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술혁신 성공사례 최초와 최고를 지향하는 현장 중심 기술혁신 ‘벤더블 디지털 디텍터(Bendable Digital Detector)’_㈜디알텍
의사 선생님이 벽에 걸린 형광등 패널에 널따란 필름을 끼우면, 엑스레이 사진에서 몸속 뼈와 신체 기관들을 볼 수 있던 기억이 있다. 요즘은 책상 위의 모니터에서 엑스레이 사진을 보는 디지털 시대이니 당연하다고만 생각했지, 그 과정의 숨은 기술적 진화를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디알텍(이하 디알텍)은 20여 년 전 방사선 신호를 센싱하는 디지털 디텍터를 개발하고 제조하는 기술 기반 회사로 창업하였다. 이후 기술과 업력을 쌓으며 작은 거인 같은 기업으로 성장하여, 현재는 인체용 X-ray 시스템, 유방암 진단용 맘모 시스템, 스텐트 시술용 C-arm 시스템 등 의료용 엑스레이 시스템으로 제품과 사업 영역을 확장해 글로벌 무대를 누비고 있다.
2024년 13주 차 IR52 장영실상을 수상한 디알텍의 ‘벤더블 디지털 디텍터’는 산업용 디텍터로써 세계 최초의 제품이면서, 동시에 회사로서는 신사업 영역을 개척한 혁신 기술이다. 기술경영의 관점에서는 여러 성공 요소의 이상적인 맞물림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기술혁신의 교과서 같은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글. 이장욱 컨설턴트(씨앤아이컨설팅)
시장의 잠재된 니즈를 찾아낸 벤더블 디지털 디텍터
디알텍의 ‘벤더블 디지털 디텍터’의 혁신성을 이해하려면, 우선은 디지털 디텍터에 대한 약간의 배경지식을 갖추어야 한다. 과거에 엑스레이를 촬영할 때는 미술용 도화지 크기의 필름이 필요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디지털 디텍터는 이 아날로그 방식의 필름을 디지털로 대체한 것으로, 필름 카메라와 디지털카메라의 차이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의료용 엑스레이 필름은 약 20년 전부터 디지털로 전환되기 시작하여 현재는 디지털이 압도적인 대세가 되었다.
디알텍(DRTech)의 사명은 ‘Digital Radiography Technology’의 앞 글자를 따 만든 것이다. 디알텍은 기존의 간접 방식 디텍터가 주류였던 시장에서 기술적 난도가 높고 양산이 까다로운 직접 방식 디텍터를 세계에서 3번째로 개발해 내면서, 본격적인 디텍터 개발 및 공급사로 성장하였다. 디알텍은 엑스레이 시스템을 구성하는 한 부품인 디텍터 시장에서 기술력과 품질을 인정받은 후, 디텍터 코어 기술을 바탕으로 의료용 엑스레이 전체 시스템 개발에도 도전하였다. 그 결과 현재는 인체용 및 동물용 엑스레이 시스템, 유방암 진단용과 치과용 시스템까지 자체 개발하여 다양한 제품 라인업을 구성하고 있다. 디알텍은 국내에서는 물론이고, 주로 해외에서 글로벌 기업 제품들과 경쟁하고 있다.
디알텍의 NA개발그룹(New Application Development Group)은 그 이름처럼 새로운 적용을 모색하는 팀에서 출발하여, 현재는 그룹으로 격이 올라간 부서다. NA개발그룹은 회사의 코어 기술인 디지털 디텍터를 적용할 새로운 활용처로 배관 용접부 품질 검사 분야를 발굴하였다. 이후 현장에 있는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기 위해 수년간 직접 현장을 찾아다녔다.
배관은 가스나 석유, 조선, 항공 등의 분야에 많이 사용되기에 안전과 직결된다. 따라서 배관 용접부의 결함 검사가 필수적이고 중요한데, 배관이 곡면이어서 필름으로 촬영할 수밖에 없는 분야였다. 그림 1과 같이 기공(porosity; 다공성)이나 결절 등의 용접 결함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배관 용접부에 필름을 붙이고 반대편에서 엑스레이를 투과시켜 촬영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필름 촬영 방식은 배관이 곡면이다 보니 여러 번 새 필름을 붙여 촬영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촬영 후에는 필름을 현상해서 판독해야 하므로 시간도 많이 소요되었다. 장시간 촬영이 진행되기에 작업자들은 피로가 누적되었고, 방사선에 피폭되는 시간도 늘어났다. 전체적인 공사 기간도 길어져 사업자와 작업자 모두에게 손실이 발생하였다. NA개발그룹은 여기에서 잠재된 니즈를 찾을 수 있었다. ‘디지털 기술로 기존의 필름을 대체할 수는 없을까?’
그림 1 배관 용접부 곡면에 엑스레이 필름을 붙여 검사하는 기존 방식(좌)과 평면 디지털 디텍터의 곡면 검사 한계성(가운데) 및 자유 곡률로 구부러지는 벤더블 디지털 디텍터의 개념도(우)
당시 아날로그 필름 촬영 방식에서 발전한 디지털 디텍터는 평판 형태였다. 이는 디지털 방식으로 실시간 검사가 가능했지만, 디텍터는 평판 형태인데 배관은 곡면 형태였기 때문에 한 번에 곡면부의 극히 일부만을 촬영할 수 있는 문제가 있었다. 즉 배관의 직경이 클수록 수십 번이 넘는 촬영을 해야 하는 한계성이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분석을 통해 문제가 명확해지자 NA그룹은 벤더블 디지털 디텍터의 최초 컨셉을 탄생시켰다.
기술경영의 관점에서 성공의 첫 단추는 신사업 또는 신제품을 구상하는 것이다. 이 단계가 잘못되거나 미흡하면 이후의 단계가 아무리 훌륭하다 하더라도 성공 확률은 급격하게 떨어진다. 이러한 측면에서 디알텍의 기술혁신 성공 과정 중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디알텍이 수년에 걸쳐 고객 현장을 찾아 고객과 함께 고민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의료용 엑스레이 디지털 디텍터를 코어 기술로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이러한 새로운 용도를 찾기 위해 새롭게 NA팀도 구성하였다. 디알텍은 아무리 훌륭한 기술이라도 결국 기술 사업(제품)의 성공 여부는 고객이 결정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디알텍의 NA팀은 최초 3명으로 출발하여 현재는 20여 명의 개발그룹으로 커졌다. 산업용 디지털 엑스레이 디텍터를 개발부터 판매까지 모두 할 수 있는 사업부 성격의 조직으로 성장한 것이다. 여러 기능이 통합되어 한 부서 안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서로 간 소통과 정보 공유가 신속하고, 공동의 목표에 대해 효율적인 협업이 가능하여 이상적인 조직이다.
컨셉이 먼저 그다음이 기술 확보
현장의 요구는 명확했다. 필름처럼 사용할 수 있으면서 실시간 판독이 가능하여 작업 시간은 단축하고, 촬영의 정확도와 효율성은 높이는 것이다. 이를 만족하기 위해서는 ‘필름처럼 곡면에 맞추어 자유롭게 휘어지면서도 이를 붙였다 떼었다 하기가 쉬워 배관 용접 부위를 엑스레이로 실시간 검사할 수 있는 벤더블 디지털 디텍터(Bendable Digital Detector)’가 필요했다.
이 한 줄의 컨셉을 완성하기 위하여 NA개발그룹은 몇 년에 걸쳐 현장을 찾았다. 현장의 소리를 회사로 가져와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미들웨어, 기구의 개발과 영업 및 관리 인원이 모두 모였다. 이들은 각자의 전공에 상관없이 아이디어를 내는 브레인스토밍을 하고, 매번 그 결과를 샘플로 수없이 만들어 보았다. 좋은 아이디어를 모아 완성한 컨셉이더라도 실물의 완성도가 떨어지면 실패이기에, 아이디어를 빠르게 프로토타이핑하여 컨셉의 가능성을 바로바로 확인한 것이다.
기술경영 프레임을 고려하면, 이렇게 신제품을 구상한 이후 실행해야 하는 기술개발의 첫 단계는 R&D 기획이다. 기획의 핵심은 신제품이나 신기술의 컨셉을 만들고 그 기대효과를 표현하는 것이다. 최초의 신제품 구상은 무엇을 할 것인지를 정하는 것이고, 컨셉은 그 무엇을 가치 중심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따라서 컨셉에 기대효과를 덧붙이면 기획이 완성된다. ‘아날로그 필름 방식에 비해 피폭선량이 10분의 1로 감소하고 실시간 영상 판독으로 10배 이상 빠른 진단이 가능하며, 재작업의 리스크가 없고 수천~수만 장의 필름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디지털 영상 기록을 영구히 보관할 수 있어 검사와 보관 비용을 최소 30% 이상 절감하는, 벤더블 디지털 디텍터’
기술혁신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를 살펴보자면 1등이 앞서 다룬 신제품/신기술의 구상 및 선정이고, 2등이 그다음 다룬 R&D 기획이다. 이들은 거의 동시에 진행되기 때문에 사실상 선후를 따지기가 어렵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고객을 설득할 힘을 갖추지 못하면 나머지 기술경영의 요소들은 아무리 뛰어나도 쓸모가 없어지기에 이들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좌측부터) 김형식 수석, 문범진 전무, 양대연 책임, 길용철 선임
R&D 기획의 다음 과정은 글로 쓴 가치를 현실로 만들어 내는 과정인 기술개발이다. Flexible Display에 익숙해진 요즘 시대에는 벤더블 디텍터가 그리 새롭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 기술을 개발하는 데 적용된 몇 가지 조건들을 다음에서 소개하면 그 개발 난도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개발해야 하는 디텍터의 검사량은 검사해야 하는 배관의 직경과 총길이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벤더블 디텍터는 이에 맞추어 자유로운 곡률로 수없이 구부러지고 펴지기를 반복해야 하므로 내구성은 무조건적인 필수 요소다.
무한 반복되는 검사 과정에서 누적되는 스트레스를 감당할 만큼의 내구성에 더하여, 영상에 불량이 발생해서는 안 되기에 디텍터는 신뢰성 또한 갖추어야 한다. 여기에 사용자 환경은 대부분 가혹한 야외의 환경조건이다. 디텍터는 온도가 낮아서 차갑거나 높아서 뜨거워도 기능에 이상이 없어야 하며, 비나 눈이 내리는 날씨 등도 견뎌내 거친 금속 배관의 표면에 부착되어야 한다. 한낮의 기온이 40도를 넘는 지역에서 배관을 검사할 때, 금속인 배관 표면의 온도는 이보다 훨씬 높다는 것을 상상해 보면 이것이 얼마나 가혹한 환경조건인지를 쉽게 알 수 있다.
또한 디텍터에는 배관의 촬영을 위해 TFT(Thin Film Transistor)가 사용된다. 따라서 반복되는 구부림에 대비해 TFT의 충분한 내구성을 확보해야 했고, TFT를 앞뒤로 보호하는 상・하판 Layer 역시 잘 휘어지면서도 분리되지 않아 TFT를 잘 보호해 주어야 했다. 이 기술만 해도 수많은 아이디어를 내고 반복 시험을 하여 내구성과 최적의 상태를 확보해야 했기에 개발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구부러지는 정도도 자유로워야 했으므로 개발이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기존의 아날로그 필름 방식은 필름을 배관 표면에 접착테이프로 붙여서 사용했다. 따라서 벤더블 디지털 디텍터도 이것만큼 편리하게 붙일 수 있어야 하고 잘 고정되어야 했다. 즉 가이딩 장치가 있어 손쉽게 디지털 디텍터의 구부러진 상태를 일정하게 유지해 주면서, 배관에도 잘 붙어있게 도와줘야 했다. 이것은 휴대할 만큼 가벼워야 했다. 이상의 많은 조건들을 만족시켜야 벤더블 디지털 디텍터는 아날로그 필름 방식보다 더 나은 가치를 제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디알텍은 이 모두를 만족시키는 벤더블 디지털 디텍터를 개발해 냈다.
그림 2 세계 최초 자유 곡률 구조를 갖는 산업용 벤더블 디지털 엑스레이 디텍터
기술혁신 성공 요인과 남은 숙제
디알텍의 NA개발그룹을 포괄하는 산업용 디지털 디텍터 사업 부문의 문범진 기술본부장은, 15년간 연구개발을 담당하는 CTO(Chief Technology Officer)를 지냈다. 디알텍의 창립부터 현재까지 공장장과 기술 영업 지원 업무 등을 거치면서 회사의 중추 역할을 해오고 있다.
문범진 본부장이 말하는 디알텍은 창립부터 기술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세계 최초를 추구해 온 기업이다. 만약 세계 최초가 아니라면 최고를 추구해 왔다고 한다. 그래서 디알텍은 세계 최초이거나 세계 최고 수준인 기술을 다수 보유하고 있어 기술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르다. 사업에서도 국내 최고가 아닌 세계 최고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매출 대부분이 해외에서 발생하고 있다. 다시 말해 디알텍은 해외의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하는, 처음부터 글로벌 최고 수준을 기술 목표로 하는 강소기업이라는 의미다.
이미 소개한 바와 같이, 디알텍은 시장과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는 데 시간과 노력을 아낌없이 쏟아부어 신제품과 신기술을 선정한다. 여기에 더해 전 직원이 소통하여 아이디어를 내고 컨셉을 기획한 후, 이를 개발과 영업에까지 연결하는 매우 유연한 조직 및 조직문화를 가지고 있다. 많은 기업이 효율을 위해 기능 부서들을 구분하고 각자의 영역에서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도록 조직을 운영하는 것과 대비 되는 부분이다. 각각의 전문 기능에 맞게 기획 따로, 개발 따로, 영업 따로 하는 것도 효율적일 수 있겠지만, 디알텍은 그 반대의 모습으로 Best Practice를 보여주고 있다.
디알텍의 기술혁신 사례에서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은 것은 ‘디알텍의 벤더블 디지털 디텍터는 미래를 어떻게 대비하고 있는가?’이다. 디알텍은 수년간 현장의 니즈를 파악하여 신제품인 벤더블 디지털 디텍터를 구상했고, 2020년 1월 제품개발에 착수하여 2년 만에 개발을 완료하였다. 2022년 4월에는 첫 매출을 올렸으며 대부분이 해외 매출이었다. 이듬해인 2023년에는 매출이 수직으로 상승하여 첫해 매출의 2배가 넘었으며, 역시 대부분이 해외 매출이었다. 디알텍은 새롭고 중요한 아이템을 확보하여 기존 의료용 시장에서 산업용 시장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한 것이다.
그런데 그사이 벤더블 디지털 디텍터는 시장에서 핫한 아이템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따라서 해외 경쟁업체들도 발 빠르게 유사한 컨셉들을 전시회에 내놓기 시작했다. 아직은 경계할 만한 경쟁제품이 등장하지 않았지만, 우수한 경쟁제품의 등장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그렇다면 디알텍은 이러한 미래의 경쟁을 어떻게 대비하고 있을까?
디알텍의 벤더블 디지털 디텍터는 출시 3년 차로, 현재 2세대 벤더블 디지털 디텍터를 판매하고 있다. 짧은 시간 동안 1세대 제품을 사용한 고객들의 새로운 니즈를 파악하여, 벌써 이를 반영한 2세대 제품이라는 기술 진화를 이뤄낸 것이다. 2세대 제품에서는 1세대에 비해 부피와 무게를 줄인 경량화를 구현하였으며, 해상도 또한 높였다. 2021년부터 현재까지 관련 특허도 36건이나 확보하여 경쟁제품에 대해 기술 진입장벽 또한 마련해 놓았다.
특허로 아무리 든든한 성벽을 쌓아도 경쟁자들의 모든 공격을 막아낼 수는 없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경쟁자를 앞서가는 공격뿐이다. 궁극적인 목적이 분명하고 그 길을 안내하는 기술로드맵이 있으며, 로드맵 중간중간에 달성해야 할 분명한 마일스톤을 가진 디알텍은, 왜 그들의 기술혁신이 교과서적인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 Vol.468
24년 11/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