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R&D 나침반

“AI는 도구가 아닌, 당신의 동료”
...스스로 일하는 ‘AI 에이전트’ 시대

글. 류준영
머니투데이 기자
카이스트(KAIST) 과학저널리즘대학원을 졸업하고, 한양대 과학기술정책대학원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현재는 머니투데이에서 ICT·과학 분야와 딥테크 벤처·스타트업 분야를 취재하고 있다.


“이거 에이아이(AI) 광고야. 에이, 아이. 이름은 루이 아니고 리 아니고. 뤼 뤼 뤼자로 시작하는 말, 뤼튼.”
지드래곤이 등장한 TV 광고의 내레이션이다. 대중의 시선을 확 사로잡은 이 광고는 얼핏 보면 ‘그까짓 거 대충 만든 광고’처럼 보이지만, 효과는 강렬했다.
광고 방영 이후 ‘뤼튼(Wrtn)’의 하루 평균 앱 설치 수가 57%, 회원 가입 수는 44% 증가했다는 것이 제일기획의 분석이다. 브랜드 인지도는 단숨에 폭발적으로 확산됐다. 그러나 광고를 본 많은 사람들의 반응은 여전히 “근데 도대체 뤼튼이 뭐야?”였다. 뤼튼이라는 이름은 익숙해졌지만, 그것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실체는 여전히 생소하다.
뤼튼은 한국 스타트업 ‘뤼튼테크놀로지스’가 개발한 생성형 AI(인공지능) 기반 글쓰기 플랫폼이다. 사용자가 간단한 지시어만 입력하면, 이를 바탕으로 뉴스 기사나 블로그 글, 마케팅 카피, 이메일 초안 등 다양한 형태의 문서를 자동 생성해준다.


그림1 <뤼튼 광고>

뤼튼처럼 스스로 생각하고 글을 쓰는 기술을 이른바 ‘AI 에이전트(AI Agent)’라고 부른다. 스마트폰 ‘아이폰’ 등장 후 여러 모바일 앱(애플리케이션)이 쏟아진 것처럼, 이 역시 비슷한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다만 차원이 인간의 명령에만 반응하는 도구를 넘어, 목적만 주어지면 최적의 방법을 스스로 설계하고 실행하는 색다른 ‘디지털 동료’가 등장한 것이다.
단순히 질문에 답하는 챗봇이나 응답형 모델을 넘어, 목표를 스스로 설정하고, 계획을 세운 뒤,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행동하는 AI’가 점차 우리 삶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AI 에이전트가 도대체 뭔데?
과거 AI는 사용자의 요청에 반응해 정보를 찾아주고, 질문에 답하거나 요약해 주는 도구로 기능했다. 구글 어시스턴트, 시리 등은 그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최근 AI 기술은 이러한 반응형 도구를 넘어,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에이전트’로 진화하고 있다.
AI 에이전트는 사용자의 요구를 단순히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의 상황을 인식하고(관찰) ▲수행 목표를 설정하며(계획) ▲이전 경험을 바탕으로 행동 방식을 학습하고(추론과 학습) ▲실질적인 작업을 수행하고(행동) ▲다른 사람이나 AI와 협력하는 능력(협업 능력)을 지닌다.
이를테면 사용자가 “회의 일정 잡아줘”라고 말하면, AI는 사용자의 캘린더를 조회하고, 참석자들의 일정을 확인한 뒤, 적절한 시간·장소를 제안하고, 회의 초대장을 발송한다. 나아가 회의 내용의 요점 정리까지 담당한다. 이 모든 과정이 인간의 개입 없이 자동으로 진행된다. 우리는 더 이상 단순한 도구가 아닌 ‘행동하는 AI’와 함께 살게 된 셈이다.


그림2 AI 에이전트 이미지




AI 에이전트 경쟁에 뛰어든 빅테크
이런 AI 에이전트의 개념은 전 세계 소위 ‘빅테크’들의 전략에 빠르게 반영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오피스365 전반에 걸쳐 ‘코파일럿(Copilot)’ 기능을 적용했다. 이메일 작성, 회의 요약, 문서 자동 생성, 슬라이드 제작, 데이터 분석 등 다양한 작업을 AI가 함께 수행한다. 구글은 ‘버텍스 AI 에이전트 빌더(Vertex AI Agent Builder)’를 통해 누구나 AI 에이전트를 설계하고 배포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으며, 구글 어시스턴트와 결합한 차세대 AI 도우미를 개발하고 고도화해 나가고 있다.
오픈AI는 ‘오퍼레이터(Operator)’ 기능을 통해 GPT 모델이 웹을 탐색하고, 외부 시스템과 연동해 실제 작업을 수행하도록 했다. 이제 AI는 사용자의 질의에 답하는 수준을 넘어, 복잡한 목표를 스스로 관리하고 실행할 수 있는 수준까지 도달한 것이다.




한국에서도 활발한 실험…통신·유통·의료 넘는 확장성
국내 주요 기업들도 AI 에이전트를 전략적 미래 먹거리로 삼고 적극 투자하고 있다. SK텔레콤은 AI 비서 ‘에이닷(A.)’을 통해 개인 맞춤형 서비스, 콘텐츠 추천, 스마트홈 제어 등 일상 전반을 관리하는 AI 에이전트를 운영 중이다. 네이버는 초 거대 AI ‘하이퍼클로바X’를 기반으로 쇼핑, 검색, 금융 등 각 분야에 맞춤형 에이전트를 도입하고 있다. LG유플러스는 콜센터 업무를 대체하는 AI 음성 응대 시스템 ‘익시오’를 상용화해 고객서비스의 효율을 높이고 있다.
가장 큰 변화를 예고한 산업은 커머스 분야다. 구글은 최근 AI 기반 쇼핑 에이전트를 선보였다. 만약 유튜브에서 멋진 옷을 본 소비자가 쇼핑몰에 접속해 “이 영상에서 나온 옷 비슷한 거 있어?”라고 AI에게 물으면, AI가 해당 영상을 분석해 비슷한 상품을 제안한다. 이뿐만 아니라, AI는 매장 재고 확인, 할인 쿠폰 적용, 유사 상품 제안까지 이어간다. 심지어 매장에 전화해 인간 점원처럼 대화하고, 흥정까지 한다. 결제 직전, ”비슷한 셔츠도 함께 사시면 추가 할인이 있어요”라고 제안하는 것까지 AI가 맡는다.
제조업과 건설업처럼 아날로그 중심의 산업에도 AI 에이전트의 물결이 퍼지고 있다. GS는 현장 안전교육 자동화 프로젝트를 실행 중이다. 기존에는 분야별 전문가가 있어야만 가능한 맞춤형 교육을 AI가 자동으로 생성하고 이수 여부도 디지털로 기록한다.
LS는 내부 시스템을 ‘에이전트화’하여 프롬프트 입력 없이 버튼 클릭으로 챗GPT 기능을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근퇴 규정 비서’, ‘PPT 정리 비서’, ‘입찰문서 요약’ 등 수십 개의 비서형 에이전트를 메뉴화했다. 조달청에서는 입찰문서를 요약·배분하고, 표준 형식으로 자동 작성하는 AI 시스템을 시범 운영 중이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편리함을 넘어, 산업 전체의 운영 방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예술·도시·세무 못 하는 게 없는 ‘만능 에이전트’
AI는 예술 분야에서도 인간과 협업하기 시작했다. 광주과학기술원(GIST)이 개발한 ‘이봄 AI 피아노’는 사용자의 감정과 대화를 바탕으로 음악을 작곡하고 실시간 연주하는 AI 예술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최근 미국에서 열린 ‘뉴스위크 AI 임팩트 서밋’에서 공개되어 전세계 관계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구글의 영상 생성 AI ‘Veo’, 코그니전트의 뇌파 기반 AI ‘뉴로AI’와 함께 전시되며 감성 기술의 미래를 보여줬다.
이봄 AI는 단지 감정에 맞는 음악을 생성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텍스트 분석을 통해 사용자의 감정과 상황을 파악하고, 대규모 언어모델(sLLM) 기반의 컨텍스트 맵핑 엔진을 통해 감성적 음악을 창조한다. 이를 통해 예술과 기술의 접점이 확장되며, AI는 창작의 주체로 떠오르고 있다.


그림3 Newsweek AI Impact Summit’에서 빅토르 라울 카스티요 만티야 박사, ‘이봄 AI 피아노’를 체험

AI 에이전트는 도시 인프라와 공공서비스 운영 방식에도 중대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대구시,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와 함께 ‘디지털 트윈 기반 상수도 관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AI가 수압·유량·수질 데이터를 실시간 분석해 이상 징후를 사전 감지하고 대응 체계를 자동화하는 구조다.
이러한 시스템은 더 이상 기술 시연을 넘어, 시민이 체감할 수 있는 서비스 품질 개선으로 연결되고 있다. ETRI 관계자는 “AI 에이전트는 이제 도시의 ‘디지털 공무원’ 구실을 하며, 수자원 관리, 안전 모니터링, 공공 위기 대응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고 있다”고 말했다.
ETRI는 또 한국남부발전과 ‘전력 산업 특화 AI’를 공동 개발 중이다. 이들은 발전소 설비 상태를 예측하고, 고위험 작업을 로봇이 대신 수행할 수 있도록 AI제어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이를 위해 다변량 시계열 데이터 기반 예지 모델, 고정밀 로봇 제어 AI, 전력 특화 LLM(대형 언어모델)을 함께 구축 중이다. 목표는 4% 이하의 예측 오차율, 98% 이상의 작업 성공률, 전문가 수준의 질의응답이 가능한 AI를 실현하는 것이다.
세무 AI 솔루션 기업 솔로몬랩스는 최근 미국 베세머 벤처 파트너스로부터 680만 달러(약 95억 원) 규모의 시드투자를 유치했다. 솔로몬랩스의 누적 투자금은 약 1,000만 달러(약 140억 원)에 달한다. 지난해 창업해 뉴욕에 본사를 둔 솔로몬랩스는 세금 신고 자동화 솔루션 ‘솔로몬 AI’ 제공하는 AI 에이전트 기업이다. 최근 미국에서는 2019년 대비 2023년 회계사 수가 17% 감소했다. 씨피에이 트렌드라인(CPA Trendlines)에 따르면, 회계법인의 42%는 인력 부족으로 신규고객을 거절하거나 기존 고객에게 충분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솔로몬랩스의 AI 에이전트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클라이언트 문서 수집부터 데이터 추출, 신고서 작성까지 자동화하는 솔루션을 제공한다. 기존 세무 신고서 작성에 5시간 이상 걸리던 과정을 30분으로 단축해 반복적이고 수동적인 문서 작업을 AI가 대체한다. 회계법인은 추가 인력 없이도 더 많은 고객을 수용할 수 있고 고품질의 세무 컨설팅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에 집중할 수 있다. 솔로몬랩스는 서비스 출시 6개월 만에 연간반복매출(ARR) 100만 달러(약 13억 8,200만 원)를 달성했으며, 올 연말까지 300만 달러(약41억 4,800만 원) 달성을 목표로 하고있다. 실제 미국 고객사 중 한 곳은 솔로몬을 도입해 전년 대비 64% 더 많은 신고서를 기한 내 제출하는 등 생산성 효과를 입증했다.




기술 넘어 제도로…AI 시대, 우리 사회의 과제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이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AI 에이전트는 단순히 진화된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과 함께 협력하며, 때로는 인간의 결정을 보완하고 대체하는 새로운 존재다. 중요한 것은 기술이 어디까지 발전하느냐가 아니라, 인간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사용할 것인가다. 실제로 AI가 자율적으로 행동하고 계약을 체결하는 시대에, ‘누가 책임을 지는가’라는 법적 문제는 더 복잡해지고 있다. 윤성로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AI가 개인을 대신해 판단하고 행동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자율성은 약화될 수 있다”며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AI가 등장할수록, 인간은 스스로 선택에 대한 확신을 잃을 위험도 있다”고 말했다.
AI는 이제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함께 협력하고 관계 맺어야 할 존재다. “기술의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것을 넘어, 인간 중심의 사회적 설계와 윤리적 기준을 먼저 정립해야 한다. 그래야 AI는 인간의 동반자로서 새로운 미래를 함께 설계할 수 있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표1 기본 AI시스템과 AI에이전트의 주요 차이점/자료􀀀AI에이전트 트렌드&활용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