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NOVATION
기술혁신 성공사례

소리 없는 불량 원인 정전기 잡는 고진공 이온화 제전장치

인터뷰. 이영섭
㈜저스템 기술연구소 선행개발팀 팀장
울산대학교에서 재료공학을 전공하고, 2001년 재료공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1년 (주)케이이씨 종합연구소에서 수행한 화합물 반도체 연구개발을 시작으로, LG Display에서 약 19년간 제품 연구 및 개발 업무를 수행했다. 현재 (주)저스템에서 디스플레이 관련 고진공 이오나이저 개발을 비롯해 반도체 및 이차전지 관련 장비 기술 개발을 담당하고 있는 디스플레이·반도체 분야의 전문가다.


국내 기업은 OLED TV 시장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력으로, 글로벌 점유율을 80% 가까이 차지하고 있다. OLED는 TV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노트북, 자동차 등에도 사용되는 디스플레이다.
최종 제품이 나오기 직전까지 투입되는 모든 노하우는 기술이라고 부를 수 있다. 따라서 OLED 기술이란 어느 하나를 딱 떼어서 말할 수 없는, 수많은 숨은 기술들의 집합이라고 할 수 있다.
㈜저스템(이하 저스템)의 고진공 이온화 제전장치는 OLED 생산공정 챔버 내에서 정전기를 제거하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 및 상용화한 장치이다. 그동안 정전기는 OLED 생산공정에서 고질병처럼 불량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저스템의 제전장치 덕분에, OLED는 불량 감소에서 커다란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기술개발에 성공한 저스템의 ‘고진공 이온화 제전장치’는 2024년 49주 차 장영실상을 수상하였다. 넓게 보면 OLED 기술의 일부이고, 자세히 보면 하나의 독자적인 최초 기술인 고진공 이온화 제전장치 기술의 개발 혁신 과정을 살펴본다
글. 이장욱 씨앤아이컨설팅 컨설턴트




정전기 제거 기술의 개요
기술을 이해하기란 참 쉽지 않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기술은 제품의 이름 뒤에 가려져 제품 그 자체가 되거나, 제품의 성능과 동일시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해하기는 어려워도 기술은 그 고유의 가치로 존재 이유를 입증한다.
OLED TV는 대부분 가정의 거실을 차지하고 있고, 스마트폰은 어딜 가나 우리의 손에 들려있다. OLED는 우리 일상에 너무나 깊숙이 들어와 익숙하지만, 사실은 초정밀 기술이 필요한 제품이다. 미세한 먼지 하나도 불량을 발생시킬 수 있기에 OLED 공정은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한 고진공 상태에서 이루어진다. 여기에 여러 층의 유기물을 열로 증발시켜 유리나 플라스틱 패널에 얇게 입히는 것이 OLED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마치 샌드위치를 만들 때 빵에 소스를 얇게 펴 바르고 상추를 얹고 햄과 치즈를 차례로 올리듯이, OLED 공정은 패널에 유기물을 층층이 올려 쌓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이때, 한 층의 두께는 수 마이크로미터에 불과하다. 머리카락 두께가 약 100마이크로미터인 것과 비교하면, 어느 정도의 정밀성이 요구되는지 이해될 것이다. 이제 미세한 먼지 하나가 OLED 공정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줄지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전술한 OLED 공정의 패널은 크기가 침대만 하다. 이만한 패널이 이리저리 이동하면서 유기물을 증착한다. 그런데 패널이 들어 올려지는 박리 과정이나 마찰이 일어나는 순간에, 정전기가 발생하여 문제가 생긴다. 이때 발생한 정전기가 패널에 수천 볼트까지 누적되어 불량의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전기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얼마만큼 누적되었는지 측정하기도 어렵다. 따라서 정전기는 OLED뿐만 아니라 디스플레이 생산에서 불량을 일으키는 숨은 고질병으로 여겨졌다. 여태까지는 뚜렷한 해결 방법도 없었다. 저스템이 기술개발에 성공한 고진공 이온화 제전장치는 OLED 공정의 불청객인, 이러한 정전기를 없애주는 세계 최초의 신기술이다.


그림1 저스템의 고진공 이온화 제전장치


이전에도 정전기를 없애려는 노력은 있었지만, 여러 난관 탓에 실패했다. 가장 큰 문제는 OLED 증착 공정에서 10-5Pa 수준의 진공도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이는 반도체 공정이나 전자현미경, 우주 시뮬레이션 장치 등에 적용되는 수준의 진공도로, 10-5Pa 진공도는 우리가 숨 쉬는 1기압의 1조분의 1에 해당한다. 이에 더해 OLED 공정에서 정전기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증착에 사용되는 유기물에 손상을 주면 안 되고 △공정에 필요한 물질 이외에 다른 물질을 추가로 적용할 수 없으며 △공정의 진공도에 영향을 주지 말아야 했다.
이전에는 자외선을 활용해 정전기를 제거하려는 기술이 시도되었다. 자외선은 광선이기 때문에 진공도에 영향을 주지 않고, 적용에 가스와 같은 다른 물질이 필요하지 않기에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유기물을 증착시켜야 하는 OLED 공정의 특성이 결정적인 문제점이 되었다. 자외선은 유기물에 손상을 입히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몸도 유기물로, 자외선은 OLED에 얼룩을 남기는 등 또 다른 불량을 유발할 수 있었다. 자외선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의 정전기는 제거되지 않는다는 단점도 있어, 이 기술은 더 이상 활용되지 않는다. 이렇게 정전기로 인해 소자 불량이 발생한다면 그 패널은 폐기되는데, OLED의 주요 생산국인 한국과 중국에서만 이 비용이 연간 약 2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저스템이 개발에 성공한 제전장치는 고전압을 이용하여 연속적으로 형성한 이온으로 정전기를 제거하는 장치다. 이온이 고진공 상태의 챔버 내로 퍼져 나가 OLED 패널에 누적된 정전기를 제거한다. 마치 디퓨저의 향이 실내로 퍼져 나가듯이, 전기를 띤 이온 입자들이 챔버 내로 확산하면서 반대 전하를 띤 정전기와 결합하여 중성이 되고 정전기를 사라지게 만드는 원리다. 이온 입자가 고진공 상태인 챔버 안을 떠돌면서 정전기를 제거하는 방식이라 진공도에 영향을 주지 않을뿐더러, 공정 중에 사용한 잔존가스와 자기장의 힘으로 이온이 확산하는 방식이라 패널에도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조용한 소방수가 보이지 않는 소화액을 뿌려 숨어있는 불을 소멸시키는 장면이 연상된다.


그림2 저스템이 개발한 고진공 이온화 제전장치의 정전기 제거 원리


저스템의 고진공 이온화 제전장치는 기존의 OLED 생산 챔버에 쉽게 장착할 수 있어 큰 개조 없이 적용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이 제품은 정전기 제거의 탁월한 성능과 장착의 편리성을 인정받아 2023년 여름부터 고객사 라인에 한창 설치되고 있다. 입소문을 타고 다른 잠재 고객들의 문의도 이어지는 상황이라고 한다.





기술혁신 성공의 공식
OLED 패널을 생산하는 고진공 챔버 한 대는 작은 회의실만큼의 넓은 공간을 차지한다. 그리고 이 회의실의 커다란 유리창만 한 패널이 챔버 안에 들어가 공정이 진행되고, 패널은 또 다른 챔버로 옮겨진다. 저스템의 고진공 이온화 제전장치가 이 넓은 면적에 숨어있는 정전기를 제거하는 시간은 길게 잡아서 4초 정도다. 수천 볼트의 정전기가 순식간에 사그라들어 1~200볼트의 안전한 상태로 변모하는 것이다.
고진공 이온화 제전장치의 개발에 성공한 저스템에는 어떠한 기술혁신 성공의 비결이 있을까? 저스템 연구소의 사무실에 들어서면, 중앙에 공상과학 영화에서 본 것 같은 투명한 원통형 회의실들이 자리하고 있다. 반대편에는 고풍스러운 미술관의 야외무대 같은 빨간 벽돌 벽이 2층 높이로 서 있고, 자연채광이 되는 공간이 있다. 앉아서 이야기할 수도 있고 제법 많은 사람이 모일 수도 있는 작은 무대 같기도 하다. 인테리어 하나하나에서, 직원들의 의견을 동등하게 존중하고자 하는 저스템 임영진 대표이사의 가치관이 묻어났다. 장영실상 수상을 이끈 이영섭 부장을 비롯한 저스템의 임직원들은 이러한 가치의 상징으로 사무실 중앙의 투명 원형 회의실과 원형 탁자를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이렇듯 저스템의 여러 가지 성공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기술혁신이라는 성과를 낳았겠지만,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직원들의 의견이 존중되는 회의 문화였다.
저스템이 개발한 고진공 이온화 제전장치는 기존 기술인 자외선 방식과 완전히 다른 기술에 기반했고, 참고할 만한 유사 기술도 없었다. 세상에 없던 기술을 최초로 개발하여 성공으로 이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비유하자면 각자에게 흩어져 있는 지식과 경험을 모아서 하나의 에너지로 만들고, 해답을 찾아가는 길을 끊임없이 개척하여 모아온 에너지가 흐를 수 있도록 해주는 것과 같다. 저스템의 기술혁신은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도 없는 길을 개척하여, 결국에는 지도까지 만들어 낸 것과 같은 성공이었다.



기술개발 기간인 3년 동안, 7명의 연구원 서로가 머리를 맞대고 회의한 횟수만 1천여 회에 다다른다. 장영실상 수상자이자 기술개발을 이끈 선행개발팀 이영섭 부장의 설명에 따르면, 회의보다는 토론이라는 단어가 더 적합한 모습이었다.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걷다가도 말하고 서서도 편하게 이야기 나누었으며, 회의실에 모여 본격적으로 토론하기도 했다. 저스템에서 이러한 회의가 있을 때는 직급이나 부서의 장벽은 존재하지 않는 진공상태가 만들어졌다. 서로 간의 에너지를 나누고 시너지를 일으켜 더 큰 하나로 모으는 데에, 직급이나 부서는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토론 속에서 정제된 아이디어를 실험한 횟수는 총 100여 회다. 이는 회의 횟수의 10분의 1로, 상대적으로 실험 횟수가 적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실험실에서 뛰어난 기술이 개발될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은 머릿속에서 완성되고 이후 실험실에서는 증명될 뿐이다. 여러 회사의 기술혁신 성공 사례를 살펴보더라도, 저스템과 같이 임직원 상하좌우 간의 원활한 소통은 단연 공통으로 나타나는 성공 비결이다.
저스템의 또 다른 성공 요인은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는 것에 있었다. 여기에서는 저스템의 일하는 방식이 눈에 띄었는데, 저스템은 현장에서 엔지니어와 책임자가 2인 1조가 되어 일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었다. 고객의 현장을 직접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엔지니어뿐만 아니라 책임자가 꼭 함께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책임자가 전달에 전달을 통해 보고를 받으면 그만큼 현장이 멀어지기에, 저스템에서는 책임자가 함께 현장으로 움직여 현장에 공감한다. 이렇게 한 사람이라도 더 현장을 공감해야만 에너지를 모으기 쉬워진다. 전해 들은 말만으로 좋은 아이디어를 내는 것은 영화 속에서만 가능한 이야기이다.
현장을 공감한다는 말은 단지 현장 설비에 대한 이해도를 높인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현장을 이해하여 고객과의 소통력을 높인다는 의미도 포함한다. 그래서 저스템은 누구보다 먼저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고객의 피드백을 받아, 다시 빠르게 수정해 내는 실행력이 뛰어나다. 저스템의 일하는 방식을 알게 된 고객은 이제 피드백을 주기 위해 직접 저스템을 방문하고, 신기술을 빨리 경험하고자 프로토타입의 적용을 자처할 정도다. 이렇게 저스템은 고객과 높은 신뢰를 쌓았다. 한 마디로 저스템은 애자일(Agile) 방식으로 일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저스템이 애자일 기법을 도입하여 빠른 실행과 유연한 대응을 하게 된 것은 아니다. 저스템이 고객의 니즈를 적극 수용하여 빠르게 다시 수정하는 방식이 아주 효율적이기에, 결과적으로 성공기법인 애자일 전략을 닮아 있을 뿐이다.


그림3 2022년 중소기업 기술통계 조사 ‘기술개발 성공 요인’


2022년 중소기업 기술통계 조사에서 4,000개 기업을 대상으로 기술개발 성공 요인을 조사한 결과, 1위와 2위는 각각 ‘관련 기술정보 확보’와 ‘충분한 사전탐색 및 기획 철저’로 나타났다. 저스템은 남이 간 길을 따라가기보다는, 해답이 보이지 않는 길을 개척하여 나가는 데에 주저하지 않았다. 고객에게 필요한 기술이 무엇인지 정보를 알기 위해 책임자도 함께 고객 현장을 뛰었으며, 빠르게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누구보다 먼저 고객의 피드백을 받고 사전에 시장을 탐색하고자 했다. 그리고 임직원 상하좌우 간 끊임없는 토론을 통해 기획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노력을 기울여, 결국 고진공 이온화 제전장치 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기술혁신의 인프라
저스템은 반도체 습도제어 분야 전문 장비 회사로, 2016년에 회사를 창립한 이후 2017년에 바로 기업부설연구소를 설립하였다. 2023년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최우수 기업연구소로 선정되었고, 2024년에는 대한민국 강소기업대상 기업문화상을 수상하였다. 주요 고객으로는 반도체·디스플레이·이차전지 사업을 하는 국내외 유수의 글로벌 기업들을 두고 있다. 짧다면 짧을 수 있는 10년 동안에 저스템이 이러한 업적을 쌓아온 것은 어쩌면 이번 기술혁신 성공보다 앞서 주목해야 할 포인트일 수 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라는 속담처럼, 저스템은 지난 10년간 훌륭한 토양을 다져왔기에 오늘의 기술혁신 성공은 그 토양으로부터 자라난 자연스러운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저스템의 임영진 대표이사는 엔지니어 출신으로, 신기술 도전과 독자적 원천기술 개발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동시에 연구개발에 필요한 설비 투자에도 인색함이 없다. 이에 연구원들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적극적으로 특허를 출원하여 화답한다. 저스템이 고진공 이온화 제전장치 개발과 관련하여 출원한 특허만도 32건이다. 30명이 근무하는 저스템의 연구소에서는 매년 100건 이상의 특허가 쏟아진다. 저스템이 채택하고 있는 직무발명제도는 연구소를 보유한 기업 대부분이 운영하는 제도로, 이 정도의 실적을 단지 직무발명제도와 같은 외적인 인프라로 설명하기 어렵다.
저스템의 회의 문화 하나만 보더라도 대표의 경영 철학이 공유되는 회사임을 느낄 수 있다. 존중, 배려, 소통을 중시하고‘직원과 그 가족이 행복한 회사’라는 대표의 경영 철학이 회사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임원들은 앉아서 보고나 받겠다는 마인드가 없고, 직원들은 자기 업무뿐 아니라 동료의 일에도 관심을 기울이며, 모두가 필요하다면 자신의 경험을 아낌없이 나누겠다는 마음가짐이다.
물론 저스템이 짧은 업력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기업들에 인정받은 것은 기술력이 뒷받침해 주었기 때문이다. 직원들의 넘치는 아이디어를 담아내기 위해서는 많은 연구비가 필요한데, 정부 R&D 과제 수주와 철저한 관리를 통해 회사 자체 투자의 부담을 일부 줄여나가는 노력도 잊지 않았다. 이러한 다양한 노력들이 모여 저스템의 기업문화가 만들어졌다. 이렇게 기술혁신을 위해서는 유형의 인프라도 중요하지만, 무형의 인프라인 기업문화도 함께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저스템의 고진공 이온화 제전장치는 2023년 개발이 완료되었고 2024년 49주 차에 장영실상을 수상하였다. 기술개발이 완료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저스템은 벌써 고객의 피드백을 받아 더 진보된 라인업을 준비 중이다. 기술적으로는 이미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한다. 저스템의 고진공 이온화 제전장치는 OLED 공정뿐만 아니라 정전기 제거가 필요한 이웃 산업 분야에서도 러브콜을 받고 있다. 고객사의 신뢰를 얻은 기업인 저스템이 앞으로 얼마나 가파른 성공 곡선을 그려나갈지, 그 미래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