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NOVATION
기술혁신 성공사례

지구를 살리는 기술, 친환경 고효율 무급유 터보 냉난방기 기술혁신

인터뷰. 이기욱
LG전자 ES연구소 칠러선행연구팀 책임연구원
중앙대학교 기계공학부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LG전자 ES연구소 칠러선행연구팀에서 무급유(마그네틱) 터보 칠러 개발을 담당하였고, 현재 대용량 고온 히트펌프 선행 연구 및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한여름 백화점에 들어가면 다른 계절에 온 듯 시원하다. 이 넓은 면적을 이렇게 시원하게 만들려면 에어컨을 몇 대나 작동시켜야 하고, 그에 따른 전기료는 얼마나 많이 나올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렇게 큰 건물은 우리가 알고 있는 에어컨이 아니라 칠러(Chiller)라고 하는 대용량 냉방기가 냉방을 담당하고 있다. 냉방의 기술적 원리는 에어컨과 거의 유사하지만, 칠러는 훨씬 더 효율적이고 친환경적이다.
LG전자에서 기술혁신에 성공한 무급유 터보 냉난방기는 고객의 필요에 따른 맞춤형으로, 칠러로 쓸 수도 있고 난방기로도 사용할 수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고효율과 친환경이라는 고객 가치 창출에 성공하였다.
본 고에서는 2025년 6주 차 IR52 장영실상을 수상한 LG전자 고효율 친환경 무급유 터보 냉난방기의 기술적 혁신성과 그 개발 과정에 있던 어려움을 극복한 기지를 살펴본다.
글. 이장욱 씨앤아이컨설팅 컨설턴트




왜 친환경인가?
환경문제에 조금만 관심을 가져 보면 탄소중립(Carbon Neutrality), 탄소 절감(Carbon Reduction)이란 용어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이산화탄소(CO2)는 대표적인 온실가스로,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높아지면 지구의 평균 기온이 상승한다. 그 결과로 이상기후가 나타나고, 해수면이 상승하여 침수와 같은 자연재해가 발생한다. 온실가스로 인한 생태계 파괴라는 피해를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직접 겪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냉난방 시 전기나 화석연료와 같은 에너지를 사용한다. 이산화탄소는 이렇게 에너지를 생산·소비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한다. 그러므로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면서, 동시에 같은 양의 에너지로 더 높은 효율을 얻고자 하는 노력은 자연스럽게 탄소 절감과 연결된다. 에어컨보다 훨씬 효율이 높은 대용량 냉방기가 필요한 이유다.
냉방을 위해서는 열을 흡수하고 방출하는 냉매가 필요하다. 과거에는 프레온 가스라는 합성 냉매를 사용했지만, 현재는 사용이 금지된 상태다. 프레온 가스가 대기 중에 유출되면 오존층을 파괴하고 수십 년간 대기 중에 잔류하여, 이산화탄소보다 수천~수만 배 강한 온실효과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환경에 영향을 덜 주는 냉매를 개발하기 위한 노력은 지속되어서, 프레온 가스를 대체하는 냉매가 등장하였다. 현재는 이산화탄소와 동등한 수준인 차세대 친환경 냉매까지 개발된 상황이다. 지구온난화지수(Global Warming Potential, GWP)는 이를 수치로 표현하는 값이다.
이산화탄소는 GWP 1이고 프레온 가스는 GWP 10,900이다. 현재 냉방기에 많이 사용되는 대체 프레온 냉매인 R-134a도 GWP 1,430이나 된다. 예를 들어 R-134a 냉매 1톤이 대기 중에 방출되면, 이산화탄소 1,430톤이 방출되는 것과 동일한 온실효과가 발생한다. LG전자에서 개발한 ‘무급유 터보 냉난방기’는 R-1233zd를 냉매로 사용하였는데, 이는 GWP가 1 이하로 차세대 친환경 냉매로 불린다.




무급유 터보 냉난방기의 효율성
대형 복합 쇼핑몰은 총면적이 30만 제곱미터를 넘고, 평수로 환산하면 약 10만 평정도 된다. 10만 평 규모의 건물을 가정용 스탠드형 에어컨으로 냉방한다고 가정하면, 약 5,500대의 에어컨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를 500RT(Refrigeration Ton) 무급유식 칠러로 대체하면, 약 29대만으로 냉방이 가능하다.
무급유식 칠러 29대는 일단 공간적인 측면에서 에어컨 5,500대에 비해 훨씬 효율적이다. 연간 전력 사용량과 탄소 배출량을 무려 30~40% 절감하는 효과도 있다. 또한 동일한 냉방 효과를 기준으로 할 때, 가정용 에어컨의 COP(Coefficient of Performance)1)가 약 3.5인 것과 비교해 무급유 칠러는 약 6.0으로 높다. 즉 전력 사용량에서 71%의 효율이 향상된다. 사용하는 냉매 역시, 가정용 에어컨 냉매의 GWP는 약 2,000~2,500인데 비해, 칠러에 사용하는 냉매의 GWP는 절반가량 줄어든 1,300정도이다. 그런데 LG전자의 무급유 터보 냉난방기는 기존의 칠러보다도 1,000배 이상 줄어든 GWP 1의 냉매를 사용한다. 이렇게 대략적인 비교만으로도 왜 LG전자의 무급유 터보 냉난방기가 친환경적인지를 알 수 있다. 이를 더욱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표1에서 10만 평 규모의 건물을 냉방 할 때 에어컨과 기존의 칠러, 그리고 GWP 1 냉매를 사용한 칠러의 효과를 비교하여 요약해 보았다.


표1 GWP 1 냉매를 사용한 무급유식 칠러(500RT 기준)를 사용했을 때의 기대효과 (ChatGPT를 활용해 10만 평 규모 건물을 냉방한다고 가정하여 계산)




3가지의 기술혁신 포인트
LG전자가 개발에 성공한 무급유 터보 냉난방기는 기술혁신에서 3가지의 포인트가 있다. 바로 △친환경 냉매 R-1233zd를 사용하고 △자체 개발한 자기베어링을 활용해 무급유 원심식 터보 압축기를 개발하고 △히트펌프(Heat Pump)를 적용하여 신재생 에너지 활용이 가능한 난방기로 기술을 확장했다는 것이다.
첫 번째 기술혁신 포인트에서 R-1233zd와 같은 친환경 냉매를 사용하려면, 하드웨어의 핵심 부품들을 모두 바꾸는 큰 일을 치러야 한다. 냉매의 물성이 달라짐에 따라 기존 설비에서 단순히 냉매만 바꾸는 정도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압축기, 열교환기, 인버터, 퍼지 장치 등 모든 부품을 100% 신규 설계해야 하고, 시험 테스트를 수없이 진행하여 제품의 신뢰성을 확보해야한다. 이렇게 어려운 일이기에 차세대 친환경 냉매를 사용해 제품 개발에 성공한 기업은 전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힌다.


그림1 자기베어링을 사용한 회전축과 오일 윤활 방식의 회전축 비교


두 번째 기술혁신 포인트에서 무급유, 자기베어링과 같은 단어는 일반인에게 생소할 수 있다. 무급유(無給油)는 말 그대로 유류(오일)를 넣지 않는다는 뜻인데, 보통의 냉난방기는 오일을 필수적으로 사용한다. 냉난방기는 냉매를 압축해야 할 필요가 있어, 기존 방식에서는 스크류, 스크롤, 임펠러 등을 고속 회전시켜 냉매를 압축시킨다. 이 과정에서 로터와 임펠러 등의 부품이 회전하는 것을 돕기 위해 오일(윤활유)을 지속적으로 급유하고 회수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자동차 엔진오일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반면에, LG전자가 적용한 자기베어링은 자기력에 의해 회전축이 공중에 떠 있는 상태에서 돌아가는 방식으로 마찰이 발생하지 않아 오일이 필요 없다. 자기부상열차가 선로에 떠서 마찰 없이 이동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개발에서 기술적인 어려움은 무거운 회전축이 어떠한 방향으로도 쏠리지 않고 중앙에 위치하며, 고속으로 회전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대용량 냉난방기는 회전축 무게만 1.5톤이 나갈 정도로 대단히 무거우며, 압축기 전체의 무게는 20톤에 달한다. 그리고 이렇게 냉난방기 시스템을 만드는 기업이 냉난방기를 구성하는 주요 모듈 중 하나인 압축기의 부품인 자기베어링을 자체 설계·제작하여 적용하는 것은, 완성차 기업이 핵심 부품부터 모든 것을 자체 설계·생산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무급유 터보 냉난방기 개발을 리드한 LG전자 칠러선행연구팀 이기욱 책임연구원은 처음에는 7kg 무게의 가벼운 회전축부터 자기베어링 개발을 시작했다고 한다. 고속으로 회전하는 7kg을 제어하는 것과 1.5톤을 제어하는 것은 무려 200배 이상의 차이가 나는데, 결국에는 이에 성공한 것이다. 현재 LG전자는 적은 용량부터 최대 2,500RT 용량까지 친환경 냉매를 사용한 냉난방기를 만들 수 있다. 앞서 에어컨과 비교한 것을 기억해 보면, LG전자의 500RT 냉난방기 1대는 가정용 스탠드형 에어컨 약 190대와 맞먹는다. 자기베어링은 일개 부품이지만 7kg부터 1.5톤의 회전축까지 광범위하게 제어할 수 있는 기술력을 확보하지 못했다면, 친환경 냉매를 사용한 2,500RT급 대용량 냉난방기는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글로벌 경쟁사도 친환경 냉매를 사용한 칠러를 개발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2,500RT라는 대용량 개발에 성공했다는 경쟁사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림2 히트펌프의 개념도 <기계신문, 2024.09.13.>


세 번째 기술혁신 포인트는 무급유 터보 냉난방기가 기존의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난방기로써 히트펌프를 적용했다는 점이다. 무급유 터보 냉난방기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고객의 요구가 있다면 냉방기(칠러)로도 난방기로도 사용할 수 있다. 냉방기와 난방기는 완전히 정반대의 용도로 쓰이지만, 냉매를 이용해서 열을 이동시킨다는 기술적 원리 측면에서는 유사하다. 덕분에 히트펌프를 냉방기로도 난방기로도 사용할 수 있다.
여름철 실내에 갇혀 있는 열을 냉매로 잡아 바깥쪽 실외기에서 열을 방출시키면 냉방기가 되고, 이를 반대로 하면 난방기가 된다. 이렇게 난방기로 사용하려면 실외에서 열을 모아야 한다. 한겨울에 추운 바깥에서 무슨 열을 모을 수 있을까 싶지만, 땅속의 지열이나 공장, 발전소의 버려지는 폐열 등을 훌륭한 열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이들 열원을 모아 실내 난방용으로 사용하면,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난방기가 된다. 히트펌프란 말처럼 열을 퍼서 나르는 친환경 난방기가 되는 것이다. 2024년 냉방기 및 냉동기 전 세계 시장 규모는 약 36조 원으로, 매년 꾸준히 4~5% 성장하고 있다. 앞으로는 인공지능을 위한 데이터센터의 냉각 솔루션 수요로 인해 더 큰 성장이 예상된다. 난방기 역시도 화석연료 수급의 불안정성으로 인하여 서유럽 및 북유럽에서 히트펌프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기에 시장 전망이 밝다. 하지만 글로벌 경쟁사들도 친환경 냉매를 사용한 냉난방기의 개발과 시장 선점에 박차를 가하고 있어, 현재의 기술적 성과만으로 안심해서는 안 된다.




미래혁신기술 확보를 위한 준비
국내 냉방기 산업의 역사는 자동차 산업의 역사와 유사한 점이 있다. 우리나라는 자동차 산업을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100년이나 늦게 시작했지만, 글로벌 강자들을 제치고 최상위권을 차지했다. 특히나 전기자동차로 패러다임이 변해가는 현시점에서, 우리나라는 기술력과 제품에서 모두 시장의 인정을 받아 선두 국가로 인식되는 전환점을 맞이하였다. 냉방기의 역사에서도 마찬가지로, 미국이 100년이나 앞선 출발을 하였고 우리는 후발주자로 열심히 추격 중이다. 친환경 고효율을 중시하는 미래시장에서는 일단 LG전자의 무급유 터보 냉난방기가 기술 경쟁 우위를 점하였지만, 칠러선행연구팀 이기욱 책임연구원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진작부터 한발 앞선 기술혁신을 준비 중이다.
LG전자는 히트펌프에 주목하여 또 한 번의 기술적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KETEP)의 지원을 받아 2023년부터 ‘대용량 대온도차 히트펌프 핵심기술 개발’ 과제(과제번호: RS-2023-00242282)에 착수하였고, 2027년 개발 완료를 목표로 열심히 연구 중이다.
‘대용량 대온도차 히트펌프 핵심기술 개발’ 과제는 LG전자를 주관기관으로 하여 정부출연 연구소 1곳, 대학교 5곳이 참여하는 대규모 컨소시엄 과제이다. 이 과제의 기술적 목표는 히트펌프로 수온을 108℃까지 끌어 올리는 것으로, 현재 수준으로는 수온을 약 90℃까지 끌어 올릴 수 있다. 이 과제에 성공한다면, 에너지 절감과 더불어 대폭의 탄소 배출량 감소 효과도 얻게 된다. 예를 들어 한 공장에서 160℃의 증기가 필요할 때, 히트펌프를 이용하여 108℃까지 미리 증기를 승온시킬 수 있다면 보일러로는 나머지 온도만 추가로 승온시키면 된다. 반면, 처음부터 보일러로 수온을 160℃까지 올린다면 매우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이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늘어나 환경에도 좋지 않다.
혁신은 어느 날 우연히 운이 맞아 찾아오는 성공이 아니라, 꾸준히 갈고 닦은 결과가 쌓여 우연처럼 찾아오는 필연이다. 기술혁신을 성공으로 이끈 칠러 선행 연구팀은 16명으로 구성되어 있고, 평택 공장 현장에 있는 양산개발팀까지 포함해도 100명이 넘지 않는 소수 정예 구성이다. 글로벌 경쟁사들의 R&D 인력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숫자지만, 일당백의 R&D 전사들이 기술혁신 성과를 맺어내고 있다.
이기욱 책임연구원을 비롯한 칠러선행팀의 연구원들은 오늘도 평택 공장 현장에서 수십 톤의 냉난방기를 마주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명함에 있는 서울의 연구소로는 가끔 출장과 같은 출근을 하고, 대부분은 평택 현장에서 볼트를 조이고 데이터를 수집하며 연구개발에 매진한다. LG전자의 무급유 터보 냉난방기가 글로벌 무대에서 선두 주자로 자리매김한 것은, 이러한 R&D 전사들의 노력 덕분이다. 이들의 지속적인 연구개발의 결과는 앞으로도 우리의 성장을 이끌어갈 중요한 원동력이 될 것이다.






MINI INTERVIEW
Q. 기술개발 과정에서 힘들었던 점을 꼽는다면?
무급유 터보 냉난방기를 개발하면서는 흔히 생각하시는 R&D 연구소가 아니라, 평택 공장 현장에서 일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냉난방기는 수십 톤이나 되는 설비이기에, 웬만한 실험실에서는 다룰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시험 가동을 해보려고 해도 500RT 설비 하나가 보통 4~5층 건물 전체를 냉방 할 수 있기에, 평택 공장과 같은 현장에서만 가동할 수 있었습니다. 실험을 해보려고 해도 낮에는 초과 전력이 필요하여 가동이 불가했기에, 퇴근시간 이후에나 가동이 가능했습니다. 4년이라는 개발 기간 동안 쉽지 않은 프로젝트에 참여해 준 칠러선행팀의 연구원들과 터보개발팀, 칠러제어개발팀, 인버터·열교환기 PJT 팀원들에게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또한 에어컨은 알아도 칠러는 모르는 경우가 많아, 이 분야를 지망하는 연구원 수가 적다는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함께 일하는 LG전자 연구원들은 이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최근에는 관련 기술에 대한 관심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칠러나 히트펌프 기술을 더욱 알기 쉽게 설명하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시는 기술혁신 성공의 비결은?
무엇보다 무급유 터보 냉난방기를 개발할 수 있던 것은 칠러선행연구팀의 이남수 팀장님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팀장님께서는 항상 연구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해 주시며, 다양한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시도하길 장려하십니다. 수십 톤의 설비를 가동하는 실험이다 보니 시험적인 아이디어를 실행하는 데 주저할 수 있는데, 팀장님 덕분에 저희는 그렇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연구원들이 의견을 내고 실행해 보는 데 자유도가 높은 것도 기술혁신 개발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01 냉난방 장치나 히트펌프 등의 에너지 효율성을 나타내는 지표. 우리말로는 성능계수 또는 성능지수라고 하며, COP1은 1kWh의 전기를 공급했을 때 1kWh의 열만 생성함을 의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