진하지 못한 결과였다.
1990년대까지 Kodak은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5대 기업에 해당했다. 1969년 인류가 달에 처음 착륙한 역사적인 장면도 Kodak의 카메라로 촬영되었다. Kodak은 주력 상품인 카메라와 필름 시장의 잠식을 우려하여 디지털카메라를 자체 개발했으나, 출시를 지연한 결과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뒤처져 파산신청에까지 이르렀다.
Google은 2013년부터 AI chatbot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2018년에는 AI chatbot Meena를 개발하고 완성도를 높여 LaMDA로 명칭까지 변경해서 온라인 검색을 변화시킬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AI의 공정성과 안전성 기준 미달의 이유로 출시하지 못했다. 챗GPT의 인기에 위기의식을 느낀 Google은 2023년 3월에 Bard를 공개했지만, 오답에만 집중하며 언론의 몰매를 받았다. 그 후 Gemini로 명칭을 또다시 변경하여 AI 모델로 발전시켰지만, 생성형 AI 시장에서 자기잠식 기회의 시기를 놓친 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자기잠식에 성공한 기업 사례로 해외에는 Apple과 Amazon이 있다면, 국내에는 라면과 배달플랫폼 사례가 있다. Apple의 iPad 출시는 맥북프로의 제품군과 아이폰, 아이팟까지 잠식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Apple의 매출을 끌어올렸다. 그뿐만 아니라 Apple이 기술 산업의 리더로서 위치를 공고히 하는 토대가 되었다. 또한 Tablet PC라는 상품영역을 개척하여 선택의 폭을 넓혀주었다. Amazon의 Kindle e-reader 도입은 온라인 서점 사업을 잠식했지만, 전자책 시장에서 Amazon의 지배적인 위치를 확고히 해주었다.
전자책 단말기 개발은 당시 Amazon의 핵심역량이 부족하여 위험한 시도였지만, 디지털 독서 시대를 리딩하려면 전자책 단말기와 이용하기 쉬운 전자책 매장까지 아우르는 고객 경험은 핵심적이었다. 빅테크 경쟁사인 Apple과 Google 같은 기업이 전자책 단말기를 제공하는 경우 Amazon은 온라인 도서 사업에 위협을 받을 수 있었기에, 자기잠식을 통해 전자책 시장 경쟁에서 앞서 나가고 있다.
국내 라면시장에서 농심은 신제품을 1년에 4~6개까지 만들어 고객에게 제공하는, 자기잠식의 대표적인 기업 사례에 해당한다. 농심은 짜파게티라는 짜장라면 브랜드보다 프리미엄 제품인 짜왕을 선보였는데, 기존의 제품을 고가의 짜장라면으로 대체함으로써 향후 인구감소를 고려한 수익구조를 개선하려는 시도를 보였다. 이는 중식당의 일반 짜장과 간짜장, 유니짜장과 같이 고객의 선택 폭을 넓히며 기존 제품의 의존도를 낮추는 자기잠식에 해당한다.
음식 배달 플랫폼인 요기요의 요기패스(YP)와 요기패스X(YPX)도 자기잠식의 대표적인 사례다. YP는 주문 시 총 30,000원(배달할인 5,000원 2장과 2,000원 10장)의 할인쿠폰을 받는 구독형 서비스다. YPX는 해당 가맹점에 한하여 횟수 제한 없이 배달비를 무료로 주문할 수 있는 또 다른 구독형 서비스다. 요기요는 YPX 구독 서비스를 새롭게 시도함으로써 고객의 배달비 부담을 낮추었고, YP의 잠식을 예상하며 YPX로 추가적인 고객 확보 전략을 추진하였다. 이는 전략적인 자기잠식 사례에 해당한다.
기업이 자기잠식을 어려워하는 이유
기업이 자기잠식을 시도하지 못하는 가장 일반적인 이유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수익감소와 시장점유율 축소, 고객 충성도 저하와 같은 우려로 인해 기업들은 자기잠식을 선택하기 어려워하고 결국 이를 기피하게 된다. 막연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Google의 생성형 AI 제품처럼 새로운 시도조차 하지 못한 채 신선한 신규 아이디어를 매몰시켜 버리고, 기존의 안전한 수익 유지를 위한 합리적 판단이라 자위한다. 가진 것조차 빼앗길 수 있다는 두려움에 의한 결정이 단기적으로는 논리적 의사결정 같지만, 보유한 것을 지키는 데 집착하다 보면 새로운 사업 기회를 놓치게 되고 장기적인 성장과 혁신을 방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서서히 뜨거워지는 냄비 속의 개구리가 자신임을 그 당시에는 모른다. 기업이 자기잠식을 꺼리게 되는 또 다른 이유는 계획오류(Planning fallacy)인데, 이는 사람들이 미래의 효용과 비용을 올바르게 예측하지 못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현재에 지나치게 큰 비중을 두고 미래에 펼쳐질 일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는 오류로, 미래의 비용이나 이익이 매우 크지만 당장의 작은 비용 또는 이익을 더 확대해석하는 경향을 가리킨다. 사람은 진화론적으로 이성적이고 냉정하게 현재가 아닌 미래를 기회로 판단하기 어려운 성향을 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기업의 규모가 크고 안정적인 매출의 유지 기간이 길수록 위험회피 성향은 높을 수밖에 없다. 반면 새롭게 등장한 시장 파괴자는 생존이라는 가장 중요한 과제를 눈앞에 두고 역량을 결집한다. 시장의 틈새를 찾아 진입하고 잠식 영역을 확장하는데 모든 사활을 내건 듯이 움직인다. 이렇듯 대기업과 소규모 기업의 자기잠식에 대한 입장은 매우 상반된다. 대기업은 특히 회사의 기존 제품이나 서비스가 쇠퇴하기 전에는 잠식하려는 의지가 있더라도, 다양한 비즈니스 리더의 의사결정을 결집하여 수용하기가 어려운 구조인 경우가 많다. 많은 조직 간의 이해관계와 역할을 조정하는 역량이 부족하면 자기잠식은 시도조차 어렵다. 온라인 신문 조직의 경우 종이신문에 미미한 해가 발생하더라도 종이 신문 조직으로부터 분리되어야만 한다. 온라인 신문을 성장시키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내림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잠식을 감행해서라도 추진하겠다는 의사결정을 내린 이후에도 진행은 쉽지 않다. 기존 사업의 매출액, 판매량 등을 중요한 KPI로 설정하는 한 의미 있는 자기잠식은 발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평가 시스템적 문제, 즉 평가와 보상 기간을 짧게 잡으면 자기잠식과 새로운 수익 기반 창출을 끈기 있게 추진하기 어렵다. 그에 비해 Amazon, 3M, Apple, Google, Tencent, Meta(Facebook)와 같은 글로벌 기업들은 그 규모에도 불구하고 건전한 혁신성장을 유지하며 시장지배력마저 확대하고 있다. 국내기업과는 다른 어떠한 차별성이 이들을 성장시켰을까?
자기잠식 식별
경쟁환경에서 자기잠식에 의한 경쟁력 향상은 해당 제품의 기능뿐만 아니라 경쟁사와의 차별화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림 1과 같이 기업의 이익과 손실은 고객이 기존 제품에서 다른 제품으로 이동하며 변화한다. 기업은 주로 제품의 가격 인하, 광고 증가, 제품 품질의 향상, 유통 확대 등의 활동을 통해 자사나 타사의 제품을 잠식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제품이나 서비스 구분 정보와 매출 데이터를 집계할 수 있으면 다음과 같은 산식을 통해 어렵지 않게 측정할 수 있다.
Cannibalization Rate formula 1= 100 x (lost sales on old product) / (sales of new product)
Cannibalization Rate formula 2= 100 x (total sales of new product)/ (sales decline of existing product)
Cannibalization Rate formula 3= new product contribution / old product contribution
Cannibalization Rate formula 4= new product sales that replace existing sales / total new product sales
전체 유입 고객을 세분화한 후 신규 유입을 구분하여 그 비중을 모니터링할 수 있다면 서비스의 잠식을 측정할 수 있다. 더불어 기존 서비스에서 넘어온 비중이 함께 파악되어야 한다. 또한 신규 서비스의 비중을 모니터링하여 계획한 기간 내에 목표 수치를 달성하는지를 확인하고, 그에 미치는 변수들을 함께 분석하고 모니터링할 수 있어야 한다.
완벽을 향한 자기 주도의 발전 동력
스타트업 입장에서 쉴 틈 없이 자기잠식을 시도해야 한다면 반가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자기잠식은 중·장기적 차원에서 기업이 생존하기 위한 프로세스로 자리잡음으로써 경쟁 우위 확보와 고객의 충성도 유지에 기여하며 기업문화로 정착되어야 한다.
의사결정에서 가장 경계해야 하는 대상은 나 자신이듯,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내 안에 있으므로 스스로 자기잠식을 한다는 건 기업의 경쟁력을 위한 방향성 측면에서 옳은 방향이다. 이러한 결정을 마음속으로 다짐했다면, 스스로 채찍질을 통해 정진해야 하는 힘든 여정 속의 리더가 되어야 한다는 현실적인 숙제만 남는다.
“If you don't cannibalize yourself, someone else will.”이라고 스티브 잡스가 말한 것처럼, 고객에게 집중하고 한 발이라도 진일보하기 위해 자기잠식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님을 우리 모두는 언젠가 알게 될 것이다.
- Vol.466
24년 07/0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