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D 나침반 전력 시장 게임체인저 SMR… 대형 원전 경쟁력 이어갈 수 있을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등 글로벌 정보통신(IT) 공룡 기업이 앞다투어 투자하는 기술이 있다. 바로 소형모듈원전(Small Modular Reactor, SMR) 기술이다. 이들 기업은 인공지능(AI) 경쟁이 촉발한 데이터센터 전력 수급 문제를 풀 열쇠로 SMR을 낙점했다.
SMR은 기존 대형 원전에 비해 안전성이 높고, 크기가 작아 건설 기간이 짧다. 전력 수요가 많은 수요처 인근에서 전력을 공급하는 분산형 전원으로, 송전 회피 효과도 크다. SMR은 전력뿐만 아니라 열, 수소 등 다양한 에너지원을 생산하는 데도 적합하다. 무엇보다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다는 게 최대의 장점이다. 이러한 이유로 SMR은 아직 상용화 사례가 없는데도, ‘차세대 전력 시장의 게임체인저’라는 칭호가 붙었다.
SMR 시장은 급성장이 예상된다. 세계 유수 기관들이 2030년에 SMR 시장이 개화하고, 수백조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내다봤다. 따라서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일본, 중국, 유럽 등 각국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연구개발(R&D) 및 실증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현존 3세대를 뛰어넘는 차세대 원자로(4세대) 기술을 접목한 SMR 상용화 사업이 곳곳에서 추진 중이다.
차세대 전력 시장 게임체인저 'SMR'
SMR은 기존 대형 원전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작은 300㎿ 안팎의 중소형 모듈형 원자로를 말한다. SMR은 급증하는 전력 수요에 효율적·친환경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이기에 차세대 발전원으로 부상하고 있다.
생성형 AI 확대로 인공지능의 일상화가 본격화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전력 사용량이 급증하고 있다. 국제에너지 기구(International Energy Agency, IEA)는 2026년 AI, 데이터센터 등에 소비되는 전력이 2022년 대비 2.3배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우리나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국내 데이터센터의 수는 2021년 142개에서 2029년 234개까지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이러한 전력 수요에 대응해 발전시설도 늘어나야 하는데 여건은 날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송전에 필요한 전력망조차도 확충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렇게 에너지 안보 및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발전원을 확보하는 게 세계적 화두인 가운데, SMR이 가장 효과적인 대안으로 지목되고 있다. SMR은 설계 특성상 사고 발생 가능성이 작고, 사고가 나도 방사능 유출 가능성이 대형 원전 대비 현저히 낮기 때문이다. SMR은 전기뿐만 아니라 산업단지 필수 에너지원인 열이나 수소도 생산할 수 있다. 이 밖에도 해수 담수화, 해양 우주 등 다양한 환경에서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SMR 시장의 몸집도 빠르게 불어날 전망이다.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WEF)은 2040년까지 SMR 시장이 연평균 22%씩 성장할 것으로 추산했다. 영국 국가원자력연구원(National Nuclear Laboratory, NNL)은 2035년 SMR 시장 규모가 약 400조~600조 원 수준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4세대 원자로 각축장
SMR은 낮은 투자 비용, 높은 유연성과 안전성을 강점으로 대형 원전의 한계를 극복할 발전원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 각국이 SMR 연구개발(R&D)·상용화에 뭉칫돈을 쏟고 있다. 특히 차세대 원자로를 SMR에 적용, 상용화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4세대 원자로는 물 대신 액체금속, 가스, 나트륨 등 그 외 다양한 물질을 냉각재로 사용하는 비경수로형이 대다수다. 4세대 원자로는 3세대 대비 더 높은 온도에서 운전할 수 있어 높은 발전 효율을 얻을 수 있고, 가압을 위한 추가 전력도 필요하지 않다. 압력 차이에 의한 방사성 물질 누출 가능성이 작고, 안전설비가 단순한 것도 장점이다. 대표 4세대 원자로로는 소듐냉각고속로(Sodium-cooled Fast Reactor, SFR), 고온가스로(High Temperature Reactor, HTR), 용융염원자로(Molten Salt Reactor, MSR) 등이 있다.
SFR은 국제포럼이 선정한 4세대 원자력 시스템 노형중 상용화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평가받는다. SFR은 중성자를 이용하는 경수로와 달리 고속 중성자를 이용해 핵분열을 일으키고, 이때 발생하는 열을 액체 소듐으로 전달해 증기를 발생시켜 전기를 생산한다.
SFR은 우리나라의 주요 현안인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로도 주목받고 있다. 이론적으로 사용후핵연료 부피를 20분의 1로 줄여 원료로 재활용할 수 있다. 원자로 제어 기술의 확보와 다른 4세대 원자로 대비 비싼 건설·운영 비용이 해결 과제다.
HTR은 수소 생산, 산업 공정용 열 제공 등 다양한 산업에 활용이 가능한 원자로로, 초고온 소재 개발 등이 필요한 상황이다. HTR은 방사능에 오염되지 않는 헬륨을 냉각재로, 흑연을 감속재로 써 750도의 열을 생산한다.
MSR은 냉각재와 핵연료를 일체화한 용융염 형태의 연료를 쓴다. 연료를 소형화할 수 있어 해양, 우주, 선박 등 소규모 분산 전원용으로 활용할 수 있다. 높은 열과 부식을 견딜 수 있는 재료와 용융염 물성 연구가 진행 중이다.
시장 선점 경쟁 본격화
4세대 원자로를 기반하여 세계적으로 약 80종의 SMR이 개발되고 있다. 미국(20종), 러시아(17종), 중국(9종), 일본(6종) 등 선진국이 R&D를 선도하고 있다. 아직 절대강자가 없지만 미국, 캐나다 등 2010년대 초부터 기술개발·실증에 나선 나라가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주요국의 SMR 실증 동향을 살펴보면, 차세대 원자로·SMR 개발에 7년간 3조 6,000억 원을 투자하기로 한 미국의 행보가 가장 눈에 띈다. 미국은 확고한 민간주도-정부지원 체계를 기반으로 차세대 원자로 실증사업(Advanced Reactor Demonstration Program, ARDP)을 추진하고 있다. 에너지부는 7년 이내에 인허가를 받아 운영할 수 있는 원자로로, 테라파워의 나트륨(SFR), 엑스-에너지의 Xe-100(HTR)을 선정했다.
미국은 특히 글로벌 IT 기업이 SMR 사업에 투자하며 상용화를 앞당기고 있다. 아마존은 지난 12월 초 미국 워싱턴 주 전력회사인 에너지 노스웨스트(ENW)가 추진하는 SMR 사업의 타당성 검토에 3억 3,400만 달러(약 4,600억 원)를 지원한다고 밝혔다. 아마존과 ENW는 미국 워싱턴주 핸포드 부지에 80㎿ 원자로 모듈을 최대 12기 설치할 계획이다. 총 960㎿ 규모 설비가 생산한 전력은 미국 북서부 데이터 센터에 공급된다. 이는 약 115만 가구가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MS 창업자 빌 게이츠가 설립한 차세대 소형모듈원자로 기업 테라파워는 지난해 6월 미국 내 첫 SMR 건설에 착수했다. 이 프로젝트에는 최대 40억 달러(약 5조 5,000억 원)가 투입될 것으로 예상되며, 절반은 미 에너지부(DOE)에서 지원할 예정이다.
이 밖에 캐나다는 연방정부·주정부 주도로 자국 내 SMR 실증에 집중하고 있다. 영국은 SMR·차세대 원자로 기술개발을 위해 1억 2,000만 파운드(약 2,200억 원) 규모의 ‘미래 원자력 활성화 기금(Future Nuclear Enabling Fund, FNEF)’을 조성했다. 롤스로이스가 2050년까지 자국 내 16기의 SMR 짓겠다고 발표했고, 정부도 자금 제공 등 지원을 약속했다. 중국은 ‘국가 5개년 발전 계획’에 해상 부유식 SMR 개발, 차세대 원자로 실증사업 추진 등 목표를 포함했다. 동시에 SMR 20기 설치를 목표로 90억 달러(약 13조) 규모의 투자 계획을 확정했다.
대형 원전 경쟁력 SMR에서도…, 수출 동력화 잰걸음
우리나라는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통해 SMR 도입 계획을 공식화했다. 정부는 4개 모듈로 구성한 SMR 1기를 2030년 이후 도입할 계획이다.
정부는 대형 원전을 통해 강점을 확보한 경수형 원자로 기술을 기반으로, SMR을 조기 상용화하고 중장기에 걸쳐 일부 비경수형 원자로 기술을 확보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경수형 원자로인 혁신형 SMR(i-SMR)의 개발은 2023년 출범한 혁신형소형모듈원자로기술개발사업단이 주도하고 있다. 사업단은 올해 표준설계를 완료하고 2026년 초에 표준설계 인가 신청, 2028년에는 인가를 획득하는 것이 목표다.
정부가 수립한 차세대 원자력 기술개발 및 실증 로드맵에 따르면 상용화 시점은 2033년 경이다. 정부는 국내·외 상용화를 위한 민·관 합작 사업법인을 설립해 추진체계를 구축하고, 초도호기 상업 운전 개시를 위해 사전에 부지를 확보할 계획이다. 특히 대형 원전과 함께 SMR도 수출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해외 원자력 규제 기관을 대상으로 사전설계 검토를 신청하고 관심국을 중심으로 인허가를 완료할 방침이다.
정부는 비경수형 원자로인 SFR, HTGR은 선진국 대비 기술 수준이 다소 뒤졌다는 판단 아래 i-SMR 대비 3년가량 늦게 상용화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SFR은 전문 엔지니어링 기업 등 민간과 공동으로 추가 공백 기술을 확보, 상용화하기로 했다. SFR로 국내·외 석탄 및 LNG 등 노후 화력발전소를 대체해 나갈 예정이다.
HTR은 해외 설계기업과 제휴해 개념·기본 설계를 조기에 완성하고, 중장기적으로 핵연료 공급 기술을 확보할 방침이다. 이를 통해 국내외 제철·석유화학 공정에 필요한 열·수소를 공급한다는 그림을 그렸다. MSR, 히트파이프 원자로(HPR)는 중장기에 걸쳐 기술을 확보할 방침이다.
- Vol.469
25년 01/0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