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R&D 나침반

뜨거워지는 지구, 더위와의 싸움에 팔 걷어 붙이는 과학

글. 이새봄
매일경제신문 기자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대학 환경생태공학부를 졸업하고, 매일경제신문에 입사했다. 이후 여러 부서를 거치며 제약 바이오, 전자, 유통산업 등 다양한 산업과 국제 증권 사회 등을 조명했다. 현재 매일경제 벤처중소기업부 소속으로, 벤처기업과 중소기업을 취재하고 있다.

그림1 뜨거운 지구 <픽사베이>


뜨거워지는 지구와 다가오는 더위
지구는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특히 지난해 대한민국의 여름은 가히 재난 수준이었다. 올해 역시 연초부터 여름이 빨라질 것이라는 예측이 잇따랐다. '기후 족집게'라 불리는 국내의 한 기상학자는 사실상 4월부터 여름이 시작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았고, 기상청은 올해 처음 발간한 '폭염백서'를 통해 5월부터 더위가 기승을 부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미 지난해에는 100년 만에 가장 긴 열대야(20.1일)를 갱신했다. 지구 온난화가 계속되는 한, 더위와의 싸움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태양은 막대한 양의 에너지를 우주로 방출한다. 이는 빛의 형태로 지구에 도달하여 지표에 흡수된다. 지표면이 햇빛을 받아 데워지면 대기 중으로 복사열을 방출한다. 이 복사열 때문에 지표면 인근이 따뜻해진다.
뜨거워지는 것은 지표면만이 아니다. 한여름에 운동장 한가운데 세워놓은 자동차의 실내는 70~90도까지 올라간다.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실내에 남는 복사열 때문이다. 온도를 낮추기 위해서는 에어컨을 켜는 등 또 다른 에너지가 필요하다. 에어컨은 실내를 차갑게 하는 대신, 실외기 등에서 뿜어내는 열기로 또다시 지구 표면을 데운다. 이러한 악순환을 끊을 수는 없을까.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고 뜨거워진 지구를 식힐 수는 없을까. 국내외 과학자들은 '더위를 피하는 연구'를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우주에서 쏟아져 들어온 햇빛, 우주로 다시 보내
이헌 고려대학교 신소재공학부 교수는 지구에서 발생한 열을 우주로 쏘아 올려 건물을 식히는 페인트를 개발했다. 태양광은 최대한 반사하면서, 실내에서 발생하는 열에너지는 저 멀리 우주까지 배출하는 방식이다.
우리가 물체를 눈으로 볼 수 있는 이유는 물체가 빛을 반사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사과가 빨갛게 보이는 이유는 사과의 표면이 빨간색을 반사하고 나머지 색을 흡수하기 때문이다. 물체가 흰색이라는 것은 이 물체가 모든 파장의 빛을 다 반사한다는 뜻이다. 흰색 페인트는 태양 복사에너지를 반사해 열 흡수를 막는다.
여기에 더해 물체가 내뿜는 복사에너지(적외선), 즉 열을 배출하면 주변 온도보다 물체의 온도를 더 떨어뜨릴 수 있다. 다시 말해 냉각이 가능하다는 소리다. 온도를 가진 모든 물체는 자기의 온도에 맞는 열을 내뿜고 있다. 하지만 이 열을 외부로 내뿜어도 주변에서 이 열을 흡수하여 다시 방출하기 때문에 온도가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한여름에 자동차의 실내가 계속해서 뜨거워지는 이유다. 그러나 열을 흡수한 페인트가 이 열을 주변이 아닌 우주까지 배출해버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모든 물체는 절대온도(-273도)가 아닌 이상 적외선(에너지)을 내뿜는다. 적외선을 내뿜었을 때 주변에서 이 에너지를 흡수하여 다시 방출한다면, 열교환이 이루어져 온도가 떨어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 열이 우주로 빠져나간다면, 냉각이 가능하다. 이를 '복사냉각'이라 부른다. 즉 복사냉각이란 ‘지표나 물체에서 빠져나간 복사에너지의 총량이 흡수된 복사에너지보다 클 때, 총에너지의 손실로 물체나 지표면이 차가워지는 현상’을 말한다.
빛은 파장에 따라 자외선과 가시광선, 적외선으로 나뉜다. 가시광선은 빨간색부터 보라색까지의 색을 지닌 파장으로, 사람의 눈으로 쉽게 구별할 수 있다. 가시광선의 바깥에 위치한 자외선은 파장이 짧고 에너지가 크다. 적외선은 파장이 가장 긴 빛으로, 약 800nm(나노미터: 미터의 10억분의 1)에서 1㎚의 파장을 가진다.
이 중에서도 8~13㎛(마이크로미터: 미터의 100만분의 1) 사이의 적외선은 대기에 흡수되지 않고 우주로 빠져나간다. 대기 중의 수증기와 이산화탄소, 오존이 장파장의 적외선을 흡수하지만, 8~13㎛ 파장의 적외선은 흡수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기에 흡수되지 않는 적외선 파장의 영역을 하늘창(sky window; 대기투과창) 영역대라고 부른다.
고려대학교 이헌 교수팀은 페인트에 적정 크기의 실리카와 알루미나 등의 입자 혼합물을 넣어 햇빛을 산란시키고, 내부 열을 8~13㎛ 적외선으로 방출했다. 이 페인트는 '하늘창 영역대'의 적외선을 93.5%까지 배출할 수 있다. 기존의 흰색 페인트는 햇빛은 반사하지만 이 파장대의 열을 밖으로 방출하지는 못했다. 연구진은 실험실에서 개발한 페인트의 성능을 확인하기 위해 모형 집에 시중 페인트와 새로 개발한 페인트를 칠한 뒤, 이들을 햇빛 아래에 두고 표면온도를 측정했다. 검은색 페인트로 지붕을 칠한 집의 온도는 47.2도까지 올라갔다. 시중의 하얀색 페인트로 칠한 모형 집의 온도는 30도였다. 연구진이 개발한 복사냉각 페인트를 칠한 집은 25도에 불과했다.


그림2 일반 백색 페인트와 고려대 연구팀의 복사냉각 페인트가 도포된 우산 및 건물모형(목재 개집)의 사진(좌)과 적외선 열화상 사진(우) <고려대학교 이헌 교수>


비슷한 연구는 해외에서도 활발히 이어지고 있다. 중국 화중과기대학교(HUST) 광밍타오 교수 연구진은 복사냉각이 가능한 '스마트 섬유'를 개발했다. 일반 섬유에 햇빛을 산란·반사하는 산화티타늄과 테플론을 넣고, 몸의 열을 흡수해 밖으로 방출해 주는 폴리락틱산도 첨가했다. 이를 통해 일반 섬유로 만든 옷보다 체온을 5도 이상 낮추었다. 이 결과는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게재되었다.


그림3 복사냉각 기술 실용화를 위한 핵심 기술과 제조 방식, 활용 분야 <포항공과대학교>




‘상변화 원리’ 활용해 온도 조절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강상우 박사 연구팀은 상변화 물질을 활용하여 건물 외부에서 오는 열을 차단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물체가 고체에서 액체로, 혹은 액체에서 기체로 변하는 것을 '상변화'라고 부른다. 쉽게 생각하면 얼음이 물로, 물이 수증기로 변하는 게 상변화다. 하지만 물은 상온에서 항상 액체로 존재한다. 강상우 박사 연구팀은 물은 고체에서 액체로 변하는 온도(융해점)가 0도이지만, 양초의 주성분인 파라핀과 같이 상온에서도 쉽게 고체에서 액체로 상이 변하는 물질을 활용해 외부의 열을 차단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강상우 박사는 파라핀 오일의 일종인 엔옥타데케인(CH3(CH2)16CH3)을 활용했다. 이 물질의 융해점, 즉 녹는점은 상온과 비슷한 28도다.
상변화 물질은 상이 완전히 변하는 동안에는 온도가 바뀌지 않는다. 얼음이 녹는 과정을 생각해 보면 쉽다. 얼음이 다 녹기 전까지 물은 0도 이상으로 올라가지 않는다. 모든 얼음이 녹고 난 이후에야 온도가 0도 이상으로 상승하기 시작해 100도까지 올라간다. 같은 원리로, 엔옥타데케인도 외부 온도가 아무리 높더라도 이 물질이 다 녹기 전까지는 28도의 온도를 유지한다. 이러한 성질의 상변화 물질을 건물 외벽에 적용하면, 외부의 뜨거운 열이 내부로 침투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건물 밖에 적용한 상변화 물질이 밖에서부터 안으로 균일하게 녹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바깥 부분부터 액체로 변한 상변화 물질은 뜨거워지면서 위쪽으로 이동하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아래쪽으로 내려간다. 즉, 위부터 먼저 녹아버려 이미 액체로 변한 상변화 물질이 외부의 열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열 차단 효과를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연구진은 상변화 물질 하부에 기포를 주입해 문제를 해결했다. 상변화가 일어나는 동안 하부에 공기를 주입해 녹아버린 물질을 골고루 순환시킨 것이다. 이로써 상변화 물질이 바깥쪽부터 균일하게 녹게 되어 모든 물질이 다 녹을 동안 열을 차단하는 데 성공했다. 실제 연구진이 7~8월 한낮 여름과 유사한 환경에서 실험한 결과, 실내 온도를 2.5도 이상 낮출 수 있었다.
올해 2월 전북대학교 김건우 교수 연구팀도 주변 온도에 따라 열 방사율을 스스로 조절하는 고분자 복합재를 개발했다. 열 방사율이란 물체의 표면에서 방출이 가능한 열복사 에너지의 정도를 나타내는 지수다. 연구팀은 고온에서 열 방사율을 높이고 저온에서는 낮추는 특성을 구현하기 위해 상전이 소재를 활용하였고, 스스로 열 방사율을 조절하는 똑똑한 고분자 복합재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이 개발한 고분자 복합재의 열 방사율은 섭씨 70도에서 15%의 변화율을 보였다. 개발된 고분자 복합재로 덮여 있는 방열체는 외부 온도에 상관없이 내부 온도를 섭씨 70도로 유지하는 것이 확인되었다.





지구에 양산을? 지구공학 연구도 활발
뜨거운 햇볕을 피하고자 한여름 횡단보도 앞에는 그늘막이 설치된다. 여름 외출 필수품으로 모자와 양산도 있다. 내리쬐는 빛이 몸에 닿는 것을 막아주는 용도다. 그렇다면 지구에도 양산이나 모자를 씌워주면 어떨까, 뜨거운 태양 빛을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실제 이를 연구하는 분야가 있다. 이른바 '지구공학'이다. 지구공학이란 공학 기술을 동원하여 지구 환경을 인공적으로 조절하는 학문이다.
지구에 무더위를 피하는 그늘막을 설치하자는 아이디어는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나왔다. 대형 기구에 탄산칼슘을 싣고 성층권까지 올라가 탄산칼슘 미세입자를 성층권에 분사하여 태양광을 차단하는, 이른바 '스코펙스(SCoPEx; Stratospheric Controlled Perturbation Experiment)' 프로젝트다. 2014년 논문을 통해 아이디어가 처음 공개되었다. 하버드대학교 연구진은 살포한 탄산칼슘으로 인한 환경문제는 없다고 판단했다. 인간 생활권에 영향을 주는 비구름은 5~10㎞ 상공에 있기 때문에, 고도 20㎞에 존재하는 탄산칼슘층의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림4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한 지구공학 연구 <네이처, courtey B.Matthews>


스코펙스 프로젝트는 1991년 피나투보 (Pinatubo) 화산 폭발에서 착안한 아이디어다. 폭발 당시 분출된 2,000만t에 달하는 이산화황은 성층권까지 올라가 하늘을 가렸으며, 이에 따라 일사량이 10%가량 줄고 북반구 평균 기온이 평균 0.5도 떨어졌다. 이듬해에는 강우량이 10~20% 감소하며 대 가뭄이 발생했고, 전 세계적으로 1억 2,000만 명이 가뭄 피해를 본 것으로 추정된다. 2018년 미국 UC버클리대학교 연구진은 과거 화산 폭발로 발생한 이산화황 입자가 하늘로 올라가 태양 빛을 반사한 사례를 분석한 토대로, 지구 기온을 낮추려는 인위적인 시도가 작물 생산량 감소를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지구 냉각 효과에 대한 기대와 기상 패턴을 교란하여 오히려 지구 환경을 해칠 것이라는 우려를 동시에 받고 있는 스코펙스 프로젝트는 사회적 논의가 마무리될 때까지 잠정 중단 사태다.
이외에도 선박이 하늘에 바닷물을 뿌려 '밝은 구름'을 만들고, 이 구름을 통해 햇빛 반사율을 높이는 연구도 이루어지고 있다. 바닷물과 같은 염수를 하늘에 뿌리면 물이 증발하면서 구름이 형성되는데, 대기에 있는 소금 입자들이 구름에 수분을 더 많이 끌어모아 준다. 수분이 증가할수록 구름은 더 밝아지고, 밝은 구름은 햇빛을 더 많이 반사한다. 높은 고도(고고도)에 있는 구름을 얇게 만드는, 일명 '구름 솎아내기'도 지구공학 중 하나다. 구름을 얇게 만들면 지구 복사열이 구름 등에 흡수되지 않고 더 멀리 빠져나가게 되는 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