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SSUE
Intro

2025 산업계가 바라는 새로운 산업기술정책은?

글. 안준모
고려대학교 교수
서울대학교 응용화학부에서 공학사를,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기술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는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행정학과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학계로 옮기기 전에는 중소기업청, 교육과학기술부 등에서 공직 생활을 하며 다양한 기술 정책 수립에 관여했다. 주요 연구 분야는 과학기술 혁신 정책, 인공지능 기반 정부, 디지털 전환, 기업가정신 등이다.
산업정책의 귀환
자유경제 체계에서 오랫동안 산업정책은 고속 성장을 해야 하는 개도국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아시아의 4마리 호랑이(한국, 대만, 싱가포르, 홍콩)는 성공적인 산업정책을 펼치고 있는 모범생으로 인식되는 반면, 미국과 유럽연합(EU) 같은 선진국들은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의 중요성을 내세우며, 정부는 자유무역 기반하에 최소한의 산업육성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런데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촉발되고 2019년 Covid-19 등으로 경기침체가 발생하여 분리주의나 보호주의, 반세계화가 심화되면서, 선택적 국제협력이나 핵심기술의 확보, 기술 리더십 확보가 중요한 산업정책의 키워드로 떠올랐다. 이로 인해 미국과 유럽연합도 예전과는 달리 노골적인 산업정책을 펼치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과학기술 싱크 탱크 기관의 하나인 ITIF(Information Technology and Innovation Foundation)의 수장 Robert Atkins는 2021년 4월 ‘산업정책의 부활(Industrail Poliy is Back)’을 선언한 바 있다. 2011년부터 2019년까지 유럽중앙은행(European Central Bank, ECB) 총재를 지낸 경제학자 Mario Draghi가 2024년 9월에 발표한 ‘유럽 경쟁력의 미래 보고서(The future of European competitiveness)’에서도 유럽의 적극적인 R&D 투자와 체계적인 산업정책 수립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더욱이 최근 미국은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서, 미국 우선주의의 기치 아래 제조업 및 미래 첨단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강조하고 있다. 인공지능 분야에서는 중국을 견제하는 동시에 규제 완화를 통하여 기술적 우위를 확고히 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반도체 분야에서도 강력한 수출통제와 관세를 통한 압박 등을 이어가고 있다. 에너지 분야의 경우, 화석연료 기반의 저렴한 산업용 전기공급과 이를 기반으로 한 미국 제조업의 경쟁력 강화, SMR 등 차세대 원전 개발, 바이오 경쟁력 제고와 민간의 자율적 혁신유도 등을 주요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다. 더욱이 최근 미국이 강력한 관세정책을 도입하면서, 기존의 자유무역 질서에 커다란 파고가 일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미국의 무역적자를 강조하며 대미 무역 흑자국에 높은 관세를 부과함으로써 바이든 정부의 정책을 연일 뒤집고 있다.


표1 최근 각국의 주요 기술 분야별 산업정책 변화




그러나 우리는?
이 같은 세계적인 혼돈 속에서 우리나라의 산업기술정책은 어떠한가? 안타깝게도 계엄과 탄핵이라는 정치적인 악재를 겪으면서, 적기에 대응할 수 있는 산업기술정책이 펼쳐지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관세정책에 관한 빠르고 적극적인 대응, 산업기술 R&D 투자 확대, AI 진흥, 주력산업 고도화, 산업인력 육성, 기술규제 혁신 등의 현안이 산적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리더십의 부재로 국가적 의사결정이 지연되고 있다. 아직 관련한 정치적 갈등이 남아있으나 우리 사회가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과정으로 나아가고 있기에, 이제 대한민국이 어떠한 산업기술정책을 수립하고 어떠한 전략적 선택을 해나가는지가 중요하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이하 산기협)는 R&D 투자, AIX, 주력산업 고도화, 산업기술 인재 육성, 기술규제의 5개 분야로 나누어, 새로운 정부가 고민해야 할 산업기술정책 이슈들을 연구소 설립 기업 300개사에 물었다.
먼저, 응답 기업들은 ‘R&D 투자’에 대해서는 그림1에 나타난 것처럼 R&D 투자 규모 확대와 함께 정부 R&D 프로그램의 행정절차, 평가, 세제지원 개선 등 시스템 혁신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특히 많은 정부 프로그램이 산업현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기존의 주력산업과 중소기업에 대한 안배와 함께 도전적이고 장기적인 지원도 중요하다고 응답했다.


그림1 산기협의 2025년 산업기술정책 관련 산업계 의견 조사 ‘R&D 투자’ 부문 결과


기업들은 ‘AIX(AI Transformation)’에 대해서는 AI를 통한 산업의 경쟁력 제고가 시급하다는 데에 대부분 인식을 같이하고 있었다. 많은 기업이 산업현장에서 다양한 활용이 이루어지도록 데이터 축적과 활용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인식하였으며, 이를 위해 기초 인프라에 대한 투자, 활용 교육, 시스템 구축 등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응답했다. 또한 산업현장에서 AIX를 촉진하기 위한 보조금 지급이나 규제 개선과 함께, 열악한 환경의 중소기업들에도 AI 활용 기회를 보장할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림2 산기협의 2025년 산업기술정책 관련 산업계 의견 조사 ‘AIX’ 부문 결과


‘주력산업 고도화’에 대해서는 많은 기업들이 디지털 전환을 통한 생산성 제고가 시급하다고 응답했다. 기업들이 대내외적 어려움을 겪으며 스스로 돌파구를 찾기는 힘든 상황이기에,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특히 탄소중립을 위한 시설투자와 인건비 지원은 물론, 자체적인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등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또한 인구 감소로 인한 타격이 심각하므로 청년과 외국인력의 유입을 위한 인센티브도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그림3 산기협의 2025년 산업기술정책 관련 산업계 의견 조사 ‘주력산업 고도화’ 부문 결과


기업들은 ‘산업기술 인재 양성’에 대해서는 실습 위주의 실무연계형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R&D 인력도 중요하지만, R&D 성과를 산업현장에서 구현할 수 있는 현장 맞춤형 인력 육성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외부 전문가 활용과 인건비 및 교육비 부담에 직면하고 있는 기업들을 위해, 취업 연계형 실무연수나 산업별 맞춤형 교육프로그램 등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림4 산기협의 2025년 산업기술정책 관련 산업계 의견 조사 ‘산업기술 인재 육성’ 부문 결과


마지막으로 ‘기술규제’에 대해서, 기업들은 규제가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데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의견을 모았다. 분명 규제는 기술의 남용과 부작용을 막기 위해 필요하다. 그러나 산업계가 기술개발을 위해 엄청난 비용과 시간, 인력을 투입하고 있으며 외부 정책 환경도 수시로 변화하고 있음을 고려하여, 정부가 신산업의 특성을 이해하고 산업 기술이 경제성장에 기여할 수 있도록 좋은 규제를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기업이 샌드박스 등 기술 친화적 제도를 고도화하고 적극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응답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 볼 수 있다.


그림5 산기협의 2025년 산업기술정책 관련 산업계 의견 조사 ‘기술규제’ 부문 결과


트럼프 정부의 새로운 국제질서 하에서, 많은 국가가 새로운 산업정책을 위해 경쟁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우리의 강점은 살리고 약점은 최소화하며, 외부 기회를 활용하고 위협요인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동태적이고 전략적인, 질 좋은 산업기술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새 정부는 산업기술 확보가 곧 국가의 생존을 좌우하는 기술 주권 시대가 도래했음을 인지하여, 산업기술 R&D 투자부터 기술규제 혁신에 이르는 다양한 산업기술정책을 펼쳐야 한다. 산업기술이 곧 국가의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