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pecial Issue Intro 02 트럼피즘 2.0, 무역전쟁의 격화
2024년 11월 15일 제47대 대통령 선거에서 미국의 선택은 분명했다. 예측할 수 없는 혼전 양상이라던 언론의 분석과는 달리, 7개 경합 주에서 공화당 트럼프 후보가 승리했다. 연방 의회의 과반수도 상·하원 모두 공화당에 돌아갔다. 트럼프 후보의 압도적인 승리는 4년 만에 더욱 강력해진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를 소환하며 무역전쟁의 격화를 예고하고 있다.
2018년 무역전쟁 회고
트럼프 정부 1기 무역정책의 주된 관심은 중국과의 무역 불균형 해소에 집중되었다. 2018년 미국 ‘무역정책 의제(Trade Policy Agenda)’는 중국의 강제 기술이전이나 첨단기술 탈취 목적의 악의적 미국 기업 인수 사례 등 불공정행위를 예시하며, 2000년대 이후 거의 활용하지 않았던 통상법 301조의 적용 가능성을 시사했다. 실제로 트럼프 정부는 2018년 7월과 8월 기계, 전자, 화학 등 주요 대중 수입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했고, 이후에도 두 차례에 걸쳐 대상 품목을 추가하거나 관세율을 높이는 조치를 단행했다.
이러한 인식은 전통적 동맹국에 취한 관세 조치에 잘 드러나 있다. 2018년 트럼프 정부는 세탁기와 태양광 패널에 통상법 201조 세이프가드(safeguard)를 발동했다.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해서는 중대한 안보 이익의 보호를 이유로 통상법 232조를 적용해 고율의 관세나 쿼터를 부과했다. 이때 조치 대상이었던 국가에는 한국, EU, 일본, 캐나다, 멕시코 등 주요 동맹국이 포함되었다. 트럼프 정부의 관세인상을 결정하는 중요한 판단기준이, 무역의 공정성보다는 무역수지 적자 여부로 보이는 대목이다.
트럼피즘 2.0, 관세정책의 강화
2024년 관세는 다시 미국 대통령 선거의 중심이 되었다. 트럼프 후보는 자신을 ‘관세맨(Tariff Man)’으로 묘사하며 수많은 보호주의 조치를 공약했고, 당선되었다. 유세 과정에서 트럼프 당선자는 모든 상품에 10% 또는 20%의 보편적 기본 관세를 부과하고, 상대국과 동등한 수준의 상호 관세를 부과하며, 중국에 대해서는 60% 이상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했다. 또한 중국과 ‘항구적 정상 무역 관계(Permanent Normal Trade Relations)’를 종료함으로써 2001년 중국의 WTO 가입 이래 유지해 오던 최혜국대우(Most-Favoured Nation Treatment, MFN)를 박탈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러한 트럼프 정부 1기의 관세정책은 세계 무역지도에 큰 변화를 불러왔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전방위적 압박에 따라, 수출국들은 멕시코와 베트남 등 우회로를 개척하거나 직접 수출을 늘려 중국 의존도를 낮췄다. 미국의 대중 수입 비중은 2018년 21.6%에서 2023년 14.1%로 감소했고, 미국의 전체 무역적자 중 중국의 비중도 2018년 46.8%에서 2023년 26.1%로 낮아졌다. 이에 반해, 미국의 4대 수입 상대국(중국, EU, 멕시코, 캐나다)으로부터는 중국을 제외하고 모두 30% 이상 수입이 증가했다. 일본, 한국, 베트남, 대만으로부터의 수입도 크게 늘어났다.
표면적으로 미국의 대중 의존도는 현저히 낮아졌지만, 우회 국가의 대미 수출에 포함된 중국의 부가가치는 오히려 증가했다. 특히 멕시코와 아세안, 동아시아 3국(한국, 일본, 대만)의 중국 부가가치 간접수출은 트럼프 1기 정부 이후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무역위원회(United States International Trade Commission, USITC)는 2023년 보고서에서 통상법 301조의 발동 효과를 다음과 같이 분석하였다. 통상법 301조의 발동은 적용 대상 산업에서 대중 수입을 13% 감소시켰지만, 멕시코나 한국, 대만 등으로부터는 컴퓨터 장비, 전기장비, 반도체 등 첨단기술 품목의 수입을 증가시켰다. USITC는 베트남과 멕시코가 중국과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분석하였다.
트럼프 정부 2기는 출범 전부터 무역적자의 종식을 공언하며 이른바 ‘요새 아메리카(Fortress America)’를 구축하려 하고 있다. 양자 무역적자의 증가를 미국에 귀속되어야 할 이득의 글로벌공급망을 통한 누수로 보고, 중국에 초점을 맞춘 관세정책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중국은 물론 동맹국까지 포함하는 더욱 강한 압박 정책이 실행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최근 트럼프가 당선 연설에서 “USMCA 국가인 멕시코와 캐나다에서 수입하는 모든 제품에 25%의 관세를 물리는 행정명령에 서명할 것”이라고 엄포한 바가 진지하게 여겨진다.
영향과 대응
미국 역사상 가장 높은 관세부과를 가능하게 했던 1930년 스무트-홀리 관세법(Smoot-Hawley Tariff Act)은 보호무역 조치를 전 세계에 확산시키며 대공황을 심화했다. Fajgelbaum and Khandelwal(2022)에 따르면, 당시 스무트-홀리 관세법의 적용을 받는 무역액은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1.4%에 불과했다. 반면, 트럼프 1기 관세는 미국GDP의 3.6%, 중국 GDP의 5.5%를 영향권 안에 두었다. 2000년대 이래 무역자유화의 진전으로 관세 전쟁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더욱 커졌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무역 전쟁은 단순한 관세부과를 넘어 기술 제한, 투자심사, 환율 조작으로 확장되었다. 무역전쟁은 경제적 분쟁의 격화와 더불어 지정학적 긴장을 야기하고 있다.
국제기구와 연구기관은 2025년 트럼피즘의 부활에 따른 세계 경제성장의 둔화를 우려하고 있다. IMF(2024.10.)는 ‘세계 경제 전망(World Economic Outlook)’에서 미국의 보편 관세 10% 부과 등의 상황을 가정할 경우, 세계 GDP가 0.8% 감소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대외경제정책연구원(2024.10.)은 미국이 보편 관세와 상호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에 25%의 관세를 추가하면, 미국의 무역수지는 1,715억∼4,974억 달러 개선되리라 예측했다. 그러나 미국 GDP는 0.23∼0.81% 감소하고 물가 상승 압력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리 경제에 대한 파급효과로는, 보편관세의 직간접적 영향과 상대국 보복관세의 간접적 영향으로 수출이 53억∼448억 달러 줄어들고 GDP도 0.29∼0.67%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여러 상황을 감안할 때, 트럼피즘 2.0 하에서 우리 경제는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과도하게 우려하거나 비관할 필요는 없다. 트럼프 1기에도 공약했던 정책은 선택적으로 시행되었고, 경제적 충격도 예상보다 크지 않았다. 오히려 2018년에 수출은 사상 처음으로 6천억 달러를 넘어섰다. 그러므로 이번 미국 대선 과정에서 나온 수많은 공약 중 무엇이, 언제, 얼마나 실제 정책으로 이어져 우리에게 영향을 줄지를 분석하고, 그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 문제에서 우리나라가 사정권 안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첫번째 표적은 아닐 것이다. 미국의 적자는 중국을 제외하고도 EU, 캐나다, 멕시코, 일본, 베트남과의 무역에서 우리나라보다 더욱 크고 빠르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대미 수출액이 큰 자동차의 경우, 무역수지 측면의 대응과 더불어 트럼프 1기에 경험한 통상법 232조의 적용 가능성에 대해서도 대비해야 한다. 보편 관세의 경우, 이것이 현재 미국 경제의 약한 고리인 물가를 자극할 수 있어 시행되더라도 속도 조절이 더해질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과거의 경험을 복기하고 다른 나라의 협상 과정을 참고하여, 효과적인 대응 방안을 마련할 시간과 기회는 있다.
트럼피즘 2.0을 기회 요인으로 활용하는 적극적인 접근도 필요하다. 산업에 따라서는 ‘요새 아메리카’ 정책을 미국의 관세장벽 안에서 중국의 경쟁 위협을 완화하고 기술격차를 벌릴 기회로 삼을 수 있다. 반도체, 전기차, 조선, 방산 등을 포함한 첨단·전략 산업과 기술 분야에서 한미 간 이해관계의 조율 가능성을 타진하고, 호혜적인 산업기술 협력 모델을 개발함으로써 기회 요인을 실현하는 실질적인 방안 도출이 요구된다. 국내 정치적 긴장과 불안 속에서도 대외경제정책을 담당하는 콘트롤타워를 확고히 유지하고, 트럼프의 불확실성에 대처하기 위한 초당적인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 Vol.469
25년 01/0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