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SS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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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중립과 AI 시대의 필수 에너지원 SMR

글. 주한규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장
서울대학교에서 원자핵공학을 전공하고 미국 퍼듀대학 원자핵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원자로 설계에 필요한 컴퓨터 코드 개발 전문가로서 현재 서울대학교 교수직을 휴직하고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장으로 봉직하며 미래지향적인 원자력 연구개발을 선도하고 있다.
원자력은 한강의 기적을 이끈 핵심 에너지원이었다. 1978년 우리나라에서 원자력 발전이 시작된 이래 원전은 47년간 우리나라 총 전력의 약 1/3을 초저비용으로 공급해 왔다. 1981년 약 1,900달러였던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40년이 지난 2021년 약 20배로 증가한 반면, kWh당 전기요금은 64원에서 108원으로 1.7배 수준으로밖에 오르지 않았다. 싸고 풍부하게 공급된 우리나라 전력은 55% 이상 산업용으로 사용되며 급격한 산업발전의 근간이 되었다. 그 기저에 원자력이 있었다.
원자력은 안정적이고 풍부한 저비용 전력 공급을 통해 우리나라 경제와 국민 생활에 활력을 제공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해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급기야 2017년부터 5년간 탈원전 정책이 강고하게 시행되며 우리나라 원자력의 위상이 현격히 저하되었다. 하지만 탈원전 부작용으로 인한 역설로 원자력의 가치에 대한 국민의 공감이 높아지고, 향후 도래할 탄소중립과 AI 시대에서 안정적 저비용 무탄소 에너지원의 필요성으로 인해 차세대 원자력인 소형모듈원자로(SMR) 중요성이 드러나고 있다.




재생에너지만으로는 불가능한 탄소중립
태양광과 풍력으로 대표되는 재생에너지는 일단 발전설비를 구축하고 나면 자연력에 의해 매일 전력이 재생산되므로 별도의 큰 추가비용 없이 무탄소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렇기에 재생에너지는 탄소중립 실현의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각광받아 세계적으로 크게 확대되고 있다.
재생에너지 설비는 자연환경 의존도가 높아 입지조건이 좋은 지역에 주로 설치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태양광 설비는 일사량과 평지 여건이 좋은 영호남 지역의 비도시 지역에 주로 설치 되어 왔다. 2024년 기준 우리나라 총 태양광 설비 설치용량은 27GW로 국토 면적당 태양광 발전량은 세계 2위 수준으로 성장했다. 반면 풍력 발전은 그 확대 속도가 매우 더디다. 그 이유는 풍력의 발전량은 풍속의 세제곱에 비례하는데 우리나라에는 풍속이 충분하게 높은 지역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신안 앞 바다의 풍속은 초속 약 7m로 영국 북해 풍속 9m에 비해 78% 수준으로 그다지 저조하지 않은 것 같지만, 그 비를 세제곱하면 47%로 떨어져 발전량이 반도 안 된다. 발전단가가 두 배 이상이 된다는 얘기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는 풍력보다는 태양광이 유리하지만 태양광은 낮에만 발전한다는 간헐성과 발전량이 시간대와 날씨에 따라 변한다는 변동성이 태생적 단점이다. 변동성은 풍력의 단점이기도 하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높아질수록 그 단점인 간헐성과 변동성을 극복하기 위한 다량의 에너지 저장장치(ESS)가 필요하다. 또한 발전의 지역 편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대규모 송전망 확충도 불가피하다. 재생에너지 운용비용은 발전비용뿐만 아니라 저장장치 비용과 송전망 확충비용이 추가되어야 하는데 이 추가비용이 발전비용보다 훨씬 더 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재생에너지의 한계 요인이 된다. 탄소중립도 경제성을 고려하지 않고는 실현 불가능하므로 재생에너지의 경제성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다른 무탄소 에너지원이 필요하다.




소형모듈원자로의 특징
SMR은 대형원전 대비 안전성을 대폭 높이고 재생에너지 대비 우수한 경제성을 실현시킬 차세대 원자로이다. 대형원전 내부에는 원자로와 증기발생기, 펌프가 개별적으로 배치되어 있고 그 사이는 배관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만약의 경우 배관 파단에 의한 냉각수 대량 누설 사고 가능성이 있기에 다단계로 작동하는 고비용 비상 냉각설비가 필요하다. 이 때문에 대형원전은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고, 지반이라든지 주변 인구 등에 제약 조건이 있어 특정부지에만 건설이 가능하다.
SMR은 안전성 증진 개념을 적용하기 쉽도록 원자로를 소형화하고, 모듈화를 통해 공장 제작, 현장 설치라는 방식으로 경제성을 제고함으로써 소형화로 인한 발전단가 상승 단점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개발되고 있다. SMR에서는 원자로나 증기발생기 같은 주요 기기가 다 작기 때문에 모든 주요 기기를 그림 1에서와 같이 다 한 통 안에 집어넣은 일체형 원자로가 가능하다. 그러면 대량 누설 가능성이 원천적으로 없기에 안전성이 대폭 높아진다.

그림1 주요기기를 일체화시켜 누설 가능성을 배제함으로써 안전성을 높인 SMR 개념

또 다른 SMR 안전성 증진의 대표적인 예가 미국 NuScale사에서 개발한 피동냉각 방식의 Voygr원자로이다. 이 원자로는 펌프 없이 자연순환으로 작동한다. 하부에 위치한 원자로 노심에서 물이 가열되면 뜨거운 물은 위로 올라가는 자연대류 현상에 의해 상승하게 된다. 상부에 있는 증기발생기에서는 뜨거워진 물에서 열을 전달받아 증기를 만든다. 열전달 후 온도가 낮아진 물은 밀도가 높아져서 하부로 내려가게 된다. 이렇게 되면 비록 유속은 높지 않지만, 펌프가 없이도 원자로에서 열수송이 가능하게 된다. 펌프로 하는 능동냉각 방식 대신 자연현상을 사용한 피동냉각 방식 원자로는 유사시 외부 전원이 끊어져도 원자로 냉각이 잘 돼 원자로가 녹을 확률이 극도로 낮아지므로 원자로 격납건물 없이도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 SMR은 이런 식으로 안전성을 높여 특별한 부지 요건 제약 없이 수요지 인근에 설치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SMR은 비단 전기뿐만 아니라 열생산에도 사용할 수 있다. 사실 전력 생산 부문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는 전체 배출량의 1/3정도에 불과해 전체적인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산업과 수송 부문 등에서도 무탄소 에너지 사용이 필수이다. SMR은 안전성이 높다는 장점 외에 전력생산뿐만 아니라 산업공정열과 수소 생산을 통해 비전력분야 무탄소화에 유용하게 쓸 수 있고, 대형 원전과는 다르게 출력 조정이 자유로워 재생에너지와 연계 운용이 가능하고 초기 투자비가 적게 들어 사업자 부담이 적다는 장점이 있다.
안전성이 대폭 높아져 수요지 인근에 설치할 수 있는 SMR은 대규모 데이터센터 전용 전원, 석탄 발전소 대체, 석유화학과 제철공장의 고온 열원, 해수 담수화, 수소생산, 지하자원 채굴용 고온 고압 증기 공급, 도서와 오지의 소규모 전력망 전원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될 수 있다.




SMR 개발 현황
SMR의 이러한 장점 때문에 현재 세계적으로 80여 종의 다양한 SMR이 개발되고 있다. 대부분 전통적 방식인 물로 냉각하는 수냉각 SMR이지만 미국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아 개발되고 있는 SMR은 둘 다 비수냉각형이다. 하나는 빌 게이츠가 설립한 TerraPower사가 개발하고 있는 액체 금속인 나트륨을 냉각재로 이용하는 Natrium이라는 고속증식 원자로이다. 이 원자로의 특징은 고속중성자를 활용해 연료를 증식해 사용함으로써 연료 이용 효율을 높여 오래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 용융염을 열 저장체로 사용하여 태양광이 발전을 많이 하는 낮시간에는 용융염을 가열만 하고 밤에는 그 열을 뽑아내 발전을 더 하는 방식을 적용함으로써 재생에너지와 연계를 조화롭게 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Natrium SMR은 미국 와이오밍주의 한 석탄 발전소 부지에서 노후 발전기를 대체하도록 이미 건설이 진행되고 있다.
두 번째 미국 정부가 개발을 지원하고 있는 SMR은 X-Energy라는 회사가 개발 중인 XE-100이라는 헬륨냉각 고온가스로이다. 이 원자로는 에너지 밀도가 낮아 유사시에도 공기 자연순환 냉각만으로도 원자로를 안전하게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고온가스로는 700도 이상의 고온 열을 생산하여 공정열로 직접 공급하거나 수소 생산에 활용할 수 있어, 전력뿐만 아니라 비전력분야의 무탄소 에너지원으로 활용성이 높다.
우리나라는 진작에 SMR 개발에 착수했다. 1997년 개발이 시작된 SMART SMR은 전기용량이 100MW인 일체형 원자로로서, 2012년에 세계 최초로 표준설계인가를 획득했다. SMART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담수와 전력 생산용으로 건설을 추진하여, 당초 설계보다 안전성이 향상된 개선모델인 SMART100의 건설전설계가 2018년에 완료됐고 이에 대한 표준설계인가가 지난해 9월에 발급됐다. 현재 한국원자력연구원(KAERI)에서는 SMART가 인허가 성과 제작성이 입증되어 즉시 건설이 가능하다는 장점을 활용하여 데이터센터나 아시아 지역의 소규모 전력망 전원으로 활용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SMART의 후속 SMR로 현재 활발히 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혁신형 SMR(iSMR)은 170MW짜리 모듈 4개를 기본 형식으로 하여 출력을 680MW로 높임으로써 경제성을 개선하고, 원자로 격납건물 대신 대형 철제 격납용기 방식을 도입함으로써 비상시 냉각재 유실을 방지해 안전성을 더욱 높인 SMR이다. iSMR은 용량 관점에서 석탄 발전소 대체에 적합하다. 여기에 부하추종운전, 수소 병행 생산 등 유연하게 운전할 수 있는 기능을 추가함으로써 재생에너지와 연계 활용이 가능하도록 설계하고 있다. iSMR사업 목표는 2028년 말까지 표준설계인가를 획득하는 것인데 지난해 제11차 전력수급계획에서는 첫 호기 국내 건설 방안을 포함시켰다.
국내 비수냉각 SMR로는 KAERI 주도로 세 가지 유형의 SMR, 즉 고온가스로, 융융염원자로, 소듐냉각고속로가 개발되고 있다. 이 중 고온가스로와 소듐냉각고속로는 과거 15년 이상 개발이 진행되다가 탈원전정부에서 개발이 중단되었지만 최근 민관 합작 방식 즉 정부와 민간기업이 공동 투자하는 방식으로 개발이 재개되었다. 각 유형의 SMR은 용도가 다른데 고온가스로는 고온열을 생산하여 화학 공장 등에 공정열을 공급하기 위한 것으로서 이 사업에는 POSCO E&C와 SK 에코플랜트 같은 회사가 참여하고 있다. 소듐냉각고속로는 장기운용특성을 갖는 원자로로서 현대건설이 독자 유형의 원전으로 세계 원자력 시장에 진출하고자 공동 개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용융염원자로는 핵연료가 냉각재인 용융염에 액체 상태로 섞여 있는 신개념 원자로이다. 이 원자로의 작고 구조가 단순해 선박 추진용 적합하므로 조선회사가 다수가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결론
탄소중립은 비단 전력 부문뿐만 아니라 수송과 산업 부문 등 비전력 분야에서도 경제적인 무탄소 에너지 공급이 가능해야 실현될 수 있다. SMR은 소형화를 통해 안전성 증진 개념 적용을 용이하게 하여 수요지 인근에 설치가 가능하고 전력뿐만 아니라 다용도의 무탄소 에너지를 저비용으로 공급할 수 있다. 이렇기에 SMR은 대규모 ESS와 송전망 확충이 필요한 재생에너지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탄소중립 시대의 필수 에너지원이 될 것이다. 나아가 SMR은 AI 활용의 폭발적 증가에 따라, 향후 획기적으로 늘어날 데이터센터의 안정적 전원으로서 핵심적 역할을 할 것이다. 탄소중립과 AI 시대의 필수 에너지원인 SMR은 2030년 중반 이후 세계 시장이 크게 형성될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나라가 현재 대형원전시장에서 확보한 주도권을 미래 SMR시장에서도 유지하기 위해서는 현재 진행 중인 다양한 민관합작 SMR 개발 사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과 민간의 투자가 확대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