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pecial Issue Intro 속도 붙은 중국의 로봇 굴기, 한국 산업계에 경고등이 켜졌다
속도 붙은 중국의 로봇 굴기
작년 한 해 판매된 국내 로봇 청소기 10대 중 6대 이상은 중국산이 차지했다(다나와리서치, 2024.1.).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국내 로봇 청소기 시장은 대기업부터 중소기업까지 다수의 국내 기업이 독점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전 세계 로봇 청소기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했었던 미국의 아이 로봇(iRobot)이 한국의 청소 로봇 시장에서 국내 제품에 밀려 철수했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 과거의 이야기가 되었다. 지난 10년간 다수의 국내 로봇 청소기 제조사들은 사업을 중단하거나 폐업하였고 지금은 일부 기업들만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현재 중국의 로봇 청소기 제조사는 200개사 이상이다. 다수의 중국 기업은 시장점유율을 확보하기 위해 순이익이 줄더라도 가격경쟁과 기술 경쟁을 가속하는 치킨 게임을 지속하며 경쟁력을 더욱 높이고 있다. 그 결과, 중국의 신제품 발표 주기는 과거 2년에서 6개월로 단축되었고, 전 세계 시장은 경쟁력 있는 중국 제품에 잠식당하고 말았다. 이제는 식당에서 종종 마주칠 수 있는 서빙 로봇 관련 시장도 마찬가지다. 현재 국내 서빙 로봇 시장도 중국산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한국로봇산업협회, 2023.9.).
국내 기업들의 노력으로 중국산 서빙 로봇의 점유율은 과거 대비 감소하는 추세다. 하지만 중국 기업의 공세로 인해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다양한 중국 로봇 기업들이 서빙 로봇의 라인업을 확대하고 있으며 로봇의 공간지능, HRI(Human Readable Interpretation), 배터리 등 요소 기술의 발전도 예사롭지 않다. 제조업용 로봇 상황은 어떠한가? 불량 제조업용 로봇으로 인해 공장 가동 중단 시 큰 피해를 입기 때문에 제조 업계에서는 중국산을 기피하는 인식이 많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자국의 거대한 내수를 바탕으로 신뢰성을 높인 중국산 제조업용 로봇이 밀려오고 있다.
베이징 휴머노이드센터가 지난 4월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중국 내 휴머노이드 제조사가 100개 정도 있고 휴머노이드 핵심 부품 제조사는 1,000여 개사가 있다. 글로벌 로봇 기업들은 중국의 영향력에 주목하고 있으며, 중국의 성장은 글로벌 로봇 산업에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 로봇 굴기의 배경
중국의 급성장 배경으로는 첫 번째, 정부 주도의 강력한 정책적 지원을 들 수 있다. 중국은 국가 로봇 정책의 뼈대로 5년마다 로봇산업발전규획을 발표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다양한 로봇 지원 정책을 펼치고 있다. 지난 10년간 중국의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가 발표한 로봇 산업 지원 정책만 10개 이상이다. 중국은 대규모의 연구비 및 보조금 성격의 지원, 세금 감면, 인프라 구축 등을 통해 기업 성장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있다. ‘세계의 공장’ 중국은 외산 제조업용 로봇을 가장 많이 구매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수요처였으나, 정부 정책에 힘입어 자국산 비중을 높이고 있다. 작년 기준 중국산 제조업용 로봇의 중국 내 점유율은47%로 급성장했다. 2015년 17.5% 대비 2.7배 규모로 성장한 것이다.
두 번째로, 중국이 거대한 내수시장을 보유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국제로봇연맹 통계에 따르면, 작년 기준 전 세계 제조업용 로봇의 51%가 중국에 설치되었다. 이렇듯 중국은 세계 최대 제조업용 로봇 시장이며, 큰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중국 기업들은 안정적인 판매 기반을 확보하고 지속적으로 생산성과 품질을 높이고 있다. 최근에는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고 인건비가 계속 상승하고 있기에, 앞으로 중국산 로봇의 자국 내 수요는 더욱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마지막으로, 지속적인 기술력 향상을 들 수 있다. 중국 정부의 지원 아래 다수의 로봇 기업이 육성되고, 기업 간 생존경쟁을 통해 기술이 상향 평준화되고 있다. 또한 핵심 로봇 기술인 AI에 중국 정부와 빅테크 기업이 막대한 자금과 인력을 투자하면서 중국 로봇의 지능, 자율성, 성능이 혁신되고 있다. 로봇 기술의 혁신은 AI, 빅데이터, 정밀 제조 등 모든 첨단 산업의 혁신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중국 정부는 로봇 연구개발을 확대하고 있다. 대학·국가 중점실험실 등의 로봇 연구 거점을 육성하여 로봇 분야의 원천 기술을 개발하고 민간에 필요한 연구 인력을 배출하고 있다.
중국의 로봇 생태계와 한·미·일 생태계 비교
1) 중국의 로봇 생태계
중국은 중앙정부가 제시하는 중장기적 정책 방향을 토대로 공급부터 수요까지 전 분야 생태계를 정부가 육성하는, Top-Down 방식의 로봇 생태계가 특징이다. 정부 주도로 형성된 로봇 클러스터에서 R&D, 실증, 시험 인증, 금융, 조세 혜택, 인력 양성 등을 지원하며 관 주도 협업 생태계를 마련하고 있다. 중국의 로봇 생태계는 로봇 HW 스타트업의 빠른 진입이 가능한 것도 중요한 특징이다. 베이징의 중관촌(中關村), 심천(深圳; 선전) 등의 창업 인프라를 기반으로, 단기간 내 로봇 시제품을 제작하거나 제품을 양산할 수 있다. 특히 중앙정부 주도로 AI 생태계를 연계하고 있기에, 우수한 SW 인력의 빠른 유입이 가능하고 로봇의 기반이 되는 AI 및 SW 기술 유입도 용이한 편이다. 중국은 로봇 생태계 확대를 위해 2025년까지 로봇 클러스터 수를 기존보다 2배 이상 키우고 고도화할 계획이다.
그림 1 중국의 로봇산업 생태계 분석
2) 미국의 로봇 생태계
미국은 중국과 달리 민간의 역할이 큰 상황이다. AI나 클라우드, 지능형 반도체 등 첨단 기술을 보유한 민간기업과 대학을 중심으로 발전하고 있다. 대표적인 로봇산업 생태계로는 보스턴의 매스로보틱스(MassRobotics), 피츠버그 로보틱스 네트워크(Pittsburgh Robotics Network), 실리콘밸리 로보틱스(Silicon Valley Robotics) 등이 있으며, 여기에서 로봇 기업의 스케일업 및 인재 양성, 생태계 협업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로봇 클러스터를 통해 기업과 연구소, 기관이 협업하여 다양한 로봇 제품 및 프로토타입을 개발하고, 로봇 테스트를 시행하며 상용화도 추진하고 있다. 미국 로봇 생태계의 강점은 AI 및 로봇 분야의 세계 정상급 대학을 통해 원천 기술을 보유하여, 이것이 기업 투자나 인수 합병 등 로봇 창업 및 투자로 선순환되는 환경이라는 점이다.
3) 일본의 로봇 생태계
일본은 오랜 전통을 가진 로봇 강국이다. 로봇 부품과 제조업용 로봇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일본은 축적된 제조 역량을 근간으로 모터, 제어기, 감속기, 센서 등 세계 시장 점유율이 높은 로봇 부품기업과 제조업용 로봇 제조 기업, 역량 있는 로봇 SI(System Integration) 기업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로봇산업 육성을 위한 국가 전략인 ‘로봇 신전략’을 2005년에 발표한 이후, 최근에는 대규모 로봇 정책 및 로드맵을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아베 정권 이후 정부의 추진력은 다소 약화되었지만, 일본은 여전히 세계 최대 규모로 제조업용 로봇을 생산하는 국가다. 또한 로봇 부품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일본은 문무과학성을 중심으로 2050년까지 문샷 프로젝트를 통해 인간과 로봇이 공생하는 사회를 대비하기 위한 로봇 기술 고도화에 힘쓰고 있다.
4) 한국의 로봇 생태계
한국은 정부와 로봇 부품 기업, 완제품 기업, SI 기업, 연구기관, 대학, 투자기관, 협회 등 로봇 산업에 관여하는 수준 높은 생태계 주체 요소를 모두 확보하고 있다는 강점이 있다. 한국은 로봇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산업인 자동차, 전기·전자, 디스플레이, 조선 등이 주력 산업이고, 아파트나 오피스텔 등 로봇의 도입이 용이한 정형화된 생활 환경을 보유하고 있다. 2000년대 이후 다양한 영역에서 서비스 로봇 실증 경험을 축적하고 있으며, 로봇에 기반이 되는 기계 제조 및 IT 역량을 확보하면서 역량 있는 로봇 생태계 주체 요소를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한국은 제조업용 로봇 시장을 제외하고는 국내 시장 규모가 작은 편이고, 기업이나 산학 간 협력체계도 약한 편이다. 소규모 사업자가 로봇 사업을 영위하는 경우가 많아 기업 스스로 연구 및 마케팅 역량, 투자 여력, 인재 등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신규 부품 기업의 경우 실증 경험이 부족하고, 로봇 SI 기업은 영세하다는 점도 한국 생태계의 약점으로 꼽힌다. 한국 로봇 산업에 청신호가 켜진 부분도 있다. 정부는 지속적으로 로봇 정책 지원을 확대하고 있고 대기업들의 로봇 분야 신규진출도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총력 아래,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 로봇 생태계와 비교하면 한국의 로봇 산업이 처한 상황은 열세라는 분석이 많다.
심화하는 중국의 로봇 굴기가 주는 위기와 기회
중국의 로봇 굴기는 한국을 비롯한 글로벌 로봇 산업에 큰 위기를 주는 동시에 기회를 주고 있다.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우선, 로봇 산업이 처한 중국발 위기 상황 및 우리 산업의 현위치를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기술과혁신』 주제는 의미 있는 화두를 던질 것으로 기대한다. 속도 내는 중국의 로봇 굴기로 인한 위기는 한국만이 처한 위기 상황은 아니다. 같은 위기 상황에서 차별화 포인트를 찾고 있는 다른 나라 사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로봇 산업에서 상대적으로 약소국으로 평가받던 덴마크 및 네덜란드는 각각 협동 로봇, 착유 로봇에서 여전히 경쟁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두 국가의 기업들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지속적으로 어플리케이션, 솔루션 영역을 확대하며 경쟁우위를 가져가고있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덴마크의 경우, 수도인 코펜하겐이 아니라 지방 도시인 오덴세를 중심으로 협업 생태계를 구축했다. 오덴세는 유럽 로봇산업의 허브가 되고 있는데, 인구 20만 명밖에 되지 않는 소도시 오덴세가 어떻게 일본, 중국과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오덴세의 기관, 기업들은 하나같이 기업과 학교, 정부, 연구소, 협·단체 간 강력한 협력 및 연대를 강조했다. 오덴세는 글로벌 로봇산업에서 협력을 통해 차별성을 찾고자 노력했고, 제조업용 로봇 분야의 새로운 영역인 협동 로봇 생태계를 만들었다.
네덜란드도 마찬가지다. 중국이 ‘Made in China 2025’를 통해 농업용 로봇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있으나, 착유 및 사료 공급 분야에서 네덜란드 로봇 기업의 독점적 지위는 강화되고 있다. 네덜란드는 나라 특성상 농경지 토양이 극도로 압축되어 있는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목축업 생태계에서의 지속적인 수요 발굴, 솔루션 개발 등을 통하여 차별성을 확보하고 선도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두 번째로, 기존 시장에서 니치(niche) 마켓을 찾는 노력도 필요하다. 제조 공정 영역의 경우 외관상으로는 정체된 레드오션 시장으로 보이지만, 침체 전망과는 달리 제조업용 로봇이 지속적으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현재 제조업용 로봇은 협동 로봇으로 진화하고, 서비스 영역과 제조 영역의 경계를 허물며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있다. 삼성전자, LG전자 등을 중심으로 무인화를 위한 자율 제조에 대해 정부 및 민간의 노력이 가시화되면서, 새로운 공정에 대한 제조업용 로봇의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팔레타이징(palletizing), 용접, 검사, 핸들링 등 제조업용 로봇의 주력 분야 이외에 로봇이 필요한 공정을 발굴하고 시장 수요에 맞는 로봇 솔루션을 개발하며, 국내뿐만이 아니라 유사한 제조 공정을 가진 다른 나라에 수출을 준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Captive Market이 작동하여 국내 로봇 활용을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생태계가 조성되어야 한다. 한국은 로봇이 많이 활용되는 주력 산업을 가장 많이 보유한 국가다. 이차전지, 바이오 등 대규모 로봇 수요가 잠재적으로 기대되는 산업도 육성하고 있다. 정부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국산 로봇을 활용할 경우, 세제 혜택이나 수출 지원, 규제 개선 등 인센티브 정책의 도입도 검토해야 한다. 이러한 변화와 노력을 통해, 한국 로봇 산업은 중국의 성장이 주는 압박 속에서도 경쟁력을 유지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점진적으로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 Vol.468
24년 11/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