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SSUE
03

주력산업 고도화를 위한 전략적 전환: AI·디지털 전환과 융합 기반 혁신

글. 오동훈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겸임교수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과학기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SRI International, OECD 등에서 일하며 주로 기술혁신 정책, R&D 투자전략, 연구개발평가를 담당했다. 산업통상자원 R&D 전략기획단 기술정책 및 성과확산 MD로 봉직했고, 현재는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겸임교수로 있다. 주요 관심 분야는 혁신전략, R&D 제도·규제 정책, 개방형 혁신, 기술사업화, 기술 인텔리전스등이다.
대한민국 경제는 반도체,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등 제조업 기반의 주력산업을 통해 수출 중심의 고도성장을 이루어왔다. 그러나 최근에 산업의 성장 동력이 정체되고 있으며, 기술혁신과 글로벌 시장 재편 속에서 산업 구조 자체의 전환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산업통상자원부(2024)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제조업의 연평균 수출 증가율은 2.3%에 머물고 있다.
12대 국가전략기술(감염병, 탄소중립, 필수전략기술, 소재·부품·장비, 반도체·디스플레이, 이차전지, 첨단 이동수단, 차세대 원자력, 첨단 바이오, 우주항공·해양, 수소, 사이버보안, 인공지능, 차세대 통신, 첨단로봇·제조, 양자)은 기존 주력산업과 신산업이 혼재되어 있다. R&D 정책과 산업 지원의 전략성과 차별성도 그리 크지 않다. 산업 생태계는 빠르게 AI 기반의 지능화로 전환되고 있으나, 한국 산업은 AI 전환은 물론 산업융합, 스킬업, 규제 개혁에서 뒤처지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필자는 주력산업의 경쟁력 약화 원인을 진단하고 AI 전환·산업 융합·인력 전환을 중심으로 고도화 전략을 제시하고자 한다. 특히, 주력산업과 신산업에 대한 정책적 접근 방식의 이원화와 인적자원의 유연화 및 국제적 이동성에 주목하여 정책적 시사점을 도출한다.




주력산업의 경쟁력 약화 실태
1) 지체된 AI·디지털 전환
우리나라 중소 제조업체들의 AI 및 디지털화 수준은 OECD 평균에 비해 낮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이하 산기협)의 설문(2025)에 따르면, ‘AI 관련 전문 인력 부족’과 ‘도입 비용 부담’이 AI·디지털 전환의 주요 장애로 지적되었다. 실제로 AI 기반 공정 최적화, 스마트 품질관리 등 핵심 기술은 대기업 중심으로만 현장 적용이 이루어지고 있다. 전체 산업으로의 확산은 더딘 상황이다.

2) 경직된 산업 생태계와 기술격차
최근 한국은행(2023)은 제조업의 총요소생산성 증가율이 0.6%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이는 독일(1.6%) 및 미국(1.8%) 대비 절반 이하 수준이다. 주된 요인으로는 높은 에너지비용, 환경규제 부담, 인건비 상승과 인력 부족, 기술혁신 성과 미흡 등이 꼽혔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기술 접근성 격차도 산업 생태계의 유연성을 저해하고 있다. 산기협 설문 응답자의 64.3%는 “중소기업의 기술 접근성이 낮다.”라고 평가했다. 상생형 R&D, 오픈이노베이션 플랫폼의 부족이 기술 불균형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AI 전환과 융합, 인적자원 혁신을 통한 산업 고도화
1) AI·디지털 전환을 통한 구조 혁신
주력산업 고도화의 핵심은 AI Transformation(AX)과 Digital Transformation(DX)의 전면적 추진이다. 특히 제조업은 AI 기반의 설계 자동화, 로봇 공정 최적화, 고객 맞춤형 생산 체계 구축 등을 통해 생산시스템 자체를 지능화할 필요가 있다. 디지털 인프라의 확충과 클라우드 기반의 제조 플랫폼 도입도 병행하여야 한다. 우리나라는 노동인구가 점차 감소할 수밖에 없는 인구구조를 가졌기에, AI·디지털 전환을 통한 구조 혁신은 절체절명의 과제라 할 수 있다.

2) 이종 산업과의 융합으로 신성장 동력 창출
AI 기술은 단일한 산업의 혁신에 그치지 않고 바이오, 에너지, 모빌리티, 금융 등 이종 산업과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산업 영역을 창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반도체 산업은 AI 반도체를 넘어 의료용 바이오센서로 확장되고 있다. 자동차 산업은 자율주행·전동화와 ICT(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Technology) 융합을 통해 새로운 가치사슬을 형성하고 있다

3) 기존 인력의 전환교육과 리스킬링 체계 강화
기술 발전이 산업 현장의 변화보다 빠르게 전개되는 지금, 직무 기반 재교육(Re-skilling)과 고숙련화(Up-skilling) 프로그램은 국가경쟁력 유지의 핵심 수단이다. 이제는 인재 육성의 컨셉자체가 교육(education)에서 학습(learning)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를 위해 산학연 연계에 기반한 맞춤형 교육 플랫폼, 정부-지자체-대학 간 협력 훈련센터, 중소기업 대상 인력 지원 바우처제도 등이 강화되어야 한다. AI 전환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현장 맞춤형 실습 중심 교육과 함께, 경력 전환자에 대한 제도적 보호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4) 유연한 노동체계와 글로벌 인재 유치 전략
오늘날 우수 인재는 ‘인적 자본(Human Capital)’으로서, 자산성과 유동성을 동시에 지닌 전략적 자원이다. 이들은 언제든 세계 어디로든지 이동할 수 있기 때문에, 국내 우수 인재의 유출을 방지하면서 동시에 해외 우수 인재의 유입을 도모하기 위한 다각적인 인센티브 정책이 절실하다. 특히 개도국이나 중진국의 고급 기술 인력, 연구자, 창업 인재 등이 장기간 한국에 머무르며 산업 생태계 내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따라서 비자 제도 간소화, 장기체류 연구비 지원, 가족 동반 정착 프로그램, 국제 교육·의료 인프라 연계 등의 정책이 필요하다.
또한 현재의 획일적인 주 52시간 근무제는 창의성과 자율성이 요구되는 포스트-포디즘(Post-Fordism) 사회의 산업환경과 괴리가 있다. 유연한 근로시간제, 산업별·직종별 특성과 노동자의 선택권을 고려한 탄력근무제, 재택·원격근무 등을 도입·확대하는 제도적 유연화가 시급하다. 제도의 틀 자체를 주 52시간이 아닌 월 222시간과 같이, 더 유연한 시간 관리 시스템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산업정책의 방향: 이원적 접근과 정부 역할 강화
1) 주력산업은 제도 개혁과 규제 전환으로 민간 혁신 유도
성숙기에 접어든 주력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정부는 R&D 보조금과 같은 직접 투자보다는 제도 개혁을 통해 민간의 혁신 동기를 유발해야 한다. 예를 들어 스마트 공장 인증제도, 연구개발이나 AI·디지털 설비 도입 시 세액공제 확대, 등대공장(mother factory) 활성화, 기술보호법 강화 등을 통하여, 기업의 투자 리스크를 줄이고 혁신을 촉진할 수 있다.

2) 신산업은 정부가 선도적 투자자로 역할 수행
기술 불확실성과 초기 시장의 미성숙으로 인해 민간의 투자 진입이 어려운 신산업 분야는 정부가 초기 기술 투자에 나서야 한다. 정부는 공공 벤처캐피털(VC)로서 위험을 감수하고, 민간 투자의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 고위험 R&D 지원, 글로벌 기업과의 기술 제휴 인센티브 정책 등이 이를 뒷받침할 수 있다. 특히 바이오 분야처럼 대혁신의 기술적 문턱을 넘기가 힘들고 장기간 투자가 요구되는 분야는 정부가 인내자본(Patient Capital)을 제공하는 주요 창구가 되어야 한다.



정책적 시사점
한국의 주력산업은 구조 전환의 임계점에 도달했다.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Change or Die).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산업의 성숙도와 기술 불확실성을 기준으로 한 ‘이원적 전략’을 펼쳐야 한다. 주력산업은 AI·디지털 전환을 중심으로 고도화를 추진하고, 민간의 자율 혁신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난마처럼 얽힌 공급망과 글로벌 기술 변화를 가장 빠르게 감지하는 주체는 정부가 아니라 기업이다. 따라서 주력산업 발전을 위한 최고의 정책은 민간이 신나서 뛰놀게 해주는 정책이 될 것이다. 반면, 신산업에서는 정부가 초기 투자자이자 규제 개혁 주체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산업기술 관점에서 볼 때는, 산업 간 구분 기준을 명확히 하고 전략적 우선순위에 따라서 R&D 및 인력 투자 정책을 차별화·체계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참고문헌
산업통상자원부(2024), 『2023년 스마트제조 실태조사』.
한국은행(2023), 『2023년 한국 총요소생산성 분석보고서』.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2025), 『2025년 산업기술정책 관련 산업계 의견 조사』.
Mazzucato, M.(2013), The Entrepreneurial State. Anthem Press.
Porter, M.(1990), The Competitive Advantage of Nations. Free Press.
OECD(2023), Digital Transformation in SMEs: Policy Guidance and Toolkit.
World Bank (2022), Attracting Skilled Migrants for Development: Global Policy Tren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