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술혁신 성공사례 대양의 공기를 가르는 친환경 기술 SAVER Wind(C)_삼성중공업㈜
TV에서 보는 대형 컨테이너선은 얼마나 클까? 20,000TEU01급 컨테이너선은 항공모함보다 더 큰 초대형 선박으로, 대략 평균 길이가 400m, 폭이 60m, 높이가 70m에 이른다. 흔히 비교하는 축구장 면적의 4배에 해당하고, 선박을 수직으로 세우면 133층 높이다. 이는 63빌딩의 높이인 264m보다 훨씬 높고, 롯데월드타워의 높이인 555m보다 150m 낮은 정도다. 이렇게 바다 위를 떠다니는 초고층 빌딩 크기의 컨테이너선은 화물을 적재하고 운행하는 데 하루에만 200~300톤에 이르는 연료를 소비한다. 상상을 초월하는 스케일이다. 하루 연료 소비량을 금액으로 환산하면 대략 12만 달러, 원화로 1억 7천만 원가량에 해당한다.
삼성중공업 친환경연구센터는 연료를 절감할 뿐만 아니라, 악천후로 인한 파도의 충격과 해수로부터 컨테이너를 보호할 수 있는 ‘대형 컨테이너선 공기저항 저감 장치 SAVER Wind(C)’를 개발하였다. 이로써 2024년 39주 차 장영실상을 수상하였고, 자타공인 세계 1위인 한국 조선업의 기술력을 과시하였다. SAVER Wind(C)의 기술은 무엇이고 어떠한 성공의 요인들이 있었는지를 함께 알아본다.
글. 이장욱 컨설턴트(씨앤아이컨설팅)
기술의 가치에 대한 이해
대형 컨테이너선의 공기저항 저감 장치라고 하면 TV에서도 본 적이 없어 쉽게 연상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컨테이너를 싣고 다니는 트럭의 운전석 윗부분에, 주행 방향으로 경사면을 가진 뚜껑같은 것은 자주 보았을 것이다. 이는 공기저항을 줄이기 위한 에어 페어링 또는 스포일러라고 하며, 그림1을 참조하면 쉽게 알아 볼 수 있다. 삼성중공업 친환경 연구센터에서 개발한 대형 컨테이너선 공기저항 저감 장치 SAVER Wind(C)는 쉽게 말해 배에 설치하는 에어 페어링이다.
20,000TEU급 컨테이너선은 길이 20피트(6.1m)의 컨테이너를 2만 개 적재할 수 있는 규모다. 컨테이너를 적재했을 때 배의 높이는 바닥부터 제일 높은 곳까지 약 70m 정도 된다. 이렇게 컨테이너를 쌓아 올려 만들어진 거대한 벽은 배의 항해 중 공기저항의 원인이 되어 연비를 떨어트리며, 악천후 속에서는 거대한 파도가 부딪치는 타깃이 되기도 한다.
삼성중공업의 SAVER Wind(C)는 이렇게 컨테이너 벽이 받는 공기저항을 줄여 연비를 높여 준다. 또한 악천후 시 발생하는 거센 파도의 들이침으로 인한 충격과 하중으로부터 컨테이너와 뱃머리 부분의 각종 의장품을 보호해 준다.
삼성중공업이 개발한 대형 컨테이너선 공기저항 저감 장치 SAVER Wind(C)가 제공하는 기술적 가치는 다음의 세 가지로 명확하게 요약할 수 있다. ① 축구장 4배 크기의 대형 컨테이너선이 받는 공기저항을 줄여 연비를 개선해 준다. 연비 개선의 효과는 최대 6% 정도이다. ② Green Water로부터 뱃머리에 적재된 컨테이너 박스와 배의 각종 의장품을 보호해 준다. ③ SAVER Wind(C)는 새로 건조하는 배에만 적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배에도 적용할 수 있어 유연성이 있다. 이 유연성이 SAVER Wind(C) 기술의 핵심이라 할 수 있으며, 다음 장에서 이를 자세히 다룬다.
최근 SAVER Wind(C)는 더욱 많은 고객에게 관심받는 소위 ‘핫한 아이템’이 되었다. 대형 컨테이너선이 하루에 사용하는 연료량은 200~300톤이고, 이는 약 1억 7천만 원 정도의 금액에 해당한다. 만약 대형 컨테이너선이 부산에서 로스앤젤레스로 향하여 대략 12일을 항해한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평균 잡아 3천 톤가량의 연료를 사용한다는 것인데, 이러한 점을 생각하면 SAVER Wind(C)는 단순한 연비 개선 장치를 넘어선 친환경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더해, 국제해사기구(International Maritime Organization, IMO)가 온실가스배출 억제를 위한 각종 규제를 강화하고 있어 연료 절감장치의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SAVER Wind(C) 기술개발 과정
삼성중공업의 SAVER Wind(C)는 2012년 최초의 아이디어로부터 과제화가 시작되었다. 2022년에야 최초로 적용이 이루어져, 10년간 개발이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기간에 어떠한 기술개발이 이루어졌고, 이렇게 개발된 기술의 핵심적인 차별성은 무엇일까?
완성된 SAVER Wind(C)는 건물 5~7층 높이에 이르는 철재 구조물이다. 20,000TEU급 컨테이너선은 공선의 중량만 20만 톤이고 화물을 적재하면 40만 톤에 달하기에, SAVER Wind(C)의 무게는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SAVER Wind(C)는 배의 앞머리에 설치되어야 하는 구조물이므로, 배에 가해지는 하중과 균형, 공기저항, 뱃머리의 각종 의장품이나 장비와의 간섭 등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다. 관련하여 제대로 된 데이터를 얻기 위해서는 실물을 이용한 실험이 필요하지만, 단순히 생각해 봐도 실험실에서 이것저것 조정해 가며 실험하기에는 컨테이너선이 너무 크다. 왜 SAVER Wind(C)가 오랜 시간 동안 개발되었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SAVER Wind(C)의 실제 실험 과정은 크게 3단계로 나누어진다. 첫째, 어떠한 형상으로 SAVER Wind(C)를 만들어야 가장 효과적일지를 찾는 단계이다. 그림2에서 볼 수 있는 SAVER Wind(C)의 굴절과 각도 하나하나는 멋있고 세련되게 보이기 위한 디자인적 고민에서 나온 형상이 아니다. 오히려 수없이 다양한 형상에 대한 공기저항 테스트 결과, 공기저항을 극대로 감소시킬 수 있는 형상이 우연히 외형적으로 보기 좋기까지 한 것이다. 기술적으로는 ‘유동 해석’이라는 과정으로 간단히 설명되지만, 이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형상을 실험한 경험과 데이터의 축적이 진짜 핵심 기술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형상을 모형 선박에 적용하고 풍동 테스트를 통해 공기저항 효과를 데이터화하는 단계다. 실제 선박에서 데이터를 얻을 수는 없으므로 모형 선박에서 도출한 데이터는 실물에 가장 근접한, 귀중한 데이터 자산으로 축적된다.
셋째, 선박의 안전성과 내구성 등을 검증하는 단계다. 이 마지막 단계에서는 인증서를 발급해 주는 ‘선급기관(ex. 한국선급)’에서 요구하는 Green Water에 대한 구조 안전성 승인을 통과할 수 있도록 데이터도 확보해야 한다.
위의 세 가지 단계를 거쳐 궁극적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실험의 목적은 ‘선박의 공기저항을 최소화해 주며 튼튼하고 가벼우면서도, Green Water의 충격으로부터 안전한 구조물의 개발’이다. 완성된 SAVER Wind(C)의 외형을 보면 경쟁사도 금방 모방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데이터 없이는 디자인적 모방에 지나지 않는다. 즉, 10년 간의 개발 과정은 모방할 수 없는 데이터의 축적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유사한 크기의 컨테이너선이라 하더라도, 제조사나 제조 시기에 따라 선박의 뱃머리 모양은 달라진다. 이에 따라 SAVER Wind(C)의 외형도 변화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SAVER Wind(C)의 진짜 기술력은 배에 따라 맞춤형으로 형상을 만들어낼 수 있는 ‘유연성’에 함축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SAVER Wind(C)는 새로 건조하는 배뿐만 아니라 기존의 배에도 약간의 개조를 통해 적용할 수 있다. 삼성중공업이 이렇게 큰 유연성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전술하였듯이 10년간 다양한 형상에 대해 실험한 수많은 시행착오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분석 및 종합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SAVER Wind(C) 기술개발의 성공 요인
삼성중공업의 SAVER Wind(C)라는 기술혁신 성공사례는 ‘유연한 R&D vs. 경직된 R&D’라는 말로 그 성공 요인을 요약할 수 있다. 한 과제를 10년이나 지속하는 것은 유연성이 허락되지 않는 환경이라면 불가능하다. 대형 선박의 개발과 건조는 수많은 기술과 전문성의 융합이 필수적이므로, 단기 성과 중심의 경직된 R&D로는 기술 집약적인 조선 분야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우리나라의 R&D 투자는 세계 5위권이고, GDP 대비 R&D 투자 규모는 세계 2위 수준이다. 외형적으로는 더이상 성장하기 어려울 정도로 세계 최고 수준인 것이다. 이제는 양적인 성장보다는 질적인 성장으로의 변환을 추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어떻게 하면 질적으로 훌륭하면서도 유연한 좋은 R&D를 수행할 수 있을까? 삼성중공업의 기술혁신 성공이 이를 설명하기에 최적인 사례로 보인다.
삼성중공업은 무엇을 잘해서 성공적인 R&D를 수행해 냈을까? 몇 줄의 글로 다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비결은 엄격함과 유연함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삼성중공업에는 큰 목표를 공들여 세우는 엄격함이 있고, 다양한 아이디어로부터 과제를 만들어내는 유연함이 있는 것이다. 이를 다시 엄격하게 심사하여 확정하고, 이 과정을 거쳐 선정된 과제에 대해서는 일단 오랜 기간이 소요되더라도 기다려주고 지원해 주는 유연함이 있다.
이와 같이 SAVER Wind(C)는 10년의 개발 과정 동안 몇 차례의 큰 변화와 새로운 아이디어의 추가를 겪으며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그리고 로드맵은 접근 방법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방향과 큰 목표를 제시해 주는 역할이기 때문에, 비슷한 시기에 SAVER Wind(C)뿐만 아니라 SAVER Air, SAVER Fin과 같은 친환경 기술들이 함께 개발되었다. 여기에서도 삼성중공업의 엄격함과 유연함의 공존을 찾아볼 수 있다.

최근 SAVER Wind(C)는 많은 고객의 관심을 받고 있어, 대형 컨테이너선의 필수 아이템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더 나아가, SAVER Wind(C)는 가까운 미래에 대양의 공기를 가르는 대형 컨테이너선의 기본 설계 요소가 되지않을까 조심스레 예측해 본다.

- Vol.470
25년 03/0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