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속가능기술 Case LG그룹의 Digital Transformation: AI로 그리는 미래
불과 20여 년 전, 컴퓨터 사용법을 일주일 만에 마스터할 수 있다는 책들이 서점가를 장식하고 ‘인터넷 정보검색사’라는 자격증이 주목받던 시절이 있었다. HTML로 홈페이지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IT 전문가’ 로 불렸고, 이들이 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곤 했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AI 시대 역시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 AI 프롬프트 작성법을 다룬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AI를 이용해 손쉽게 콘텐츠를 만들 수 있게 됐다. 초기 인터넷 시대의 열풍부터 현재의 AI 시대까지 기술의 발전은 우리 사회를 빠르게 변화시켜 왔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진정한 디지털 혁신일까?
LG그룹은 AI를 단순한 도구가 아닌 미래 기술의 핵심 동력으로 점찍고, 전 계열사가 디지털 전환 가속화를 위해 AI 활용을 적극 추진해 왔다. 이러한 과감한 투자와 노력은 LG 계열사 사업 현장에서 AI 기술 적용 사례 증가와 같은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이 글에서는 LG그룹의 Digital Transformation 사례를 통해 AI 기술이 어떻게 기업 혁신을 이끌고 있는지 살펴보고, 이를 통해 기업 경영 및 연구 개발에 대한 시사점을 도출하고자 한다.
LG그룹의 Digital Transformation 전략
LG그룹은 2023년부터 3년간 AI·데이터 분야에 3.6조 원을 투자할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AI와 데이터를 단순한 기술 도입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근간을 변화시키는 기술로 본 전략적 결정이다. 기업은 단기적인 성과에 매몰되지 않고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한 과감한 투자를 고려해야 한다. 특히 AI와 같은 혁신적 기술은 초기에는 구체적인 성과를 내기 어려울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미래 경쟁력 확보에 기여할 수 있다.
LG그룹의 Digital Transformation 사례
1) LG화학의 AI 스케줄러: 실제 산업 현장의 변화
납사 분해 시설(Naphtha Cracking Center, NCC)은 석유화학 산업의 핵심 시설로, 복잡한 시설 운영 스케줄링의 최적화에 AI 스케줄러를 활용하고 있다. NCC 스케줄링은 복잡하고 상호 연관된 다양한 공정들을 효율적으로 운영해야 하는 어려운 문제다. 또한 실제 현장에서는 전문 인력들이 분산된 채 운영되어 다양한 제약 조건을 만족시키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AI를 활용하여 전체 시스템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통합적인 시스템 최적화하는 새로운 접근 방식이 제안됐다. AI 스케줄러는 원료 수급부터 혼합, 분해에 이르는 전 과정을 통합적으로 분석하여 최적의 일정을 모델링한다. 예를 들어, 납사 및 제품의 가격, 선박의 운항 일정, 저장 탱크의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관측하여 입고 단계에서 가장 효율적인 납사 저장 계획을 수립한다. 혼합 단계에서는 각 원료의 특성과 최종 제품의 요구 사양을 고려하여 최적의 배합 비율을 결정한다. 분해 단계에서는 시시각각 변하는 시장 수요와 에너지 비용을 고려하여 각 제품의 생산량을 실시간으로 조절해 준다.
그림 1 납사 분해 시설(Naphtha Cracking Center, NCC)
이러한 AI 스케줄러의 도입으로 LG화학은 놀라운 변화를 기대하고 있다. 먼저, 스케줄링 속도의 비약적인 향상이 예상된다. 과거에는 숙련된 엔지니어가 수작업으로 데이터를 수집·분석하여 수일이 걸렸지만, AI 스케줄러는 이를 단 몇 시간 내에 수행해 스케줄링 시간을 단축한다. 이는 시장 변화에 대한 대응 속도를 크게 높여, 기회 손실을 최소화하고 수익성을 극대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AI 스케줄러는 인적 오류의 감소 또한 최소화하여 업무의 정확성을 높일 수 있다. 인간의 판단은 때로 피로, 스트레스, 개인적 편견 등에 영향을 받지만, AI는 24시간 일관된 성능으로 객관적인 판단을 내린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운영자의 경험에 따라 설비 정비 일정이 결정되었기 때문에 때로는 불필요한 정비로 인해 생산이 중단되었다. 그러나 AI 스케줄러는 설비의 상태를 정확히 예측하여 최적의 정비 시점을 제안하므로, 생산 공정의 안정성과 신뢰성을 크게 향상할 수 있다.
수익성 증대의 측면에서도 AI 스케줄러는 강력한 도구가 될 것이다. AI 스케줄러 덕분에 시장 상황에 따라 특정한 제품의 생산량을 탄력적으로 조절할 수 있게 되면서,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로 인한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어 특정 석유화학 제품의 수요가 급증할 경우, AI 스케줄러는 즉시 해당 제품의 생산량을 늘리고 다른 제품의 생산량을 조절하여 수익을 높이는 스케줄링으로 최적화한다. 이는 각 단계의 제약 조건을 만족시키는 동시에 수익을 최대화하여 통합적인 최적화를 가능하게 한다.
현장에서는 전문가가 수익성·안정성 등 다양한 측면에서 AI로 생성된 스케줄을 검토해 현장 운영에 반영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AI 스케줄러의 적용은 단순한 기술 적용을 넘어, 현장 전문가의 의사결정에 수많은 데이터와 현장 상황을 분석할 수 있는 AI가 활용된다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기업은 의사결정의 속도와 정확성을 높이고 시장 변화에 대한 대응력을 강화하기 위해,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 AI와 데이터 분석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AI 기반 납사 스케줄링 최적화 모델은 강화학습 기법을 활용하여 새롭게 산업 현장의 문제를 풀어낸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를 통해 향후 제품의 생산 공정 최적화 등 다양한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기를 기대한다.
2) EXAONE Discovery: AI 기반 신소재 개발
LG AI연구원은 ‘EXAONE Discovery’라는 신소재 개발을 위한 AI 플랫폼을 개발하여 신소재 및 신약 개발 과정을 혁신적으로 개선하고 있다. 이러한 플랫폼의 개발은 단순히 모델 개발이란 목표로 이루어낸 결과가 아니다. 화학, 바이오 등 특정 도메인 분야의 연구를 위해서는, 먼저 방대한 과학 지식을 AI가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형태로 변환하는 심층 문서 이해(Deep Document Understanding, DDU) 기술이 필요하다. DDU 기술은 AI가 텍스트뿐만 아니라그래프, 표, 화학식 등 다양한 형태의 정보를 이해하고 구조화하게 하는 데 사용된다. 우리는 DDU 기술을 활용해 수백만 건의 연구 논문, 특허, 실험 데이터 등을 분석하여 핵심 정보를 추출할 수 있다. 이렇게 추출된 데이터는 학습을 위한 데이터로 쓰일 뿐만 아니라, 기존에 발견된 화합물과의 유사도를 확인하는데에도 활용된다.
소재 구조 설계(Universal Molecular Design, UMD) 모듈은 이렇게 구조화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분자 구조와 물성 간의 복잡한 관계를 학습한다. 이를 통해 특정 물성을 가진 새로운 분자를 설계하거나, 주어진 분자 구조의 물성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환경 이슈로 배터리 첨가제에서 불소 함량은 줄이고 성능은 유지할 수 있는 소재를 개발하고자 한다면, UMD 모듈은 수많은 분자 구조의 가능성 중에서 가장 적합한 후보들을 제안한다.
소재 합성 예측(Neural Chemical Synthesis, NCS) 모듈은 분자 간 상호작용과 화학 반응을 예측하는 데 특화되어 있다. 이 모듈은 수백만 건의 화학 반응 데이터를 학습하여 새로운 화합물을 합성하는 최적의 경로를 제안한다. 이는 실제 실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시행착오를 크게 줄여준다. 예를 들어 새로운 촉매 물질을 개발하고자 한다면, NCS 모듈은 가장 효율적인 합성 방법과 예상되는 부산물, 반응 조건 등을 상세히 예측해 준다.
그림 2 EXAONE Discovery
EXAONE Discovery는 신소재 및 신약 개발 과정에서 수년이 소요되던 실험과 시행착오 기간을 대폭 줄일 수 있게 해준다. 단순히 신약을 만든다는 접근이 아니라, 기업 내 축적된 지식과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데이터의 양과 질을 모두 끌어올린다는 접근방식의 확장과 그 중요성을 보여준다. 기업은 내부에 축적된 지식을 체계화하고 이를 AI 기술과 결합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기업의 연구 개발 부서는 AI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연구 효율성을 높이고 혁신을 가속할 수 있다.
3) 화담숲 프로젝트: AI와 예술의 만남
LG AI연구원은 인간의 창의적 발상을 돕는 ‘EXAONE Atelier’를 통해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 초에 진행된 ‘화담숲 프로젝트’는 AI 기술의 창의적 활용 가능성을 보여주는 혁신적인 사례다. EXAONE Atelier는 프로젝트에 사용될 스토리와 화풍, 음악 등의 요소를 추천했고, 이를 바탕으로 화담숲 미디어아트가 제작되었다.
그림 3 화담숲 프로젝트 ‘The New Hwadamsup’ by EXAONE Atelier
먼저, EXAONE Atelier는 이미지 이해(Image Understanding) 기술을 통해 화담숲의 6,700장에 달하는 사진을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AI는 시각적 요소뿐만 아니라 계절의 변화, 자연의 질서, 인간과 자연의 조화 등 화담숲만의 고유한 특성과 철학까지 학습했다. 이미지 생성(Image Generation) 단계에서는 앞선 화담숲의 특성과 철학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완전히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해 냈다. 이 이미지들은 실제 화담숲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 아니라, 화담숲의 본질을 담아낸 추상적이고 예술적인 작품이었다. 예를 들어, 봄의 화담숲을 표현한 이미지에서는 실제 꽃의 모습 대신 색채의 흐름과 리듬으로 생동감을 표현하는 등 AI만의 독특한 예술적 해석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EXAONE Atelier의 혁신적인 기술과 전문가의 협업을 통해 화담숲의 철학을 담은 독창적인 미디어 아트가 완성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AI가 창작의 동반자로 얼마나 큰 잠재력이 있는지를 보여준다. 기업은 AI를 단순한 업무 자동화 도구로 인식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가치 창출과 혁신적인 아이디어 제안을 위한 도구로 인식하고 활용할 수 있다. AI가 제안한 창작 요소를 인간 예술가가 해석하고 발전시키는 과정은, 앞으로 AI 시대에 인간이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깊이 있는 고민을 던진다. 기업은 AI 도입 과정에서 단순히 인간을 AI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인간과 AI가 상호 보완적으로 협력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또한 생성형 AI가 일의 성격을 고려하여 생산성을 향상할 수 있도록, 비판이 아닌 협력의 도구로서 역할할 수 있도록 업무와 비전을 수립해야 한다.
4) AI 윤리: 책임 있는 AI 개발을 위한 노력
LG그룹은 AI 기술의 발전에 힘쓰면서, 동시에 AI 기술의 윤리도 중요하게 고려하고 있다. LG AI연구원은 AI 윤리 실천을 위해 거버넌스-연구-참여라는 세 가지 축의 전략을 마련하여 AI 윤리를 체계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AI 기술의 발전은 윤리적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기업이 AI 기술을 개발한다면, 동시에 AI의 윤리적 가이드라인을 수립하고 이를 철저히 준수해야 한다. 이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및 지속가능성과 직결되는 문제로, 잠재적인 문제를 사전에 방지하고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 기술 개발을 가능하게 한다. AI의 윤리 문제에 대한 선제 대응은 기업의 평판 관리와 브랜드 가치 제고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LG그룹의 AI 윤리에 대한 접근은 연구 개발 과정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윤리적 고려 사항을 연구 초기 단계부터 통합하는 것은,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예방하고 사회적으로 수용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 핵심적이다. 이를 ‘책임 있는 혁신(Responsible Innovation)’이라 할 수 있겠다.
지난 1월에는 LG AI연구원의 윤리 성과를 정리한 'LG AI 윤리 책무성 보고서’가 발간되었다. AI 윤리 이행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한 이 보고서는 기업의 투명성과 책임성 측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는 단순히 기술 개발 현황을 공개하는 것을 넘어, 기업이 AI 기술을 어떻게 개발하고 활용하고 있는지와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윤리적 문제들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등을 이해관계자들과 공유하는 중요한 소통 채널이 되고 있다. 기술의 발전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는 이러한 접근은, AI 기술에 대해 사회적 신뢰를 구축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AI 시대의 기업 경쟁력
AI 시대의 기업 경쟁력은 단순히 첨단 기술을 보유하는 것만으로 확보되지 않는다. LG그룹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AI 기술을 기업의 핵심 역량과 결합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이를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종합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AI를 ‘맥가이버 칼’처럼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만능 도구로 생각하고 접근한다면, 생산성 향상과 의사결정 최적화, 고객 경험 개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창출 등 모든 문제를 해결할 만능 도구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기업의 핵심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AI를 데이터 확보와 관리, 인재 유치, 조직 문화 변화, 윤리적 문제 대응 등 업무 전 과정에 도입된 ‘고성능 베어링’으로 생각하고 활용하여야 진정한 AI 기업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AI 시대의 초입에 서 있다. AI가 일으킬 변화의 시대에 기업이 성공적으로 적응하고 번영하기 위해서는, 기술에 대한 이해와 함께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이 필요하다. AI 활용의 방향성을 설정하고 의미 있는 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몫이기 때문이다. LG그룹을 비롯한 선도 기업들의 도전과 혁신이 AI 시대의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 이제 다른 기업들도 각자의 상황과 특성에 맞는 AI 전략을 수립하고 실천해 나갈 때이다.
- Vol.467
24년 09/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