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SSUE
05

K-컬처 확산을 위한 국립중앙박물관의 디지털 전략

글. 최성애
국립중앙박물관 디지털박물관과 학예연구관
한양대학교에서 문화인류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국립경주박물관과 국립제주박물관 등에서 전시와 조사업무를 담당했다. 문화체육관광부 문화기반과에서 박물관 정책업무를 수행하고 국립공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을 거쳐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디지털박물관 전략 수립과 실행, 콘텐츠 기획과 제작 등을 담당하고 있다.
“브랜드 케이(K)”는 영화와 드라마, 대중음악, 웹툰, 게임, 뷰티, 푸드, 뮤지컬 등 다양한 영역에서 강력한 파급력을 발휘하고 있다. 우리가 만든 콘텐츠는 하나의 트렌드를 넘어 글로벌 문화 현상이 되었다. K-콘텐츠가 전 세계를 사로잡는 이유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한국 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문화유산을 디지털 데이터로 구축하여 콘텐츠 자원으로 제공하기 위한 국립중앙박물관의 K-뮤지엄 전략을 소개한다. K-뮤지엄은 인공지능 시대, 문화유산 데이터의 개방과 활용을 통해 K-컬처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견인하기 위한 국립중앙박물관의 미래 모습이다.




디지털 시대와 K-컬처, 문화유산의 힘
한류는 인터넷과 유튜브, 넷플릭스 같은 플랫폼과 K-콘텐츠 자체가 가진 정서와 매력으로 지역과 언어의 경계를 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최근 K-팝 아이돌 문화에 한국 전통 설화를 결합한 독창적인 내용의 애니메이션 ‘케이 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가 세계적 인기를 끌며, 고조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어졌다. 한국 문화를 직접 체험하고 관련 문화상품을 사려는 사람들로 지난 7월에만 74만 명이 박물관을 찾았다. 관람객은 500만 명을 돌파하며 역대 최대를 기록하였고, 뮷즈(Museum Goods) 매출액은 전년 대비 56%나 상승하는 실적을 거두었다.


그림1 국립중앙박물관 전경

박물관이 사람들을 이끄는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사유의 방 전시실의 국보 반가사유상의 잔잔한 미소는 불교적 사유와 자비를 형상화하고 있다. 종교적 맥락에서 비롯한 이 미소를 마주하며 사람들은 평안과 위로의 감정을 느낀다. 도자실에 놓인 달항아리는 단순함이 갖는 절제미와 완벽한 대칭을 이루지 않는 불완전함에서 오히려 삶의 균형을 생각하게 만든다. 죽은 이를 떠나보내며 무덤에 껴묻은 금관, 사람들이 꿈꾼 이상향을 끝없이 펼쳐놓은 강산무진도 등 박물관에 전시된 수많은 문화유산에서 우리는 인간을 만난다. 문화유산은 인간이 공유하는 감정과 정서, 삶과 죽음의 서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공감을 얻는 콘텐츠의 원천으로 작동하며 세계인과 연결된다. 우리 문화 속 소재에 디지털 기술을 입혀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콘텐츠 제작과 새로 개발된 기술을 접목하기 위해서 문화유산 데이터의 품질이 무엇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그림2 사유의 방과 금동반가사유상




문화유산 디지털 데이터, K-콘텐츠의 자산
K-뮤지엄을 위한 첫 번째 필수 요건은 소장한 문화유산을 디지털 데이터로 전환하는 것이다. 박물관은 문화유산, 그 원형의 보존을 가장 우선으로 하며 그 가치를 전달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소장품 정보 관리와 디지털화 작업을 진행해왔다. 1980년대 체계적인 보존·관리를 위한 표준화 작업에서 시작, 1990년대 소장품 전산화와 분류체계를 정립하였다. ‘문화유산표준관리시스템’은 현재 국내 758개 국·공·사립 및 대학 박물관·미술관이 이용하고 있다. 전국 등록박물관의 약 80%에 해당하는 기관에서 공개한 소장품 정보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e-뮤지엄’ 플랫폼으로 연결되며 검색과 이미지 내려받기가 가능하다.
나아가 국립중앙박물관은 주요 소장품 메타데이터와 고해상도 이미지, 초고해상도 3D 스캔 데이터 등 사용자가 디지털 문화유산을 다양한 방식으로 탐색할 수 있는 ‘애셋 데이터’ 구축 작업에 힘쓰고 있다. 소장품의 기록·보존 디지털 데이터에서 진화한 범용성과 활용성을 목표로, 데이터의 취득-저장-가공-활용에 이르는 과정을 ‘문화유산 디지털 애셋 표준 가이드 라인’을 적용해 만들었다. 아울러 고용량, 고품질 데이터의 효과적 관리를 위한 ‘지능형 큐레이션 플랫폼’을 구축하고, 적극적으로 개방하기 위한 제도 정비를 추진하고 있다. 현재 전시와 교육 등 박물관 내외부에서 이용하고 있는 문화유산 고품질 데이터는 향후 K-컬처의 확산에 필요한 다양한 분야에서 창작의 영감이 되고 K-콘텐츠로 활용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림3 국보 반가사유상 디지털 애셋-3차원 모델링 데이터




국립중앙박물관 디지털 전략과 K-뮤지엄 전환
국립중앙박물관은 2020년 “모두를 위한 박물관”이라는 새 목표를 정하고, 실천을 위한 방법으로 디지털 전환을 본격화하였다. 인터넷, 스마트폰, 인공지능 등 빠르게 발전하는 디지털 기술을 융합하여 온라인 전시, 실감형 콘텐츠, 로봇 전시 안내, 스마트 키오스크 등 관람 경험 다변화의 성과를 가져왔다. 과거와 현재, 시간과 공간,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기 위해 디지털 기술은 필수불가결한 도구로, 박물관의 소통 방식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지금 우리는 인공지능 대중화와 초연결 네트워크 사회로의 급격한 디지털 환경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 박물관도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춰 K-뮤지엄 전환을 위한 ‘디지털 전략2630’을 새롭게 수립하였다. 박물관이 보유한 고품질 문화자산을 기반으로 박물관이 가진 본질적 역할을 강화하고 접근성 향상과 새로운 관람 경험을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다. 아울러 K-컬처의 근원으로서 창작의 씨앗이 되는 데이터 표준화와 연결성 강화, 인프라 확장 등 운영 체계 안정화를 목표로 한다.
AI 큐레이션 서비스는 인공지능 챗봇과 공간 비전 기술을 활용해 관람객의 질문에 실시간으로 답변하고, 개인 관심에 맞는 맞춤형 전시 동선을 안내한다. 문화유산에 대한 이해를 위해 깊이 있는 사고 확장을 돕고 자신만의 박물관 경험을 만들 수 있다. 문화유산 데이터 표준화는 국제 표준(CIDOC CRM, Dublin Core, IIIF등)을 적용해 일관된 지식서비스를 구현하는 것이다. 국내외 문화기관과의 자료 연동성을 높이고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데이터로 콘텐츠 활용성을 높일 수 있다.
10월 28일 문을 여는 디지털 보존과학센터는 문화유산의 보존 이력과 처리, 분석 등 맥락을 통합 관리하는 체계적 시스템을 구축하고 표준화된 보존처리, 원격진단, 디지털 가상복원 등을 진행한다. 디지털 아카이브센터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박물관의 디지털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관리·활용하기 위한 플랫폼으로 소장품 맥락정보와 이용자의 지식정보 경험을 연결하는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아울러 학계와 산업계, 문화계술계 등 각계 문화기술 전문가와 협업 및 거버넌스 협의체 운영으로 실천 가능성을 높이고자 한다.
한편, 디지털 기술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박물관 소장품이 가진 생생한 이야기를 펼쳐 보이던 실감형 콘텐츠 개발도 지속한다. 우리 문화 속 소재에 디지털 기술을 입혀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콘텐츠는 문화유산을 과거의 것이 아닌 현재의 문화 경험으로 이끌며 K-컬처에 관심을 가진 세계인에게 한국 문화의 매력을 직관적이고 감각적으로 전달할 것이다. 나아가 메타버스로 구현된 가상 공간에서 전시, 교육 체험 확장으로 물리적 공간의 제한을 넘은 K-뮤지엄 경험을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그림4 국립중앙박물관 디지털 콘텐츠
[좌측부터 실감 영상관 1관 ‘어흥, 호랑이’, 명품실감 3D 데이터, 하단 좌측 메타버스 제페토 ‘힐링동산’, 스마트 키오스크 수어 아바타]




문화와 기술의 공존과 균형
국립중앙박물관의 K-컬처 확산을 위한 디지털 전략은 문화유산을 매개로 사람과 사람,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연결을 목표로 실현될 것이다. 박물관이라는 공간에서 보고 느끼고 즐긴 경험은 사람들을 적극적 참여자로 만들고 있다. 박물관 경험에서 얻은 영감과 정밀하게 구축된 디지털 문화유산 데이터는 K-콘텐츠를 만들고 공유하며, 공감의 힘을 가진 살아있는 문화자원이 될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앞으로도 기술과 문화의 공존과 균형을 고민하며 새로운 콘텐츠가 재창조되고 확산되는 K-컬처의 허브로 사명을 이어가고자 한다. 기술로 더 생생하게 느끼는 과거와 미래, 전통과 혁신이 공존하는 공간, 박물관에서 미래의 우리를 상상할 수 있기를 바란다.