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SSUE
04

인재 수급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산업기술 인력 확보 전략

글. 홍성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서울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를 취득하였고,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과 한국산업기술진흥원 팀장을 거쳐 현재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지난 20여 년간 과학기술 인력정책을 주로 연구해 왔으며, 주요 저서 및 논문으로는 ≪선착의 효≫(공저), ≪K산업혁신 2.0≫(공저), ≪대학리셋≫(공저), “생성형 AI 시대의 인재상과 확보 전략”, “과학기술인력정책의 발전과정과 한계, 미래 방향에 대한 제언”, “과학기술 출연(연) 연구자의 경력개발 현황과 개선방안”외 다수가 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전 세계를 상대로 강력한 상호 관세 정책을 발표하자, 중국이 이에 심각하게 맞대응하고 있다. 미·중을 중심으로 한 기술 패권 경쟁이 한층 더 심각한 경제 전쟁으로 이어지는 상황이다. 미래 산업의 발전을 이끌 기술의 확보가 점점 더 중요해지는 과정에서, 살아남기 위한 경쟁이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는 것이다. 이러한 경제 또는 기술 패권 다툼의 한가운데에 있는 우리나라는, 산업 및 경제 발전의 핵심 동력이자 유일한 자원이었던 ‘기술 인력’의 수급 애로에 직면하고 있다.
인구 고령화로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되고 있지만, 이를 대체할 젊은 기술인재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산업 현장에서는 필요한 인력을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산업기술 인력 부족의 규모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실제로 산업 통상자원부 산하기관인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의 조사에 따르면, 주요 산업 분야의 기술 인력 부족 인원은 2020년 3.6만 명에서 2023년에는 3.9만 명으로 계속 늘어나고 있다. ‘산업기술 인력’이란 기업에서 연구개발(R&D) 또는 기술직으로 일하는 핵심 인재를 뜻하며, 이러한 핵심 기술 인력의 공백은 곧바로 산업 경쟁력의 저하로 이어질 수 있어 우려를 낳는다.
인재 공급 측면에서는, 산업기술 인력의 공급 원천이 되는 이공계 전문 인력 풀의 축소가 가시화되고 있다. 인구 감소 추세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지속적으로 증가하던 대학원 단계의 과학기술 인재도 양적 감소가 예견되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의 한 보고서에서 추정한 바에 따르면, 아무리 긍정적인 가정을 하더라도 2028년 정도부터는 이공계 석·박사 과정입학생 수가 감소세로 전환된다. 2048년에는 이공계 석·박사졸업생 수가 현재의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는 전망이다 . 이는 곧 산·학·연에서 차세대 고급 기술 인력을 구하기가 그만큼 어려워질 것이라는 의미다.


그림1 이공계 석·박사 학생 수 추정 <이혜선 외(2022.10.19.)>


한편, 어렵게 양성한 국내 핵심 인재들의 해외 유출 문제도 심각하다.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미국, 중국 등은 우수 인력을 끌어가기 위해 파격적인 대우를 제시하고 있다. 우리 산업계에서도 비슷하게,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한창이던 시기에 중국 기업이 높은 연봉을 제시하자 한국 반도체 기술자들이 다수 이직해 큰 논란이 되었다 . 이러한 해외의 러브콜로 인한 인력 유출은 국내 산업기술 저변을 약화하고 국가 기술력의 누수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문제는 현재의 산업기술 인력 수급 애로를 공급 중심 정책으로는 해소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2000년대 초반에는 이공계를 기피하는 문제가 크게 논란이 되어, 이공계 지원 특별법까지 마련하여 공급 중심 정책으로 대응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가 직면하고 있는 인구 감소 충격은 2000년대 초반에 직면한 이공계 기피 현상과는 큰 차이가 있다. 이공계 학생의 상대적인 숫자 감소가 아닌, 전체 대학(원) 학생 수의 절대 규모 감소로 인하여 발생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아무리 이공계 대학(원) 진학의 조건을 좋게 한다 해도 증가할 수 있는 인원수의 한계는 뚜렷하다.
이에 더해, 적은 인원으로 기존 이상의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생산성을 높이고 질적 고도화를 이루어야 한다. 물론 수월성을 강조하는 과학기술의 특성상, 더 우수한 인재를 유인하고 더 우수한 인재가 성장하는 토대를 만드는 것은 여전한 과제다. 하지만 이제는 우수 인재의 후보군 자체가 줄어들 수밖에 없으니, 그중의 일부만 잘 양성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더 우수한 인재가 성장할 수 있는 기반, 다시 말해 인재 성장을 더 효과적으로 지원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게 중요해진 것이다. 과학기술인재 정책도 일단 대학(원)에 더 많은 인원을 유인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들어온 인재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성장하게 지원하느냐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여기에 더해, 임금 수준이나 좋은 일자리로의 취업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미래 세대의 성향과 입장을 고려해 보자. 그럼 우수한 산업기술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인재를 이공계 대학(원)으로 끌어들여 진학시키는 것보다, 이들에게 더 좋은 미래를 제시하거나 계속 성장해 나갈 가능성을 높여주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 좋은 산업기술 일자리와 연구 생태계를 조성하여, 우수 인재가 스스로 찾아오도록 만드는 전략이 절실한 것이다.
또한 인구 감소로 인해 유입할 수 있는 인재의 규모 자체가 줄어들기 때문에, 질적으로 더 우수한 인재를 양성할 수 있도록 이공계 대학(원) 교육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갖추어야 한다. 단지 교수 개인의 책임하에 있는 연구실에서 모든 연구와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하자는 게 아니다. 체계적으로 연구자를 성장시킬 수 있도록 대학이 투자하고, 이들이 갖춘 지식이 현장과 연결될 수 있도록 기업도 함께하는, 다시 말해 산·학·연·관이 모두 산업기술 인재의 육성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인재 중심의 과학기술 생태계’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학교에서 쌓은 지식이 체계적인 경력개발과 연계되어 기업 및 연구 현장에서 잘 적용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체계, 즉 개개인이 산업기술 인재로서 더 잘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렇게 진학 단계를 넘어 경력개발 단계까지 이어지는, ‘전 생애주기 진로 지원 체계’의 구축이 산업기술 인력정책의 주요한 역할로 부상하고 있다.
이는 여태까지의 성공 방식과는 전혀 다르다. 우리나라는 세계 역사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급속한 고도성장을 이룩하였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인력은 과학기술과 산업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도구 혹은 인프라의 하나에 불과했다. 특정한 기술의 개발이나 산업 발전을 위해, 양적으로 늘어날 수 있도록 공급 중심 정책만 펼쳐도 충분한 생산요소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데 이제는 산업기술 인력의 공급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 게다가 이들이 활약해야 하는 무대, 즉 일자리에서 요구하는 역량도 높아지고 있다. 단순한 기술 지식을 갖추고 맡은 일만 해내는 게 아니라, OECD(2018)에서 제시하고 있는 것처럼 빠른 변화에 대응하는 역량, 새로운 도구를 활용하고 다른 사람들과 협업하는 역량 등이 요구된다.


그림2 OECD 학습 프레임워크 2030


이러한 인재는 대학만의 노력으로는 키워낼 수 없다. 또한 이제는 대학(원)에 진학한 인재 몇몇이 스스로 잘 성장해 기업에 충분하게 공급되는 시대도 아니다. 그렇기에 기존의 성공 방식을 넘어, 인재에게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고 성장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산·학·연·관 모든 주체의 시각을 바꾸고 행태를 바꾸는 게, 어렵지만 절실한 시기가 온 것이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의 ‘2025년 산업기술정책 관련 산업계 의견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기술 인력(핵심 연구 인력)에 대한 경력개발이나 투자 필요성 등에 대해 산업 현장의 인식이 개선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물론 기업에 대한 인건비 지원 확대나 대학을 통한 인재 육성 등으로, 정부가 인재를 양성해 주길 요구하는 기업이 가장 많다는 점은 여전한 한계다. 그렇지만 현재의 수급 애로가 과거와는 양상이 다르고 필요한 인재의 유형도 달라, 기업의 투자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이러한 현장의 인식 변화가 좀 더 강화될 수 있도록, 정부에서도 기업의 인재나 경력개발에 대한 투자를 촉진하는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예를 들어, 기업이 스스로 인재에 대한투자를 늘린다면 연구개발이나 조세 지원의 폭을 확대해 줄 수 있다. 재직자 대상의 리스킬링(re-skilling) 및 업스킬링(upskilling) 기회도 체계적으로 늘려나가는 등 기업의 행태 변화를 위한 정책 기획과 추진이 절실하다.
특히 국내 산업기술 인력을 지키고 해외 우수 인재를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근무환경과 처우를 글로벌 수준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무엇보다 열악한 워크-라이프 밸런스와 상대적으로 낮은 보상 등으로 인하여 해외로 빠져나가는 국내 인재들을 막기 위해, 일하는 환경을 혁신해야 한다. 임금 수준을 해외만큼 높일 수는 없다면, 연구자답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거나 개인의 성장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여 일자리의 매력도를 높일 수 있도록 정부와 기업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
결국, 국내 인재가 떠나지 않고 해외 인재가 몰려오는 환경을 만들어야만 비로소 인재 선순환이 이루어진다. 산업기술 인력 정책의 핵심은 이러한 지속가능한 산업기술 인재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인재 전쟁 시대를 맞아 보스턴 컨설팅 그룹은 AI인재 확보를 위해 필요한 종합 전략을 제시하였다. 어떤 인재가 필요한지를 명확히 파악(anticipate)하고, 최고의 인재를 유인(attract)하는 한편, 이들을 성장(develop)시키며 최고의 인재로서 대우(engage)하여, 부가가치 전반에 걸쳐 인재의 영향력이 발휘되도록 한다는 전략이다. 이와 같은 인재 중심의 종합 전략이 국가 차원에서도 필요한 시대이다.


그림3 보스턴 컨설팅 그룹의 AI 인재 확보를 위한 종합 전략 <“How to Attract, Develop, and Retain AI Tal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