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pecial Issue Intro 기후테크의 정의 및 국내외 현황
우리는 2024년 여름, 기후변화의 실체를 가감 없이 느끼고 있다. 수일간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엄청난 양의 비가 쏟아졌다. 그리고 어느새 비가 그치더니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기온이 상승했다.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강력한 폭염이 밀려온 것이다. 한국에서 가장 시원한 여름을 즐길 수 있다고 하는 태백시에도 폭염경보가 발효되었을 정도다. 도로의 아스팔트는 녹아 내릴 듯이 달아오르고, 뜨거운 열기로 거리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사실 필자와 같은 기후과학자들은 이미 이런 여름이 올 것이라고 몇 번이나 강조해서 이야기했기 때문에 그리 놀랍지는 않다. 하지만 그러한 과학자들의 경고를 귀담아듣지 않았던 이들에게 지금의 현실은 받아들이기 힘든 것일지도 모르겠다. 많은 분이 지금 우리가 겪는 이상한 날씨가 기후변화 때문이냐고 묻는다. 이건 기후변화 때문이 아니라, 이것이 기후변화의 증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제는 정말 진지하게, 기후변화가 더 이상 우리에게 큰 피해를 끼치지 않는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어떠한 노력이라도 해야하는 상황이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크게 기후변화를 유발하는 원인을 통제하거나, 지금 기후변화로 인해 겪는 피해를 줄여야 한다. 우리는 보통 전자를 기후변화 완화(mitigation), 그리고 후자를 기후변화 적응(adaptation)이라고 정의한다. 기후변화 완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 활동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의 저감, 즉 인위적 요인을 억제하는 것이다. 2021년 기준, 전 지구 평균기온은 1850년 산업혁명 대비 약 1.1℃ 상승하였다. 이산화탄소가 0.8℃, 메탄이 0.5℃ 정도 기온 상승을 유발했다. 물론 여러 다른 요인들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요인만 언급하면 단연코 탄소를 포함한 두 물질이다. 다양한 인간 활동으로 인해 늘어난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가 의도치 않게 기후변화를 유발한 것이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이렇게 늘어난 이유는 에너지 때문이다. 인류는 에너지를 얻기 위해 막대한 양의 화석연료를 연소했고, 이를 활용해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켜 지금의 문명을 이룩했다. 마차를 타고 다니던 시절에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지금처럼 높지 않았다. 석탄을 써서 증기기관을 만들고 석유를 태워 자동차를 더 빨리 달리게 함으로써 막대한 양의 이산화탄소가 대기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산화탄소는 보통 한 번 배출되면 최대 200년까지 대기에 머무른다. 따라서 이산화탄소가 아무리 조금 배출되더라도 계속해서 대기 중에 쌓이게 되었고 농도가 진해져서, 더 강력한 온실효과를 만들어 내게 되었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쌓이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에너지가 어디에 많이 쓰이는지를 살펴보면, 바로 산업이라는 해답을 찾게 된다. 즉 우리는 지금의 경제 성장을 이룩하기 위해 산업 발전을 위한 막대한 양의 에너지를 사용했고, 그로 인해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가 대기에 쌓여 기후를 바꾸게 된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기후를 다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이러한 문제의 고리를 끊어야만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원하는 만큼의 경제 성장은 이룩할 수 있지만 이산화탄소 배출은 적은 그런 산업, 즉 기후테크가 필요하다. 이것이 지금 전 세계가 기후테크에 주목하는 이유다.
국가마다 미세하게 다른 정의를 쓰긴 하지만, 한국에서는 큰 틀에서 기후테크를 ‘기후(Climate)와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본다. 즉, ‘기후 위기 해결을 위한 온실가스 감축 및 기후변화 적응에 기여하는 혁신 기술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산업'으로 정의한다(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이하 탄녹위). 2023년 탄녹위에서는 기후테크 육성안을 발표하면서 기후테크를 5대 분야(클린, 카본, 에코, 푸드, 지오테크)로 나눌 것을 제시하였다. 해당 분류체계의 세부 분류는 2024년 다소 개정되었다(표 1). 5대 분야 중 클린테크(Clean Tech)는 재생·대체에너지 생산, 분산화, 효율화 및 저장 솔루션을 제공하는 산업을 의미한다. 카본테크(Carbon Tech)는 공기 중 탄소 포집·저장 및 공정 과정 중 탄소 감축 분야를 뜻한다. 직접 대기 중 공기 포집(Direct Air Capture, DAC)이나 탄소 포집 및 활용·저장(Carbon Capture Utilization and Storage, CCUS), 모빌리티 분야의 탈탄소화도 이에 해당한다. 에코테크(Eco Tech)는 자원순환, 폐기물 관리, 저탄소 원료를 생산 및 판매하는 산업을, 푸드테크(Food Tech)는 대체식품이나 애그테크와 같이 식품 생산·소비 및 작물 재배 과정 중 탄소 감축 기술 및 기후 적응 농법을 개발하는 산업을 지칭한다. 마지막으로 지오테크(Geo Tech)는 탄소 관측 모니터링 및 기상기후정보를 활용하여 기후 위기를 예측하고 대응하는 산업을 의미한다.
표 1 2024년 개정 기후테크 5대 분야 및 세부 분류
*번외 : 녹색금융, 블록체인, NFT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기후테크는 기존의 환경/녹색산업과 유사하지만, 온실가스 감축 및 기후변화 적응을 주목적으로 하는 산업이라는 점에서 명확한 차별점을 지닌다. 특히 기후변화 적응 산업의 경우 목적에 따라 그 정의가 다양하나, 기후테크에서는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 및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산업’으로 정의한다. 예를 들어, 홍수 방지를 위한 인프라 구축 사업은 기후테크에 포함되지만, 기후 적응의 목적성이 없는 수질 관리 사업의 경우 기후테크에 포함되지 않는다. 유사한 사례로, 온난화 효과가 없는 대기오염물질의 저감 사업도 기후테크로 분류되지 않는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HolonIQ에서는 전 세계 기후테크 기업 현황을 유료로 제공하고 있다. HolonIQ에서 2023년에 발표한 지역별 유망 기후테크 기업 목록을 활용하여, 전 세계 기후테크 기업의 분포를 5대 분야별로 살펴보면 그림 1과 같다. 클린, 카본, 푸드, 지오, 에코테크 순으로 많이 분포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에너지 전환과 탈탄소화 기술에 대한 수요가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륙별로 분석하면, 유럽은 재생에너지 산업의 주도하에 클린테크가 가장 많고, 북미와 아시아는 카본테크 관련 기업이 가장 많다. 다만 북미는 모빌리티나, 공정혁신, 탄소 포집 분야에 기업이 골고루 분포해 있지만, 아시아는 모빌리티 분야에 기업이 압도적으로 집중되어 있다는 차이가 있다.
그림 1 글로벌 기후테크 5대 분야 분포 그림 2 국내 기후테크 5대 분야 분포
국내 기후테크의 현황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서울대학교 기후테크센터에서 총 538개 기업의 정보를 조사·분석하였다(그림 2). 이를 위해 온라인 기업 데이터베이스(The VC01), 국내 기후테크 행사 참여 기업(2023년 기준 공공 및 민간 행사 참여 기업), 투자사 포트폴리오, 그리고 기후테크 관련 보고서(매일경제 발간물 ‘C테크 레이스02’)를 활용했다. 글로벌 기후테크 분포 통계와 마찬가지로, 국내에서도 에너지 관련 분야인 클린테크에 가장 많은 기업이 분포해 있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지오테크 기업이 적고 에코테크 기업이 많았다. 국내 에코테크 분야가 비교적 많이 성장한 것은, 에코테크 분야가 타 분야에 비해 진입장벽이 낮은 분야이면서 국내에 여러 차례 있었던 친환경 열풍이 영향을 미쳤으리라 추정된다. 지오테크 분야 기업의 수가 저조한 것은, 탄소 회계나 기후 리스크 등 기후 관련 공시와 관련하여 국내에서 법제화가 늦어지는 것과 일맥상통한 결과라 볼 수 있다. 미국에서는 2024년 3월 SEC(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 미국 증권거래위원회) 기후공시를 의무화하였고, 유럽에서는 2023년 12월 EU ESRS(European Sustainability Reporting Standards; 유럽 지속 가능성 공시 표준)를 승인한 것과 대조적이다.
통계에서 도출할 수 있는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시사점은 클린테크에 대한 국내와 국외의 차이점이다. 글로벌 클린테크에서는 재생에너지 관련 산업이 가장 발달한 반면, 국내 클린테크에서는 이차전지/연료전지 등의 에너지 저장 산업이나 에너지 효율화· 분산화에 해당하는 에너지신산업이 주로 발달했다. 또한 아시아의 특성을 대표하듯, 카본테크는 탈탄소화 기술이나 탄소 포집 부문보다는 모빌리티 분야에 치중해 발달했다. 요컨대, 중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한 카본테크 분야(공정 전환, 탄소 포집)나 재생에너지 분야는 국내에서 부진한 것이다. 이는 제조업을 중심으로 하여 탄소 배출량과 에너지 사용량이 많은 우리나라에 큰 시사점을 준다.
기후테크 산업은 이제 막 서막이 열렸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아직 기후테크 산업은 전 세계적인 주요 산업의 키워드로 성장하지는 못했다. 미국, 유럽, 중국, 일본, 싱가포르 등이 우위를 점하고 있으며, 한국은 이제 걸음마를 뗐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기후테크 산업은 분명 전 세계 국가를 가리지 않고 주요 산업 분야로 성장할 것이다. 미국 및 유럽을 중심으로 IRA(Inflation Reduction Act; 인플레이션감축법), 탄소 국경 조정제도(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CBAM), 기후공시 등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한 각종 규제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기술이 상업성이 없어 연구실에 묻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이러한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잠자던 실험실의 기술이 큰 수익을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 게다가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 for prosperity, IPEF)와 같은 새로운 경제 체제에서도 온실가스(메탄) 감축을 위한 강력한 규제가 등장하고, 친환경 산업 육성을 위한 청정에너지 활성화 등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결국 기후테크가 지금의 IT산업처럼 세상을 바꿀 하나의 산업 분야로 자리 잡는 건 시간문제다.
현재 기후테크를 육성하기 위해서 다양한 정부 부처들이 정책을 개발하고 있다. 지자체 또한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새로운 저탄소 산업인 기후테크 기업을 발굴·유치하고자 노력 중이다. 우리가 한 가지 명심해야 할 점은, 기후테크는 기후변화 대응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는 점이다. 즉, 당장의 수익도 중요하지만 지속 가능한 기술을 활용하여 장기적으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데 반드시 기여해야 한다. 특히 국가적 측면에서 보았을 때, 우리가 앞으로 해결해야 할 난제인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지방 경제의 성장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각 지자체가 모든 기후테크 분야에 골고루 관심을 두기보다는, 지역에 딱 맞는 기후테크 분야를 찾아내 이를 육성해야 한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지역의 산업 기반과 경제 구조, 기후 특성 등에 걸맞은 분야를 발굴하기 위해, 깊이 있는 고민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후테크는 한순간의 유행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본 Special Issue에서는 다양한 국내 기후 기술을 활용한 기후테크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몇 가지 주요 기술을 소개하고자 한다. 온실가스 감축 관련 재생에너지 기술 중 하나인 태양광 페로브스카이트 기술, 탄소 저감을 위한 새로운 혁신 기술 중 하나인 유도결합 플라즈마 기술, 기존 고탄소 배출 산업의 전환을 위한 차세대 철강 기술, 기후변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기후모니터링 기술, 인공지능 기법을 활용한 탄소 회계 기술의 다섯 가지다. 탄소 규제 대응을 위한 에너지 기반 기술부터 데이터 기반 지식산업 기술까지 다양한 분야의 기후테크 기술에 관한 내용을 살펴본다.
01 더브이씨(The VC) (https://thevc.kr/) (마지막 접속: 2024.05.30)
02 매일경제 국민보고대회팀(2022), C테크 레이스
- Vol.467
24년 09/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